[TV리포트=남금주 기자] 귀화한 서명원 신부가 함께하는 삶을 고백했다.
10일 방송된 KBS 1TV ‘이웃집 찰스’에는 서명원 신부가 공동체 생활을 공개했다.
이날 한국 생활 35년 차 캐나다에서 온 베르나르 스네칼이 등장했다. 그는 프랑스계 캐나다 사람으로, 2015년 귀화한 서명원 신부였다. 닭들을 돌보며 등장한 그의 옆엔 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온 살레다. 가자지구는 쑥대밭이 되었고, 먹을 것도 마실 수도 없어서 좀 기적적으로 올 수 있게 해드렸고, 같이 공동체 생활을 한다”고 소개했다.
살레는 “신부님의 도움이 얼마나 감사한지 이야기하곤 한다. 제가 한국에 올 수 있도록 도와주신 것도”라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살레는 “한국 생활엔 장애물이 없다. 전쟁도, 급박한 일도 없다. 가자지구에선 하루하루 위급한 일이 일어난다. 우리의 손에서 벗어난 일들이 일어난다”라고 밝혔다.
공동체 주방에선 아침 식사 준비로 손길이 분주했다. 주방 담당인 마리아는 “수확해서 1년 내내 먹는 거다”라고 했다. 이곳의 원칙은 자급자족. 마리아는 “(은퇴 후) 활동량을 어떻게 늘리나 생각하던 차에 마침 와서 밥 좀 해달라고 하더라. 혼자 사는 것보다 훨씬 낫단 생각이 든다”라고 공동체 생활을 함께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나이, 성별, 국적이 모두 다른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 서명원 신부는 “특이하기 짝이 없다. 따돌림당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이니 왕따가 없다. ‘끼리끼리’, ‘패거리’라고 하지 않냐. 근데 여기선 다르면 다를수록 좋다. 다만 더불어서 조화롭게 살려고 하는 의지가 강해야 한다”라며 공동체의 원칙을 밝혔다. 2015년에 만들어진 도전 돌밭 공동체는 기도, 명상, 공부, 농사를 함께하는 공동체.
서명원 신부는 농사 스승과 함께 마늘을 심었다. 그는 “만난 지 15년, 농사도 같이 지은 지 14년이다. 이분 덕택으로 저는 농사 중독자가 되었다”고 했고, 농사 스승은 “70세가 넘으셨는데, 물불가리지 않고 열심히 하시는 모습을 본받고 있다”라고 밝혔다.
서명원 신부는 “(농사)일을 할 때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 일들을 잊어버린다. 단순해진다. 이게 중요하다”라며 “자연과 함께하다 보니 얻을 수 있는 힘이 보통이 아니다. 농사를 통해 자연계와 하나 되는 체험은 둘도 없는 체험”이라고 농사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상호보완적이다. 밭일만 하다 보면 짐승이 된다. 글만 쓰다간 사람이 도깨비가 된다. 실체를 잃어버린다. 양쪽을 고수하는 게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서명원 신부는 서울의 한 성당에서 국제미사를 준비했다. 1992년 사제서품을 받은 서명원 신부는 3대째 의사였던 집안에서 태어나 사제가 되기까지 순탄치 않았다고. 그는 “우리 엄마에게 있어서 최고의 직업은 의사였다. 그래서 의사와 결혼했고, 아들들이 다 의사가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형, 남동생이 의사였다. 원하는 걸 택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라고 회상했다.
어머니 바람대로 프랑스 의대에 입학했지만, 결국 자퇴를 했다고. 그는 “해부실에서 일하면서 시신 350여 구를 부검했다. 생로병사의 이치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의대에서 철학, 신학을 가르쳐주진 않아서 궁금증이 생겼다. 다른 걸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라며 고뇌 끝에 수도자의 길을 걷게 됐다고 밝혔다. 그리고 선교사로 한국에 왔다고.
서명원 신부는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왜 의사가 되지 않았냐고 물어보셨다. 극락의 세계에 가서도 여전히 궁금하실 것 같다”라며 “제가 택한 길에 대한 의심은 한 번도 없었다. 그 길을 끝까지 따라가고 싶다”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인생의 방향에 대한 깨달음은 가짜가 아니었다”라며 “택한 길을 끝까지 따라가려고 하는 마음이 계속 일어난다”라며 자신의 신념에 대한 확고한 뜻을 밝혔다.
또한 서명원 신부는 오랫동안 불교를 연구하며 수행하는 중이기도 했다. 강의에 나선 그는 “불교 안의 믿음과 그리스도교 안의 믿음을 비교하는 연구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남금주 기자 ngj@tvreport.co.kr / 사진= KBS 1TV ‘이웃집 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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