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김연주 기자] 영화에 담긴 n개의 화두 가운데 함께 나누고 싶은 재미를 선별한 리뷰입니다. 사심을 담아 고른 한 편의 영화 속 단 하나의 재미, 유일무비입니다.
나조차 나를 구하지 못한다고 읊조리던 이들이 스스로 구원하는 힘을 얻는다. 그들을 구원으로 이끈 건 사랑이다.
영화 ‘세기말의 사랑’은 세상 끝나는 줄 알았던 1999년, 짝사랑 때문에 모든 걸 잃은 ‘영미’에게 짝사랑 상대의 아내 ‘유진’이 나타나며 벌어지는 이상하고 사랑스러운 뉴 밀레니엄 드라마다.
영화 ’69세’를 연출한 임선애 감독이 선보이는 재기 발랄하고 경쾌한 신작으로 제27회 판타지아영화제 슈발뉴아경쟁,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제49회 서울독립영화제 페스티벌 초이스 등 유수의 영화제를 통해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이끌며 개봉 전부터 입소문 열풍과 함께 화제를 모으고 있다.
러닝타임 116분엔 헛방이 없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시절을 배경으로 각기 다른 매력을 발산하는 배우 이유영, 임선우, 노재원 등이 극을 빈틈없이 채운다. 돈도 사랑도 모두 날린 채 새천년을 맞이한 ‘영미’로 분한 이유영, 그녀 앞에 불쑥 나타난 짝사랑 상대의 아내 ‘유진’ 역의 임선우, 두 사람에게 사랑을 심어준 ‘도영’을 연기한 노재원은 균형을 맞추며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도달한다.
20세기 말에 싹튼 사랑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영미’와 ‘유진’을 성장시킨다. 모두에게 외면받던 비호감의 결정체 ‘영미’는 사랑을 통해 주체성을 갖게 되고, 자신의 힘으론 고개조차 가눌 수 없는 장애를 가진 ‘유진’은 까칠하기만한 모습을 벗어던지고 감정에 솔직해진다. 소위 비주류로 분류되는 두 여성은 연대를 통해 결핍을 채워간다.
이유영의 변신이 눈에 띈다. 덧니, 어눌한 발음, 부자연스러운 톤의 염색머리로 ‘세기말의 비주얼’을 완성했다. 비호감의 결정체지만 사랑스럽다. 작정하고 웃기려고 하진 않지만, 극중 ‘영미’의 어설픈 행동은 웃음을 자아낸다. 결정적으로 엉성하고 평범하지 않은 ‘영미’를 응원하게 만든다. 캐릭터를 분한 이유영이 미워만 할 수 없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여기에 ‘유진’으로 분한 임선우의 활약이 더해진다.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 ‘유진’을 연기한 임선우는 영혼만큼은 자유롭게 움직이는 캐릭터를 찰떡 소화해 전에 없는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그도 그럴 것이 흐트러지지 않으려는 ‘유진’의 성향을 그대로 담아낸 눈동자 연기, 대사 전달력은 관객들을 매료하기 충분하다.
개성 강한 캐릭터를 연기한 두 배우의 케미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다. 불편한 애정 문제와 채무 관계로 얽혔던 두 여성이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성장한다는 의미 있는 영화적 메시지가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결핍과 결핍이 만나 주체성을 발휘한다는 지점에선 통쾌함이 느껴진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서 공시생 ‘김서완’ 역으로 눈물샘을 자극한 노재원. 두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은 ‘도영’으로 분한 노재원은 이번 작품에서도 충분한 몫을 해낸다. 캐릭터에 스며드는 연기로 몰입도를 높인다.
한편, ‘세기말의 사랑’은 오는 24일 개봉 예정이다.
김연주 기자 yeonjuk@tvreport.co.kr / 사진= ㈜엔케이컨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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