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김연주 기자] 영화에 담긴 n개의 화두 가운데 함께 나누고 싶은 재미를 선별했습니다. 영화관에 가기 전에 읽어도, 다녀온 뒤에 읽어도 상관 없습니다. 하면 할수록 재미있고, 매번 다른 게 영화이야기니까요. (기사에 따라 스포가 포함될 수 있음을 미리 전합니다.) 사심을 담아 고른 한 편의 영화 속 단 하나의 재미, 유일무비입니다.
“너라면 어떻게 했을까.”
세상을 먼저 떠난 사람에게 묻는다. 대답이 없는 사람에게 묻고, 또 묻는다. 이별을 인정할 수 없다. 너무도 갑작스럽다.
영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사고로 남편을 잃고 바르샤바로 떠난 명지(박하선 분)와 같은 사고로 동생을 잃은 지은(정민주 분), 단짝 친구와 이별한 해수(문우진 분)의 이야기다. 상실의 아픔부터 상처를 어루만지고 치유받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린다. 김애란 작가 소설집 ‘바깥은 여름’에 실린 동명 단편을 원작으로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돼 주목받은 작품이다.
극중 인물들은 떠난 사람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그와 함께했던 시간을 떠올린다. 언제든 꺼내보면서 웃을 수 있었던 시간은 쓰라린 기억이 됐다. 그럼에도 지난날을 천천히 되짚어본다. 명지는 자신의 일상이었던 남편이 사라진 새로운 일상에 아파했고, 지은은 먼저 떠난 동생이 너무도 착하고, 예뻐서 가엽기만 하다. 기억을 떠올릴수록 상처는 깊어만 간다.
바르샤바로 떠난 명지는 유학 중인 친구 현석(김남희 분)을 만난다. 남편의 안부를 현석에게 명지는 “잘 지낸다”고 한다. 입 밖으로 내뱉으면 남편의 죽음을 인정하는 것과 다름 없다. 그래서 명지는 운을 떼지 못한다.
극 초반 명지의 복부 쪽에 생긴 작은 피부염은 상반을 뒤덮을 정도로 발병 부위가 번진다. 내면의 상처도 다르지 않다. 남편의 빈자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간다.
같은 사고로 동생을 잃은 지은은 삶에 대한 의지가 꺾이고 만다. 상실의 아픔은 지은의 몸을 마비시켰고, 제힘으로 걷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 돼버렸다. 그런 지은의 곁을 지키는 해수 또한 절친의 빈자리를 매 순간 체감한다.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다.
좀처럼 극복되지 않는 슬픔은 미련으로 나타난다. 명지와 현석은 “만약에 과거의 선택을 바꿀 수 있다면, 너는 어떻게 할래?”라는 현실성 없는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명지는 줄곧 남편을 생각한다. 네가 우리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면, 네가 그날 밖에 나가지 않았다면. 절대 이뤄질 수 없는 ‘만약에’가 명지의 머리를 어지럽힌다.
바닥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슬픔의 늪에서 허우적거린다.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만 같다. 영화 속 인물들의 삶을 관망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턱 막힌다.
애써 슬픔을 외면해오던 명지와 지은, 그리고 해수는 조금씩 이별을 받아들인다. 명지는 바르샤바에서의 시간을 정리하고 돌연 한국에 돌아온다. 지은은 마음을 가다듬고 동생과 함께 사망한 명지의 남편에게 감사함과 죄송함을 담아 편지를 쓴다. 편지는 명지에게 전달된다.
“동생이 제 꿈에 나타나 잘 먹고 잘 자라고 했어요”, “그 아이가 얼마나 먹지 않았으면 동생이 꿈에서까지 끼니를 걱정 했을까”. 지은은 명지에게 살고자 하는 의지를 보였고, 명지는 그런 지은으로부터 이름 모를 힘을 얻는다. 남편을 떠나보내며 한 번도 마음 놓고 울지 못했던 명지는 편지를 들고 가슴을 치며 눈물을 쏟는다. 후련하고, 아프게.
아픔은 마주했을 때 비로소 나아진다. 명지, 지은, 해수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물론 예고 없이 날아드는 슬픔에 또 울겠지만, 그럼에도 살아갈 이유가 생겼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오는 7월 5일 개봉 예정이다.
김연주 기자 yeonjuk@tvreport.co.kr / 사진= ㈜엔케이컨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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