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손효정 기자] 지난달 종영한 KBS2 일일드라마 ‘여자의 비밀’. 이 드라마의 최대 수혜자로 꼽히는 배우가 있다. 바로 오동수 역의 배우 이선구다.
베테랑 같지만, 이선구는 아직 데뷔 5년 차의 배우다. ‘여자의 비밀’은 그의 지상파 첫 작품이다. 이선구는 2011년 드라마 ‘아테나’, 영화 ‘창수’를 찍으며 데뷔했다. 이후 그는 ‘시티헌터’, ‘처용’, ‘일리있는 사랑’, 드라마 ‘화이’, ‘강남 1970’ 등에 출연했다.
강한 이목구비 때문인지 이선구는 주로 범죄를 저지르는 악역을 연기했다. ‘여자의 비밀’ 오동수도 악역이지만, 이전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오동수는 사랑하는 여자 서린(김윤서)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악행을 자처한 인물이다. 한평생 서린을 위해 살았지만 사랑을 받지 못하는 불쌍한 캐릭터였다.
‘여자의 비밀’ 마지막 촬영 후, 약 7개월 간 길었던 수염을 깎은 이선구와 만났다. 검은 기운을 뿜던 오동수가 맞나 싶게 실제의 이선구는 선한 사람이었다.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느껴졌다. 캐릭터에 따라 여러가지 얼굴이 나오는 이선구. 이 배우의 앞날이 기대된다.
– 오동수는 획일적인 악역이 아니었던 것 같다.
“대본 몇 부 받고, 캐릭터를 봤을 때는 여느 똑같은, 검은색 입고 다니는 깡패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대본이 계속 나오고 보다 보니까 아니더라고요. 저도 배우로서의 욕심으로, 그냥 깡패는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 나름대로 좀 더 첨부한 것이 서린에 대한 사랑이 좀 더 보여지길 바랐어요. 무서운 눈매 보다는 애절하고 안타까운 눈빛을 했어요. 작가님도 방향을 그쪽으로 틀어주신 것 같아서 감사했어요.”
– 공중파 첫 작품인데, 어떻게 캐스팅 됐나.
“연기를 시작한 지 7년째 되는데, 작년까지 혼자서 움직였어요. 제가 배우를 전공하지도 않았고 2009년에 시작해서 배우고 노력한 다음에 움직여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연기 공부만 했죠. 2년째 되는 해에 혼자 프로필 찍어서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2011년도에 ‘아테나’, 영화 ‘창수’ 캐스팅된 거죠. 그 후로도 계속 움직이다 보니까 연극도 하고, 작품도 하게 됐어요. 그러다가 알게 된 매니저님하고 같이 일하게 됐어요. 올해 지금 소속사에 들어왔어요.
오동수 캐스팅에는 재밌는 일이 있어요. 에이전시에서 오동수라는 캐릭터 제의가 들어온 거예요. 매니저가 통화해보더니 자기가 욕심내고 있는 배역인데 역으로 제의가 들어왔다고 신기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미팅을 하게 됐어요. 감독님하고 1차, 2차 미팅을 하고 3차에서 작가님도 보고, 합격 통지를 받았어요. 촬영 중간에 회식 때 작가님이 제가 3차 오디션장에 들어오는데, 오동수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씀해주셨어요.”
– 극 중에서 사람들한테 많이 맞는데, 기억에 많이 남겠다.
“서린이의 불꽃 싸대기가 생각이 많이 나네요.(웃음) 살면서 여자한테 뺨을 맞은 것은 처음이에요. 촬영 초반에 맞는 신 2회를 붙여서 한 번에 촬영했어요. 서린이도 파이팅 있고, 저도 의욕이 넘쳐서 리얼하게 하자고 했어요. 그런데 정말 풀스윙으로 들어오더라고요. 3대까지는 제가 버텼습니다. 3대 넘어서면서는 볼이 빨갛게 부어올라서 얼음팩을 대고 가라앉히고는 촬영했어요. 한 7~8대는 맞았던 것 같아요.
또 한 번은 복싱장에서 무턱대고 맞은 적이 있어요. 서린이를 제발 살게 해달라고 맞는 신이었는데, 상대방이 무술팀이었어요. 두시간 동안 찍으면서 땀을 정말 많이 흘렸어요. 하의가 다 젖어서 뚝뚝 흐를 정도였죠. 다음날 광대랑 눈 밑에 피멍이 들었더라고요. 이틀 정도 촬영이 없어서 다행이었어요.”
– 서린이를 구하려고 물에도 입수했는데 어땠나.
“자살하려는 서린이를 구하려는 신이었죠. 새벽 2시까지 찍었는데, 낮에는 더웠는데 밤에 들어가니까 되게 춥더라고요. 동수한테는 큰 결심한 중요한 장면이었어요. 격한 포옹도 처음 해봤고, ‘사랑한다’는 말도 처음 했으니까요. 동수가 끝부분에 서린이가 납치됐을 때 구했을 때는 조금 삐쳤는지 ‘네가 끝까지 갈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 있냐’고 투덜대거든요. 그 장면도 생각이 많이 나요.”
– 김윤서 씨와 호흡은 어땠나.
“제가 뺨을 맞기 전까지는 반 존대하고 그랬어요. 은밀한 스킨십 하나로 바로 ‘윤서야’ ‘서린아’라고 불렀죠. 윤서 성격이 되게 좋아요. 현장 분위기 메이커는 서린이하고 지유(소이현)였죠. 소이현 씨도 베테랑 배우시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 현장 분위기가 좋은지 알더라고요. 애교도 많고 항상 밝았어요. (오)민석이 형하고는 사석에서 소주 마시면서 허심탄회하게 얘기도 많이 나눴어요. 형이 신인시절 얘기들을 해주면서 많은 도움을 줬어요. 선호 역할한 친구(정헌)는 2009년에 같이 연기 공부를 했는데, 이번에 만나서 정말 반가웠어요.”
– 극 중에서 검은색 옷만 입는데, 고충이 많았겠다.
“잘 느끼지 못하셨겠지만 검은색 정장만 입다가, 나중에는 남색도 입고 그랬거든요.(웃음) 오동수의 색깔이 검은색이라는 것은 알지만, 보는 입장에서 1부부터 80부까지 같으면 안 되잖아요. 그레이랑 남색 블랙 갈아입기는 했어요.
터틀넥 그것도 색깔이 바뀌었어요. 검은색을 많이 입었지만, 회색, 자주색 등도 입었어요. 한여름 6월, 7월에 터틀넥 입으려니깐 너무 힘들더라고요. 제가 촬영장에 가면 스태프분들이 ‘동수 온다’, ‘더워 더워’ 그러면서 놀렸어요. 댓글에도 ‘동수만 나오면 더워요’ 그러고요. 주위에 반응에 힘입어 검은 셔츠로 바꿀 수 있었죠. 마지막 몇 십 회 남았을 때는 날이 추워져서 동수의 이미지를 살리고 싶어서 터틀넥을 입고 잘 마무리했죠.”
-데뷔가 늦다. 원래 무슨 일했나.
“체대를 나왔고, 수영을 10년 이상했어요. 나름 이쪽 저쪽 일을 해봤는데, 매료시키는 것이 없었죠. 졸업을 앞두고 경찰 공무원 준비를 했어요. 그러던 중에 정신적 지주인 사촌 형이 집에 놀러 오셨는데, 저보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공부하려고 책을 폈는데 아무것도 안 들어오더라고요.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미련이 있던 거죠. 지금 아니면 더 이상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9살이었는데 어머니 허락받고 짐 싸서 상경했습니다. 관악산 중턱에 고시원에 머물면서 연기 공부를 했어요. 제가 연기 전공도 아니고, 탁월한 외모도 아니고, 연기력도 없으니까 괜찮다는 학원 수소문해서 받으러 갔죠. 열심히 하던 찰나에 2011년에 ‘아테나’와 ‘창수’를 하게 됐습니다.”
– 부모님이 정말 좋아하시겠다.
“부모님은 제 최고의 팬이고요. 어머니가 그렇게 믿고 기다려주셨기 때문에 버티면서 있었던 것 같고요. 7년 동안 혼자 하는데 막노동도 많이 뛰었으니까요. 어머니가 제작 발표회 가는 날 많이 우시더라고요. 방송 보면서는 누구보다 좋아 해주시고 응원해주셨어요.”
– 사람들도 많이 알아보는지.
“밥 먹으로 식당에 가면, 이모님이나 식당 아주머니들한테 등짝도 몇 대 맞아봤어요. 어느 날은 화장실에서 볼일 보고 나가려는데, 청소해주시는 분을 마주쳤어요. ‘이놈을 여기서 만났네’라고 하시더라고요. 배경이 남자 화장실이라서 웃긴데, 감사하다고 했죠. 언제는 식당에서 밥 먹고 화장실 가려고 키를 들고 가는데, 지나가시던 분이 쫓아오시더라고요. 그래서 화장실 앞에서 사진도 찍어봤어요. 얘기가 다 화장실하고 연관되네요. 하하.”
– 실제로도 순정파인가.
“동수와 비슷한 점이 많아요. 일상 생활에서도 말수가 많은 것은 아니고요. 연애했을 때도 주도적으로 이끄는 스타일은 아녔어요. 배려 아닌 배려를 많이 해서 헤어진 적도 있고, 내성적이고 말도 많은 편이 아니에요. 제가 이 직업 한다는 것에 대해서 지금도 놀라는 친한 친구들이 많으니까요. 학교에서도 조용히 앉아 있는 그런 아이였어요. 있는 듯 없는 듯 살아온 것 같아요.”
–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저는 정말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인생의 마지막 직업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버텨가고 있어요. 저한테 롤모델은 이순재 선생님이에요. 꾸준히 연기하시고, 연극하러 다니시고, 젊은 분들과 소통하려고 하시더라고요. 죽기 전까지 연기하고, 연기하면서 죽는 게 저의 꿈이고요. 편하게 다가가는 사람 냄새나는 배우였으면 좋겠어요. 저는 배우라고 해서 그렇게 대단하다 이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수많은 직종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손효정 기자 shj2012@tvreport.co.kr/ 사진=김재창 기자 freddie@tv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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