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김수정 기자] 영화 ‘아가씨'(박찬욱 감독, 모호필름·용필름 제작)의 김민희는 배우의 아우라만으로도 작품의 결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준다. “매혹적이고 탁월하게 아름다운” 연기로 “천지 간에 아무도 없는” 아가씨 히데코를 스크린에 화려하게 수놓았다. 촬영 전부터 숱한 화제를 모은 동성 베드신이니, 노출 수위는 김민희의 열연 앞에서 완벽히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연기가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잡지 모델로 화려하게 데뷔한 김민희는 CF, 드라마 ‘학교2’에 출연하며 연예계 활동을 이어갔지만 배우보다는 패셔니스타로 불렸다. 10년 전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굿바이 솔로’로 드디어 ‘배우’로 인정받은 후,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권칠인 감독), ‘여배우들'(이재용 감독), ‘화차'(변영주 감독)에 이르기까지 색깔 있는 작품들로 필모그래피를 채워나갔다. ‘화차’에서 모든 것이 거짓인 여자를 서늘한 눈빛으로 완성시킨 김민희는 ‘연애의 온도'(노덕 감독),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홍상수 감독)에서는 섬세한 일상적인 연기까지 소화하며 평단과 관객의 극찬을 한몸에 받았다.
배우로 물이 오를 대로 오른 김민희는,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에서 또 한 번 자신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었다. ‘아가씨’에서 그는 순수와 관능, 독기를 한데 발산한다. 극중 히데코가 홀로 무대 위에서 신사들을 압도하듯, 김민희의 연기에 관객들의 숨이 턱 막힌다.
만개한 연기를 보여준 ‘아가씨’로 제69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까지 진출한 김민희. 커리어의 정점을 찍고 있는 그는 경쟁과 비교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40대를 기다린다고 했다. 김민희의 40대는 어떨지, 40대 김민희는 또 어떤 빛깔을 뿜어낼지 벌써 기다려진다.
■ 다음은 김민희와 일문일답
-칸영화제에는 마음껏 즐기고 왔나. 기립박수가 꽤 길게 나왔는데
영화제는 사실 다 비슷하지만, 기립박수가 생소했다. 불안하다고 해야 하나, 마음은 기쁜데 그 순간만큼은 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레드카펫이 편했다. 칸은 부산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처음이었는데 낯선 느낌 없이 굉장히 편했다.
-작품을 선택하는 데 박찬욱 감독의 영향도 컸나
당연하지. 감독님의 전작들을 보며 꼭 한 번은 함께 작업해보고 싶었다. 시나리오 받고 2~3일 만에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성격적으로 출연을 하든 안 하든 빨리 답변하는 편이다. 특히나 ‘아가씨’는 캐스팅, 오디션 과정이 꽤 길었던 걸로 알고 있거든.
-함께 극을 지탱하는 상대배우 신인인 김태리였다. 선배 배우로서 책임감이나 부담감도 있었을 텐데
(김)태리는 그런 생각할 필요 없을 만큼 준비된 배우였다. 촬영 전부터 감독님과 따로 만나서 많이 준비했던 걸로 알고 있다. 내가 딱히 도와줄 건 없었다. 주눅 들지 않고 당차고 야무진 친구더라.
-가장 어려웠던 장면은?
아무래도 베드신은 처음이라서 어려웠다. 다만 정확한 콘티는 있었다. 감독님과의 대화만으로도 충분한 도움이 됐다. 스태프들의 배려도 굉장했다. 촬영감독님께서 촬영장 밖에서 원격으로 카메라를 조정하셨다.
-가장 애착 가는 장면은?
낭독회 장면. 잘하고 싶었다. 신사들을 홀로 장악해야 하는 장면이잖아. 일인 다역을 연기하는 설정도 재밌었다.
-낭독회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일본어 연기가 수준급이었다.
캐스팅되고 나서 배우들 각각 일본어 개인 선생님이 붙었다. 일본어를 배웠다기보다 시나리오를 공부하는 식이었다. 히라가나로 읽고 쓸 수 있는 정도가 된 후에 본격적인 대사 연습에 들어갔다. 칸에서도 일본 기자들이 일본어 수준이 높았단 얘길 하더라. 일본어가 처음엔 어려웠는데 읽을 줄 알게 되니 재밌어지더라.
-히데코가 숙희에게 처음 마음이 흔들린 순간은 언제일까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한 친구네’란 미묘하고 이상한 느낌이 들었을 것 같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시작을 어느 한순간이라고 정의 내리긴 쉽지 않다. 실생활에서도 마찬가지 아닌가. 처음 만난 순간부터 점점 감정이 겹치고 쌓이면서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표출되는 게 사랑 아닌가. 히데코도 그랬던 것 같다.
-함께 작업하며 발견한 박찬욱 감독의 의외의 면이 있다면
농담을 하시는데 안 웃긴 것 같다.(좌중폭소) 정확히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여러 번 작업하신 스태프분들은 이해하시는 농담들이었다. 우리가 ‘응?’이라고 반응하면 주변에서 감독님을 놀리시곤 했다. ‘나중에 먹히는 개그야’라고 하시더라.(웃음)
-‘아가씨’ 이후 센 작품들만 제안받을 것에 대한 우려는 없나
그런 생각은 안 해봤네. 만약 그렇다고 해도 그게 내 운명인 거고. ‘화차’ 찍고 나서도 비슷한 질문을 받았는데, ‘화차’ 다음 작품이 ‘연애의 온도’였다. 다 편견인 것 같다.
-‘아가씨’가 김민희의 필모그래피에서 어떤 의미를 차지하게 될까
2016년 서른다섯 살에 했던 작품이지. 내겐 모든 작품이 다 특별하다. 1년에 한 작품씩 꾸준히 했는데, 모든 작품이 내 삶이었다. 어떤 한 작품이 유난히 특별한 건 없다. 그럼 나머지 작품은 안 특별하단 의미인가, 그건 아니잖아. 그렇게 가치를 두고 싶진 않다.
-그렇다면 연기의 재미를 알게 해준 작품은?
KBS2 드라마 ‘굿바이 솔로’때부터. 영화는 ‘뜨거운 것이 좋아’때부터다. 가장 빨리 결정한 작품은 ‘화차’였는데 주변에서 엄청 놀라더라. 내가 안 할 줄 알았나 봐. ‘화차’는 당시 내게 들어온 작품 가운데 모든 면에서 가장 좋은 시나리오였다. 그런 좋은 시나리오가 내게 들어왔다는 것만으로도 소중했다.
-칸영화제 기간 이자벨 위페르와 홍상수 감독의 신작을 촬영했다. ‘아가씨’가 경쟁부문에 오르고 나서 증흥적으로 계획된 작품인가?
자세히는 모르겠다. 내가 출연하게 됐을 땐 주연이 이자벨 위페르란 것까지만 정해졌었다. 이자벨 위페르가 촬영장에서 내게 ‘달링(Darling)’이라고 해주는데 정말 스윗(Dweet)하더라. 기분 정말 좋았다.
김수정 기자 swandive@tvreport.co.kr 사진=문수지 기자 suji@tv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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