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김수정 기자] 박훈정이 절치부심 돌아왔다. ‘신세계’로 흥행 신드롬을 일으킨 후 영화 ‘대호’와 ‘브이아이피’의 연이은 실패로 필모그래피가 휘청거렸다.
하지만 팬덤은 여전했다. ‘신세계’로 구축된 박훈정 팬덤은 그만의 투박한 연출 세계에 여전히 환호하고 있다.
지난 6월 27일 개봉 이후 쟁쟁한 신작 개봉 사이에서도 굳건히 한국영화 1위를 지키고 있는 ‘마녀’는 박훈정의 장점과 단점이 모두 드러난 작품이다. 느린 호흡의 드라마와 스타일리시한 액션이 함께 담겼다.
‘마녀’는 시설에서 수많은 이가 죽은 의문의 사고, 그날 밤 홀로 탈출한 후 모든 기억을 잃고 살아온 고등학생 자윤(김다미) 앞에 의문의 인물이 나타나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박훈정 감독은 소설 ‘프랑켄슈타인’과 성악설에서 ‘마녀’를 출발했다. 인간은 악하게 태어나 교화되는 존재인지, 그렇다면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탐구하고 싶었다. ‘마녀’는 그 탐구의 결과물이다.
■ 다음은 박훈정 감독과 일문일답
-오프닝에 삽입된 사진들이 인상적이다.
모두 실제 사진이다. ‘마녀’가 만화 같은 소재 아닌가. 하지만 이런 일이 실제 일어났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인류가 자행해온 일이라는 거지. 나치도, 일본 관동군이 그 예죠. 아이들을 상대로 실험하고 본인이 쓰고 싶은 대로 쓰려 했던 인간들이 실제 존재했다는 것을 영화 서두에 보여주고 싶었다.
-사진 저작권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나
실제 보도가 됐던 사진들을 구했는데, 저작권은 글쎄. 제작부에서 알아서 한 거라.(웃음)
-성악설에서 출발한 영화다.
사람은 본성이 악하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훈육해야 하고 법과 제도를 통해 인간의 본능을 눌러줘야 한다는 게 성악설의 기본이다. ‘마녀’는 순자의 성악설에 딱 맞는 이야기다. 자윤이 본성을 누르고 살 수 있었던 건 엄마, 아빠, 친구, 따뜻한 마을 사람들 덕분이다. 절대악을 발현하지 않고 살아온 것은 평화로운 환경 덕분에 가능했다는 거지. 과연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궁금증에서 출발한 이야기다.
-성악설을 믿는 이유가 있나
TV뉴스가 성악설이 맞다는 걸 1시간 내내 증명하지 않나. 뉴스를 보면 성악설을 믿을 수밖에 없다. 사람이 다 선한 존재라면 법도 필요 없겠죠. 사람은 모두 이기적이다. 그런 본성을 무시한 게 공산주의잖아. 모든 사람이 똑같이 잘 살 수 있다는 논리. 그래서 실패한 거지. 이기심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거다. 자본주의가 잘 나가는 이유는 이기적인 사람의 본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내가 더 잘 나가고 싶은, 내가 더 많이 갖고 싶은 본성 말이다. 때문에 끊임없이 인간의 본성을 교화하고 윤리관을 교육해야 한다고 본다.
-측은지심이라는 감정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하. 얘기가 재밌어지네요.(웃음) 이것 때문에 조선시대 때 파가 나뉘었잖아요. 이가 먼저냐 기가 먼저냐. 이것 참 동양철학을 얘기하다 보면 끝이 없는데, 어디까지 얘기해야 하나.(웃음)
-초반 1시간의 드라마가 다소 빤하단 지적이 있다.
‘마녀’뿐만 아니라 내 작품 전반이 호흡이 느리다. 그게 내 호릅 같다. ‘마녀’ 같은 경우는 앞부분이 쌓여야 뒷부분의 충격, 감정이 세거든. 그 차이를 크게 만들기 위해 초반에는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자윤과 아버지의 병실 장면이 짧지만 인상 깊었다. 영화의 주제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더라.
맞다. 액션은 오락영화로서의 볼거리고, 병실 장면 때문에 초반 1시간의 드라마가 펼쳐진 거다.
김수정 기자 swandive@tvreport.co.kr 사진=김재창 기자 freddie@tvreport.co.kr, 영화 ‘마녀’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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