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이우인 기자] 가녀린 체구이지만 내공은 중견배우 못지않다. 배우 이봄은 밟혀도 일어나는 ‘Spring’처럼 속이 알찼다. 연기를 향한 집념은 따뜻했다. 대중에게는 다소 낯선 배우이지만, 한 번 만나면 더 알고 싶은 마음이 피어나게 하는, 묘한 매력을 지녔다.
이봄은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김의석 감독)에서 뉴커런츠상을 수상한 영화 ‘죄 많은 소녀’로 생애 처음 이 영화제의 레드카펫을 밟았다. 아역배우 시절인 2003년 영화 ‘선생 김봉두’로 첫발을 내디뎠지만, 성인 배우로의 본격 시작은 이날이다.
‘죄 많은 소녀’가 이룬 성과와 함께 2017년은 이봄에게 선물과도 같은 해다. KBS2 드라마 ‘란제리 소녀시대’를 통해 박귀자 캐릭터를 만난 것. “드라마 고정 출연이 처음이어서 제작 환경도 처음 느껴봤다. 굉장히 설렜고 즐거웠다”는 이봄. 이제 시작한 그녀를 TV리포트가 만났다.
◆ 박귀자의 ‘란제리 소녀시대’
지난가을 방송된 ‘란제리 소녀시대’는 1970년대 후반 소녀들의 성장통과 사랑을 그린 드라마다. 대구가 배경이어서 경상도 사투리 능력이 요구됐다. 이봄이 맡은 박귀자는 욕심이 가득한 반장 캐릭터. 사투리 구사는 필수, 캐릭터 분석력도 갖춰야 했다.
다행히 이봄은 고등학생 때까지 대구에서 성장한 그 지역 토박이다. 배우가 되기 위해 사투리를 고쳤다. 이봄은 “부모님과 친구들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사투리가 나온다”라면서도 “서울말로 지낸 지 꽤 돼서 그런지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가면 싸우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고 ‘큭큭’ 웃었다.
‘란제리 소녀시대’는 이봄이 태어나기 훨씬 전인 1970년대의 풍경을 담은 드라마. 그 시대를 이해하지 못 하면 자칫 합성사진처럼 튈 수 있다. 그러나 이봄은 “그 시대 대구에서 부모님이 사셨기 때문에 특별히 다르다고 생각하진 않았다”며 “교내의 질투라든지, 드라마가 다루는 소재가 지금도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다”고 말했다.
박귀자 캐릭터에 대한 이봄의 애정은 남다르다. ‘밉상의 아이콘’이란 수식어를 언급하자 이봄은 “밉상은 아니다”고 선을 그으며 “반장이고 공부도 1등, 규율 반장이었는데, 더 공부를 잘하고 여러모로 뛰어난 친구를 만나니 자연스럽게 그런 행동이 나왔을 거라 감정 이입을 했다”고 전했다. 이봄은 귀자와 달리 “욕심은 많지만, 질투는 없다”며 자신의 실제 성격도 덧붙인다.
◆ 할머니 위해 시작한 연기, 조바심 없다
이봄의 데뷔 계기는 조금 특별했다. 집안과 친적 통틀어 제일 막내인 이봄은 맞벌이하는 부모님 사정으로 할머니 집에 혼자 맡겨졌다. 아기 때는 몸이 약해서 할머니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았다. 이봄은 중학생 때 세상을 떠난 할머니를 떠올리며 “엄마 같은 존재였다”고 표현했다.
“할머니께 뭔가 해드리고 싶었어요. 할머니 취미가 매일 누워서 TV를 보셨거든요. 손녀가 TV에 나오면 행복해하시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때 때마침 초등학교 벽에 연기학원의 광고 포스터를 봤어요. 떼어 가지고 와서 엄마한테 보내달라고 부탁했죠. 뭔가 하고 싶다고 말한 게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4개월 정도 연기학원에 다닌 이봄에게 어머니는 “해볼 만큼 해봤으니 그만둬라”라고 말했다. 연기를 배우면서 흥미를 느낀 이봄이지만, 큰 미련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본 오디션이 ‘선생 김봉두’였다. 이 영화는 초등학생 이봄의 진로를 바꿔놨다. 이봄은 현장을 느끼고, 스크린 속 자신의 모습을 보며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다.
다만 주위 어른의 조언으로 학업은 마치고 시작하기로 했다. ‘선생 김봉두’ 이후 특별한 작품 활동이 없는 이유다. 이봄은 “연기적으로 내공을 쌓고 싶었다. 공백도 길고, 큰 주목을 받진 못 했지만, 독립 저예산 영화에 꾸준히 출연했고, ‘죄 많은 소녀’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2관왕에 오르면서 나는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조바심은 전혀 없다”라고 의젓하게 말했다.
◆ 배두나 박정민 팬, 믿보배가 목표
봄이라는 이름처럼 이봄은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작품을 대하는 배우다. 그녀는 “선배들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유심히 공부가 되는 것 같다”라며 “내가 등장하는 장면이 없어도 선배들이 연기할 때 찾아가서 기웃거리게 된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롤모델은 없다. 그 이유는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정말 많다”는 것. 이봄은 “어떤 영화를 봤을 때는 이 배우가 최고다, 하고 다른 영화를 볼 때는 저 배우가 최고다 한다”라고 말했다. 다만 변심 없이 좋아하는 배우는 있다. 이봄은 “배두나 선배다. 영화 ‘코리아’ 때부터 선배가 출연하는 작품은 빼놓지 않고 봤다”라고 팬심을 드러냈다.
첫사랑은 고등학교 2학년, 마지막 연애는 1년도 더 돼 “로맨스 감정을 까먹었다”는 이봄. 함께 호흡하고 싶은 남자배우를 꼽아달라 묻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박정민을 외친다. “‘파수꾼’ 때부터 박정민 씨가 나오는 작품은 찾아 봤다. 연기를 정말 잘한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우연히 만나 사진도 찍었다”며 소녀 감성도 쏟아냈다.
한 시간 남짓 짧은 인터뷰. 이봄은 지금에 만족하지 않지만, “열심히 내공을 쌓아 언젠가 각광을 받고 싶다”며 오랫동안 영글 자세를 갖춘 배우였다. 끝으로 배우로서의 목표를 물었다. “좋은 작품에서 성실하게 맡은 배역을 소화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책 한 장이라도 더 읽어서 조금씩이라도 발전하도록 하겠다.”
이우인 기자 jarrje@tvreport.co.kr / 사진=MBG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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