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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냉철한 엄마, 내 연기의 원동력…’동백꽃’ 인정받은 기분”[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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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손효정 기자] 배우 이정은의 2019년은 ‘눈이 부시게’ 빛났다.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로 백상예술대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했고, 영화 ‘기생충’으로 춘사·부일·청룡영화상에서 여우조연상을 휩쓸었다. 여기에 최근 종영한 KBS 2TV ‘동백꽃 필 무렵’을 통해서는 ‘국민 엄마’에 등극하며, 연말 시상식 대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연기 인생 30년 만에 주목받은 이정은은 실제 만나 보니 매우 단단한 사람이었다. 들뜨지도 않고, “운이 좋았다”면서 겸손해했다. 이정은은 “어머니 말로는 제가 올해 삼재인데, 호삼재라고 한다. 그래서 나쁘지 않다고 했는데, 그 말씀대로 된 것 같다”면서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 ‘국민 엄마’ 어떻게 탄생했나

이정은은 ‘동백꽃 필 무렵’에서 동백(공효진 분)의 엄마 조정숙을 연기했다. 7살 때 동백을 버린 모진 엄마는 어느날 치매에 걸려 동백 앞에 나타났다. 어딘가 수상해보이는 정숙. 알고보니 신장병에 걸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그는 보험금을 주기 위해 딸을 찾아온 것이었다. 평생을 죄책감 속에 살아온 정숙의 “34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사랑했다”는 딸을 향한 고백은 시청자를 울렸다. 

이정은은 딸을 힘들게 키워온 미혼모의 모습을 리얼하게 표현해내며, 극의 몰입을 높였다. 후반부로 갈수록 ‘이정은 얼굴만 봐도 눈물난다’는 평들이 나올 정도. 놀라운 모성애 연기를 펼친 이정은은 사실 미혼이다. 올해 나이 50세로 딸인 공효진과는 10살 차이 밖에 나지 않는다. 공효진은 이정은이 ‘언니 같은 엄마라서 좋다’면서 지금도 ‘엄마’라고 부른다고 했다. 

“저도 사실 모성을 연기했다는 것보다는 다음 세대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남보다 정이 많거나 그런 것은 아니고, 제 주위에 한부모 가족도 많고, 그런 일상을 보냈던 것이 열쇠가 된 것 같아요. 전작에서 딸들도 많았고, 그런 교류들이 다른 딸을 만났을 때도 영향을 미쳤던 것 같아요.

정숙 역이 좋다는 것은 모든 배우들이 알아요. 저는 지금도 정숙을 다른 분이 했으면 더 잘했을 것 같은 생각이 양심상 있어요. 그런데 제가 잡았고, 어떻게 테크닉을 부릴 수 없으니깐 제일 중요한 것은 마음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저희 어머니도 보시고 ‘너가 엄마는 아니지만 마음을 다 하는 것 같더라’고 하셨어요.”

사실 이정은은 하마터면 조정숙을 만나지 못할 뻔 했다. ‘치매 엄마’ 설정이 ‘동백꽃 필 무렵’ 출연을 고심하게 만들었다. “‘아는 와이프’ 때문에 치매 엄마 역할이 들어오는 타이밍이었어요. 요즘에는 젊은 치매도 많다고 하고, 좋은 의미로 첫 작품을 했는데 두 번째도 치매라니깐 고사를 했어요. 그런데 감독님, 작가님이 연말에 사람들한테 따뜻한 위로가 되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설득해주셨어요. 그래서 믿음을 가지고 하겠다고 했죠. 놓쳤으면 큰일날 뻔 했어요.”

이로인해 이정은은 ‘쌈, 마이웨이’ 임상춘 작가와 인연이 이어졌다. ‘쌈, 마이웨이’에서 이정은은 설희(송하윤 분)의 엄마로 출연했던 바. 이정은은 “작가님이 정말 옆집 족발집 사장님처럼 나와서 좋았다더라. 이번에도 내가 하면 ‘엄마’라는 사람이 잘 나올 것 같다고 같이 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이정은이 본 임상춘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작가님은 역할을 주고 별 말을 안 해요. 그게 어떻게 보면 자유롭기도 하고 책임감도 부여해주시는 것 같아요. 양딸이 저를 찾아와서 보험금을 달라고 했을 때, 처음으로 작가님한테 메시지가 왔어요. 그리고 종방연 때 뵀는데, ‘전사 부분들이 어려웠을텐데 책임감 있게 소화해주시고, 동백 엄마 역할을 잘해줘서 고맙다’고 해주셨어요. 작가님을 찾는 분이 너무 많아서, 한 10분 정도 얘기한 것 같아요. 자그마한 거인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정은은 ‘동백꽃 필 무렵’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에 대해서는 “동백 엄마의 흥식이를 만나러 가는 장면”을 꼽으며 “용기를 내서 살인자와 마주보는, 딸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담대함이 느껴졌다”고 덧붙였다. 또한 동백이가 ‘나랑 7년 3개월 어땠어?’라고 물었을 때, ‘적금 타는 것 같았어’라고 답한 대사를 보고는 임상춘 작가의 필력에 감탄했다고 밝혔다. 

이정은은 앞선 작품들 때문에 ‘까불이’ 오해를 받기도 했다. ‘기생충’에서 이정은은 미스터리한 가정부 문광 역을 연기했고, tvN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에서는 고시원 주인 엄복순 역을 맡아 살인을 하는 섬뜩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이정은은 이 같은 오해를 받을 줄 몰랐다면서 “억울했다”고 심경을 털어놓았다.

“뭐만 하면 ‘타인은 지옥이다’ 얘기가 나오더라고요. 제가 사라지거나, 별뜻 없이 얘기만 해도 의심하니깐 억울한 점이 있었어요. 작품에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도 됐고요. 그래도 뒤에 있는 내용을 저는 알잖아요. 언젠가 오해가 풀리면, 커다란 반전으로 생각해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그 시간들을 견딘 것 같아요.”

◆ 엄마 인정 가장 기뻐…양희승 작가와 재회

인터뷰를 하면서 이정은은 ‘엄마’ 얘기를 많이 했다. 동백이처럼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딸이었다. 평소 이정은의 연기를 냉철하게 본다는 어머니는 ‘동백꽃 필 무렵’은 호평해줬고, 이정은은 그래서 기뻐보였다. “엄마를 만족하게 해드리기 위해서 열심히 연기했고, 원동력이 됐다. 엄마의 냉정함이 (연기의) 몇 할이 된 것”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엄마는 제 연기를 ‘잘한다’가 아니고 냉철하게 보세요. ‘이번에는 연기를 쟤보다 못한 것 같아’, ‘이번에는 좋았다’고 다이렉트로 얘기하세요. ‘기생충’은 제가 조금 나온다면서 사람들이 각광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시더라고요. ‘타인은 지옥이다’는 좀 힘들어하셨어요. ‘너는 애가 왜 이렇게 능글능글하니?’라면서 저의 이상한 점들이 드러난다고요.

엄마는 ‘동백꽃 필 무렵’ 같은 드라마를 좋아하셨던 것 같아요. 외모가 나하고 비슷해지고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게 신기하고 안정적으로 보이시나 봐요. 제가 일일드라마를 했을 때는 제 연기가 튀고 연극배우 같다고 못 보셨어요. 지금은 복지관 가서 딸이 사인을 해줄 수 있다고 어머니가 떠벌리고 다니세요.(웃음)”

냉철한 어머니까지, 이정은의 ‘동백꽃 필 무렵’ 속 연기는 모두가 인정했다. 그는 공효진과 함께 ‘KBS 연기대상’ 후보까지 거론되는 상황. 대상 수상과 관련해 질문하자, 이정은은 손사래를 쳤다. “상 욕심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건 욕 먹어요. 저는 사람들이 어떤 부분에서 감동받는지는 알겠어요. ‘기생충’으로 송강호 선배님이 남우주연상을 놓쳤는데, 그랑프리를 받아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중심을 잡아줬던 인물이기 때문이에요. ‘동백꽃 필 무렵’에서는 강하늘 씨, 고두심 선생님처럼 별별 사건이 아닌데 일상을 만들어주시는 사람이 대상감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보이지 않는 선을 만들어준 옹산의 주민들도요. ‘조정숙이 이정은인지, 이정은이 조정숙인지 모른다’가 제일 좋은 상 아닐까 싶어요.”

이정은은 지난 1991년 연극 ‘한여름 밤의 꿈’으로 데뷔했고, 첫 영화는 2001년 영화 ‘와니와 준하’다. 이후 약 60편의 작품에 출연하면서 그는 ‘신스틸러’로 점점 이름을 알렸다. 특히 2015년 tvN ‘오, 나의 귀신님’에 점쟁이 보살 서빙고 역을 맡아 주목받았고, 지난해 tvN ‘미스터 션샤인’에는 고애신(김태리 분)을 살피는 함안댁으로 출연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올해 잭팟을 터뜨린 것. 이정은은 흥행작 출연에 대해 겸손한 반응을 보였다.

“저는 저 때문에 작품들의 흥행이 됐다고 생각하지 않고요. 그분들이 그럴 시기에 제가 들어간 것 같아요. 이준익 감독님이 ‘운이 좋은 사람 옆에 있는 것이 운이 좋은 것이다’고 하셨어요. ‘눈이 부시게’는 감독님이 어머니가 병중에 계셔서 그 마음으로 작품을 대하셨고, ‘미스터 션샤인’은 드라마틱한 이야기인데 많은 제작비가 투여된다는 자체가 다른 이야기를 만들겠다는 각오죠. 거기 제가 잘 실려간 거죠. 제가 잘 된 작품을 보면 인물이 많아요. 그렇게 저희들한테도 기회가 오는 거예요.”

이정은은 오는 2020년에도 열일 행보를 펼친다. 그의 차기작은 KBS 2TV 주말 드라마 ‘한 번 다녀왔습니다’. 이정은은 인생 캐릭터를 물었을 때 “서빙고를 좋아한다”고 답한 바. ‘오, 나의 귀신님’의 양희승 작가와 ‘역도요정 김복주’, ‘아는 와이프’에 이어 네 번째로 만나게 됐다.

“양희승 작가님을 워낙 좋아하고, 주변에서 페르소나 소리를 듣고 있는데 누가 되지 않을 연기를 하면 좋겠어요. 동백이가 사랑받아서, KBS라서 그러한 걱정은 없어요. 인물을 잘 써주셨는데 잘 발현됐으면 좋겠어요. 장기적인 계획은 안 세우는 편이에요. 하루하루 잘 쌓는 배우이고 싶어요.”

여배우로서 50대에 주목받은 이정은의 행보는 매우 의미 깊다. 그는 힘들고 우울한 사람들한테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줬다는 평들을 가장 뜻깊어했다. 이정은은 20,30대의 젊은 이정은에게 어떤 말을 남기고 싶을까. “어쨌든 이상적으로 놓일 때까지 열심히 했다. 앞으로 네 속도대로 잘 해나가렴”이라고 답했다. 그는 하루 하루 열심히 후회없이 살았다며, 타임슬립이 있어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저의 좌우명은 ‘연기는 신이 도와주는 것이 아니다’예요. 천재는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천재가 아닌 사람은 요행을 바라면 안 된다는 거죠. 감성을 개발하고, 재료를 과학화시키고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는 것이 연기인 것 같아요. 천재인 사람을 부러워할 필요는 없어요. 수험생이 공부하듯 대본을 계속 보고 연기해야 해요. 노력 없이 오는 것은 없더라고요. 

저는 따뜻한 위로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말과 행위의 마력을 발휘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게 잘 안 이루어졌고 어렵다는 생각이 들면서 도전력이 생기더라고요. 이번 주말드라마 대본을 봤을 때 만만치가 않아요. 겁이 나지만, 그 힘으로 버텨온 것 같아요. 그게 영향력을 미쳤을 때, 대중과 같이 공감한다는 것이 배우가 할 수 있는 최상의 힘이라고 생각하니깐 그 순간을 위해서 달리는 거죠.”

손효정 기자 shj2012@tvreport.co.kr / 사진=김재창 기자 freddie@tv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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