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김수정 기자] 곽재용 감독은 한국 멜로영화 부흥기를 이끈 장본인이다. 데뷔작 ‘비오는 날 수채화’를 시작으로 영화 ‘엽기적인 그녀’, ‘클래식’ 등. 각각 소재와 결은 다르지만 감독의 시선은 늘 사랑에 꽂혀 있었다.
충무로가 스릴러 일색으로 도배되는 순간에도 곽재용 감독은 끊임없이 멜로를 만들어왔다. 흥행에 실패하기도, 평단의 혹평을 받기도 했으나 멈추지 않았다.
영화 ‘바람의 색’은 그가 ‘싸이보그 그녀’에 이어 일본에서 만든 두 번째 영화다. 영화는 연인 유리(후지이 타케미)와 이별로 무의미한 삶을 보내던 료(후루카와 유우키) 사이의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홋카이도의 압도적 풍광을 담은 영상미와 녹슬지 않은 감독의 멜로 정서, 세련된 연출이 돋보인다.
“10년 전부터 천천히 기획한 영화예요. 홋카이도를 배경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었죠. 일본은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영화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그래서 만화를 먼저 만들어 연재한 거죠. 한국에서도 네이버 웹툰으로 연재했고. 그 사이 한류가 끊기는 바람에 쉽진 않았죠.
감독은 스릴러에서 주로 쓰이던 도플갱어라는 소재를 멜로 감성에 녹여냈다. 돌이켜보면 ‘엽기적인 그녀’ 엔딩의 UFO, 타임 리프를 그린 ‘시간이탈자’처럼 감독은 멜로와 어울리지 않는 소재의 이종교배에 남다른 능력을 보여왔던 바.
“도플갱어끼리 마주치면 자살 충동을 느낀다는데, 왜 그런 충동을 느낄까에서 출발한 이야기예요. 영화의 배경인 삿포로와 도쿄도 마치 도플갱어처럼 닮은 도시거든요. 도쿄를 축소 복사한 게 삿포로라고 보시면 돼요.”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 ‘클래식’의 손예진. 곽재용 감독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배우들의 필모그래피에 인생작을 안겨줬다. 전지현과 손예진 모두 제 대표작을 뛰어넘기 위해 오랜 세월 스스로를 끊임없이 담금질해야 했다. 연출자로서 배우의 대표작을 만들어낸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얼마 전에 (손)예진이하고 ‘클래식’을 같이 보는데, 저나 예진이 모두 ‘클래식’을 쉽게 놓을 수 없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엽기적인 그녀’, ‘클래식’ 모두 시대적인 운, 배우 운이 따라줬어요.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는 청춘의 아름다움이 있잖아요. 남들이 찾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찾는 것 또한 행복이에요. ‘바람의 색’ 후지이 타케미도 7000대 1 경쟁률로 뽑은 신인 배우인데, 무엇보다 일본인 특유의 비음이 없어서 좋았어요. 일본에서는 그게 단점으로 작용한다고 하던데, 저한텐 눈에 띄었죠.”
한동안 한국 멜로는 극심한 침체기를 겪었다. 관객들의 니즈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영화 ‘캐롤’, ‘라라랜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같은 해외 영화가 채웠다. 그 이유에 대해 곽재용 감독은 “관객들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완성도와 마초화된 충무로”를 꼽았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도 일본 원작이 있고 ‘바람의 색’도 일본영화잖아요. 한국적인 멜로 영화는 아직도 침체기 라는거죠. 한국영화, 한국배우들이 너무 마초화됐어요. 멜로드라마에 적합한 배우가 많지 않아요. 영화계 자체도 너무 남성 영화 위주로 흘러가고 있고요. 여주인공이 없잖아요. 있어도 남성을 보조하는 역할에 머물고. 사회는 그렇지 않은데 영화는 반대로 흘러가고 있어요. 멜로는 남자와 여자의 앙상블이 중요한 장르잖아요. 이런 환경에선 힘들 수밖에 없죠.”
김수정 기자 swandive@tvreport.co.kr 사진=문수지 기자 suji@tv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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