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 칸(프랑스)=김수정 기자] ‘쥬라기 공원’을 보며 영화를 꿈꾸던 씨네키드는 다르덴 형제의 영화에 눈을 뜨며 또 다른 세계로 꿈을 확장시켰다. 그렇게 확장된 꿈은 어느 덧 칸영화제라는 세계적 무대까지 가닿게 됐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전문사 과정 졸업작품 ‘령희’로 제72회 칸국제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 공식 초청된 연제광 감독(29) 얘기다.
“어머님이 영화를 정말 좋아하셔서, 저도 비디오가게에 자주 갔거든요. 그땐 스티븐 스필버그의 ‘쥬라기 공원’이 진짜 좋았어요. 모든 게 가능하더라고요. 자라면서는 다르덴 형제 감독의 영화들을 보며 또 다른 느낌의 좋은 영화도 있다는 걸 알게 됐고요. 이번에 칸영화제에서 다르덴 형제를 보면 쫓아갈거예요.(웃음)”
‘령희’는 조선족 출신 불법 체류자 령희와 홍매의 이야기다. 시골 공장에서 일하던 령희는 불법 체류 단속반을 피하려다 추락사로 목숨을 잃는다. 홍매는 사장에게 령희 장례식을 치러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고, 사장은 령희 시신을 고향으로 보내주겠다고 말한다. 홍매는 모두가 잠든 새벽, 령희 시신을 찾기 위해 공장 주변을 헤맨다. 그러다 홍매가 마주한 광경은 관객에게 아릿한 충격과 여운을 안긴다.
“불법체류자가 단속을 피해 도망가다가 추락사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게 자살 처리가 됐어요. 뉴스로 이 얘기를 접했을 때 정말 충격적이었죠. 외갓집이 충북 괴산인데, 몇 년 전부터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아졌거든요. 뉴스에서 받은 충격과 외갓집의 풍경이 합쳐지며 지금의 ‘령희’를 구상하게 됐어요. 실제 촬영도 괴산에서 했고요. 영화 속 홍매의 집도 실제 저희 외할아버지댁이에요.”
인간으로서 아주 기본적인 예의조차 허락되지 않는 열악한 조선족의 현실을 15분 분량 안에 담담하게 담아낸 연제광 감독. 절제된 카메라 워킹과 대사, 현실감 넘치는 공기를 포착한 솜씨가 빼어나다. ‘령희’가 초청된 시네파운데이션은 학생 단편 부문. 올해는 2000여 편 출품작 가운데 단 17편만 초청됐다.
“밥 먹고 있다가 칸영화제 초청 확정 메일을 받았는데, 밥이 무슨 맛인지 모를 정도로 기뻤어요. 정말 행복했죠. 가족들과 지도교수님에게는 말씀드렸는데, 초청됐다는 소식에 엠바고가 있어서 주변에 제대로 말을 못 했어요. 답답하더라고요.(웃음)”
‘령희’의 영어 제목은 ‘Alien’, 외국인이다. 홍어를 먹어가며 상사를 상대해야 하는 중소기업 신입 여성 사원(‘홍어’), 자신을 구속하는 남편의 살인을 청부하는 아내(‘종합보험’), 재수생(‘표류’)까지. 연제광 감독은 전작들에서도 줄곧 팍팍한 현실에 놓인 인물에 주목해왔다.
“약자한테 벌어진 일을 또 다른 약자가 처리하는 모습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고민도 많았죠. 잘못하면 외국인 혐오로 그려질 수 있잖아요. 최대한 관찰자 시선에서 촬영하려 노력했어요. 추락 장면도 가장 윤리적으로 찍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고요. 그 장면에서 배우들의 행동이나 연출이 연극적이잖아요. 일부러 그렇게 표현했죠.”
그의 장편 상업영화 데뷔작 ‘서울의 밤’ 역시 사회성 짙은 작품이다. 서울에서 발버둥치고 있는 청년의 이야기를 담아낼 영화다.
그간 한국영화는 시네파운데이션에서 ‘야간비행’, ‘남매의 집’이 3등상을 받은 바 있다. 연제광 감독은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기대하냐고 묻자 “제 이번 모토가 김칫국 냄새도 맡지 말자예요”라고 답해 웃음을 안겼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최선을 다해 만들다 보면 관객분들도 좋아해주시지 않을까요. 봉준호 감독님처럼 말이에요.(웃음) 봉준호 감독님은 저를 모르시겠지만, 이번에 함께 칸영화제에 초청돼 정말이지 영광이에요. 실감이 안 나요.”
칸(프랑스)=김수정 기자 swandive@tvreport.co.kr 사진=김재창 기자 freddie@tvreport.co.kr, 영화 ‘령희’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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