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김연주 기자] 영화에 담긴 n개의 화두 가운데 함께 나누고 싶은 재미를 선별한 리뷰입니다. 사심을 담아 고른 한 편의 영화 속 단 하나의 재미, 유일무비입니다.
‘이번엔 무슨 이야기를 할까’. 홍상수 감독의 신작이 세상에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묻는다. 그만큼 그의 영화는 ‘자전적’이란 키워드와 분리되지 않는다. 물론 홍상수 감독은 “그런 게 아니다”라고 했지만, 작품 속 캐릭터의 입을 통해 나오는 문장은 마치 그가 건네는 말처럼 따끔하고 솔직하다. 특히 배우 김민희와의 열애를 인정한 이후 선보인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선 사랑을 곧이곧대로 받아 들이지 않는 세상에 항변하는 뉘앙스의 대사가 흘러나왔다.
그런 홍상수 감독이 30번째 장편영화 ‘우리의 하루’를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정리하자면 절제와 유혹, 욕망과 이성의 충돌이다. 이성을 발휘해 절제해온 것들이 욕망과 유혹으로 인해 무너진다. 70대 시인과 40대 여성이 각각 자신을 찾아온 방문객과 보내는 시간이 평행 편집되는데, 영화를 보다가 같은 하늘 아래 사는 이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한 번쯤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의 하루’는 지난 5월 제76회 칸 국제영화제 감독주간 폐막작으로 공식 초청된 바 있다. 이후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BIFF)에 초청돼 국내 관객을 만났다.
이번 작품 역시 ‘홍상수스러움’이 묻어난다. 너무 솔직해서 웃음이 터지는 대사, 찌질한 인간 군상이 담겼다. 기주봉, 김민희, 송선미, 박미소, 하성국, 김승윤 등 홍상수 감독과 손발을 맞춰온 배우들이 감칠맛을 더한다.
심장 건강 이상으로 술, 담배를 끊은 70대 시인 홍의주(기주봉 분)는 끝내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모습을, 고양이를 잃어버린 슬픔에 빠진 정수(송선미 분)는 슬픔에 허덕이는 와중에 현상금 이야기를 꺼낸다. 뭐랄까. 절대 입 밖으로 꺼내선 안 된다는 이성으로 마음 깊은 곳에 눌러둔 말이 툭툭 튀어나온다. 누구나 갖고 있지만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을 불쑥 꺼내 관객에게 던진다. 영화를 보면서 낄낄대며 웃다가 이내 숙연해지는 이유다. 영화 속 저 찌질한 인간과 내가 별반 다르지 않아서.
특히 기주봉의 연기가 일품이다. 극중 70대 시인 ‘홍의주’를 분한 기주봉은 작품의 핵심 인물로서 존재감을 발휘한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단골 출연하는 보통 범주에 있지만, 보통이라 인정하고 싶지 않은 ‘하남자’의 표본이다.
작품은 각기 다른 두 이야기를 교차로 보여주지만, 감정선이 한 데 묶여 조화를 이룬다. 홍상수표 뼈 때리는 웃음은 덤이다. 러닝타임 83분이 금세 흐른다.
한편, ‘우리의 하루’는 오는 19일 개봉 예정이다.
김연주 기자 yeonjuk@tvreport.co.kr / 사진= (주)영화제작전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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