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설이의 막후TALK> 막후(幕後)의 사람들, 나오는 사람이 아닌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하이브 콘텐츠제작실 김경원 ‘르니버스’ PD
[TV리포트=박설이 기자]1, 2세대 아이돌 덕질을 한 이들은 알 것이다. 늘 볼 거리가 부족해 더욱 목이 말랐던 그 마음. 어디서 누가 뭘 했다더라 하는 ‘썰’ 하나만 들어도 행복했던 그때. 그러다 아이돌 업계에 리얼리티라는 것이 등장하며 그 목마름은 해소되기 시작했다. 무대 아래 최애의 모습을 몰래 보지 않아도, 사생과 같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도 ‘합법적으로’ 최애의 일상을 만날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하지만 엠넷 같은 방송사에 리얼리티를 태울 수 있는 팀은 한정적이었다. 소위 ‘중소돌’이라고 불리는 비교적 작은 회사 아이돌은 리얼리티를 제작해도 보여줄 플랫폼이 없었다. 리얼리티는 큰 회사 소속 아이돌, 인기 많은 아이돌의 전유물이었다.
유튜브라는 온라인 플랫폼이 대중화되면서 이야기는 달라졌다. 2023년 아이돌계, 일반적인 리얼리티를 넘어선 각양각색의 자컨(자체 콘텐츠의 준말)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자컨이 많으니 퀄리티도 레귤러 예능 수준으로 제작 규모도 커지고 때깔이 좋아지는 이유는, 이 자컨이 또 하나의 ‘입덕’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르니버스’는 하이브 콘텐츠제작실에서 만드는 르세라핌의 예능 콘텐츠다. 대부분의 엔터사가 외주 제작사에 맡기는 반면, 하이브는 회사 내 콘텐츠제작실을 두고 하이브 레이블 소속 아티스트 관련 콘텐츠 대부분을 자체 제작 중이다. ‘르니버스’는 르세라핌과 유니버스의 합성어로, 현실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탐험하는 르세라핌의 평행우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버라이어티 예능을 표방한 ‘르니버스’는 지난해 8월 첫 선을 보인 뒤 르세라핌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팬들에게 사랑받는 콘텐츠로 자리잡았다.
최근 ‘르니버스’ 시즌2를 마친 하이브 오리지널콘텐츠제작실 김경원 PD를 서울 용산 하이브 사옥에서 만났다. 온몸으로 ‘힙’을 뿜어내기에 20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80년대생에 아이돌 콘텐츠 제작에 잔뼈가 굵은 베테랑 크리에이터였다. 콘텐츠제작실 1스튜디오 소속인 그는 르세라핌 채널에서 서비스 되는 기획형 장기 콘텐츠를 맡아 제작 중이다.
김경원PD 일문일답.
Q_하이브의 모든 콘텐츠를 제작실에서 제작하나?
세븐틴의 ‘고잉 세븐틴’의 경우는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외주 제작사에서 만들고, 그밖에 대부분의 하이브 자체 콘텐츠는 하이브 제작실에서 제작한다.
Q_많은 엔터사 자컨이 외주 제작인데 하이브는 자체 제작이다. 프리랜서 때와 무엇이 다른가?
사실 하이브에 오기로 결심한 계기가 제작실이라는 존재였다. 기존에는 짧은 호흡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왔다. 제일 아쉬운 게 편집 과정에서 알게 되거나, 뒤늦게 알게 되는 (출연 아이돌의) 매력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매력은 아티스트와 여러 번을 작업하지 않은 이상 콘텐츠에 녹여내기 힘들고, 그래서 아쉬웠다. 인하우스 제작을 하게 되면 (콘텐츠가) 공개된 이후 팬들로부터 피드백도 받을 수 있고, 연출자로서 제작팀 안에서 아티스트와 호흡을 길게 가져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제작진과 아티스트 간 호흡이 유지가 된다는 장점이 있다. 하이브 콘텐츠제작실에 가면 한 아티스트와 긴 호흡으로 제작해 그간 아쉬웠던 부분이 해소될 것이라고 생각해 합류하게 됐다.
Q_르니버스팀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여러 문제로 보안에도 각별히 신경 써야 할텐데..
르니버스를 맡아서 제작하고 있는 연출팀은 나를 포함해 4명이지만 제작실 내부에서 서로 현장 지원을 나가거나 기획에 따라 인원이 많아지는 경우, 또 적어지는 경우도 있다. 제작실 내부에서 서로 지원하며 일하고 있다. 카메라의 경우 기획에 따라 다르기는 한데 (멤버들이) 앉아서 촬영하는 편은 카메라 6~7대 정도다. 오디오 스태프 등까지 하면 현장 인원은 15명 정도 된다.
보안은 제작에 있어 거의 1순위이다. 멤버들이 촬영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촬영 장소 선정도 그런 부분을 많이 고려한다. 통 대관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몰입해서 촬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Q_아이템은 어떻게 정하나? 특별히 고려하는 것은?
하이브 콘텐츠제작실의 기조이기도 하고, 저의 생각이기도 한데, 아티스트가 재미있고 즐겁게 촬영할 수 있어야 콘텐츠도 재미있다는 생각이다. 역시나 아이템 선정에 있어 가장 고려하는 것은 멤버들이다. 르세라핌이 할 때 재미있어야 콘텐츠가 잘 나오기 때문에 멤버들이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게 뭘까 늘 생각한다. 제작팀이 아티스트의 모든 콘텐츠를 챙겨보고 아이디어를 많이 얻는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르니버스’화하여 발전시킨다. 그리고 팬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도. 피어나(르세라핌 팬덤)가 뭘 보고 싶어할까 고려한다.
Q_팬과 멤버들에게 가장 반응이 좋았던 에피소드는?
팬과 멤버들 반응이 겹치더라. 사실 몇 가지 꼭 찍고자 했던 아이템이 있다. 예를 들면 PC방. 사쿠라가 워낙 게임을 좋아하고, 제작팀 내에도 게임 애호가인 팀원들이 많아서 꼭 해보자고 했었다. 찍을 때도 엄청 좋아할 거라고 생각은 했었는데 이 정도로 좋아해줄 줄은 몰랐다. 누적 뷰가 400만이 넘고, ‘인급동'(인기 급상승 동영상)에도 올랐었다.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다. 게임을 잘하는 멤버도 있고 게임을 안 하는 멤버도 있어서 그 갭을 어떻게 줄일까 고민했다. 사실 제작진은 개입을 많이 안 한다. PC방에서도 여러 가지 게임을 준비는 했었지만 멤버들이 하고 싶은 게임을 했으면 좋겠다고 제안을 했다. 게임을 잘 모르는 멤버도 할 수 있는 게임 위주로 준비를 해서 세팅을 했었다.
그리고 르니버스 시리즈에서 사랑을 받았던 건 ‘오히려 좋아’ 시리즈였다. ‘비 오니까 오히려 좋아’ ‘추우니까 오히려 좋아’ 두 편인데, 이 특집이야말로 멤버들이 많은 부분을 해줬던 에피소드다. 멤버들에게 감동을 받았던 게, 환경을 세팅하고 그 안에서 멤버들이 즐겨줬기 때문에. 제작진은 세팅만 해두고, 최대한 아웃풋을 어떻게 뽑을까 고민을 하는 과정이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잘 나왔다.
Q_이들의 매력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서는 멤버들에 대해 잘 알아야 할 것 같다.
아티스트의 공식적인 스케줄을 제외하고 따로 소통을 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콘텐츠 촬영 전에 미팅은 한다. 또 콘텐츠를 찍어가면서 멤버들에 대해 알아가게 되는 경우도 많고. 대부분 어린 나이에 데뷔한 친구들이라서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것을 못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그래서 촬영을 계기로 이들이 놀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멤버들에게도 ‘촬영이 기회다, 하고 싶은 거 언제든지 얘기해주면 더 재미있게 발전시켜서 콘텐츠로 만들겠다’고 얘기하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낸다.
삼겹살 회식 에피소드의 경우 멤버들이 밖에 편하게 나가서 고기를 먹기 어려우니 ‘르니버스’에서 하게 해주겠다고 제안을 했던 아이템이다. 멤버들도 ‘르니버스’ 촬영장 가면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다면서 즐거워하기 때문에 대체로 (멤버들 의견이) 적극 반영이 된다. 이제 눈치를 챈 것 같더라(웃음). 또 그랬을 때 대부분 결과가 좋다. 찜질방에서 찍은 에피소드도 자컨 외 다른 콘텐츠에서 “찜질방 가고 싶다”라고 말했던 걸 기억해서 진행했다. 팬들은 잘 아는 얘긴데, 멤버들끼리 나갔다가 잘못해서 찜질방이 아닌 사우나를 가서 결국 찜질방에 못 가 본 일이 있었다. 그걸 기억해 놨다가 찜질방 촬영을 한 거라 멤버들이 정말 재미있게 놀았다.
박설이 기자 manse@tvreport.co.kr/사진=하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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