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후TALK] 인터뷰①에 이어
[TV리포트=박설이 기자]촬영 장소를 찾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는 김현우 대표, 우리나라에서 안 가본 곳을 찾기 힘들 정도로 발품 파는 데 도가 텄다. 한 발이라도 더 걸어 조금이라도 더 멋지고, 드라마에 더 잘 어울리는 장소를 찾는 데서 만족감을 느끼는 그의 최애 장소는 어디일까? 이 일을 하며 특별히 당황을 했거나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은 또 언제였을까?
김현우 대표 일문일답 이어서.
Q_전국으로 헌팅을 다니는데, 보통 얼마나 움직이나?
”엄청 다닌다. 1년에 많게는 4만km를 뛸 때도 있었다. 2019년에 새 차를 뽑았는데 2021년에 보니 18만km를 탔더라. 그때 지방 로케이션인 드라마가 많았었다. ‘시크릿 부티크’ ‘화양연화 ‘여신강림’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까지. 드라마마다 다르기는 한데 지난해 ‘모범택시2’의 경우 5월부터 9월까지 강원도, 경북, 전북, 전남, 거제 답사를 다녔다. 두 달 동안 3만km 조금 넘게 뛰었더라. 기름값은 최대 월 130만 원까지 나온 적이 있고, 평균적으로는 60~70만 원 정도, 현대물의 경우에는 40~50만 원 정도 나온다. 물론 제작비로 지원된다.”
Q_로케이션 매니저의 근무 환경도 궁금하다.
“2015년에 ‘밤을 걷는 선비’라는 작품을 할 때 일산 집에서 문경 세트에 가서 오전 7시에 스태프들 입장 시키고, 미팅이 있어 전남 화순에 갔다가 점심 먹고 문경으로 돌아갔더니 스태프들 저녁 먹고 촬영이 종료됐더라. 다음날은 동해로 이동했다. 그날만 1200km 탔다. 그때는 주 52시간 근무 제한이 없던 시기라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은 제작 환경이 정말 좋아졌다. 방송업 종사자들은 훨씬 살 맛 난다.
이 분야에 프리랜서가 여전히 많은데 우리 직원들은 기본 급여가 나간다. 작품 없을 때도. 촬영장에는 제반 정리 등을 위해 로케이션 매니저가 있어야 하는데 나갔을 때는 다른 스태프들처럼 주 52시간 맞춰 근무하고, 촬영 없는 날에는 장소 헌팅을 나간다. 스케줄에 따라 유동적이다.
내가 일을 시작할 때는 모든 걸 혼자 해야 했다. 옛날엔 쪽대본, 회치기 같은 게 있지 않았나. 그럴 때는 하루이틀 안에 장소를 찾아서 섭외까지 해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도둑 촬영도 정말 많이 했다. 회차가 많은 주말 드라마의 경우에는 이틀 안에 로케이션 촬영을 몰아 찍는 경우도 있었다. 그때는 다 근처 스폿에서 해결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곤 했다. 예전에 다 혼자 해야 했던 일이지만 지금은 보통은 한 작품에 3인 1조로 움직인다. 1명은 촬영 현장, 1명은 헌팅, 1명은 연출가와 소통.”
Q_장소 헌팅이 끝인 줄 알았다. 제반 정리가 구체적으로 뭔가?
“예를 들면, 예전에는 장소 헌팅 시 ‘여기에서 여기까지만 장소 촬영 가능하다’고 섭외를 했는데 막상 촬영을 시작하면 (감독이) 더 넓은 범위를 원하거나, 섭외 외의 장소를 원하는 경우 때문에 마찰도 있었다. 지금은 이런 일은 거의 없다.
촬영 협조와 민원 관련 문제도 로케이션 매니저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제작부와 함께 민원 등 현장에서의 돌발 상황에 대응하는 일이라고 보면 된다. 공공시설 촬영의 경우 아직까지 규격화된 허가 절차가 없다. 도로 촬영을 할 경우 경찰이나 현지 지자체에 ‘촬영이 있다’고 알리기는 하지만 현장에서 민원이 생기는 등의 일을 책임지는 부서가 없는 실정이다. 경찰 측에서도 도로 촬영을 한다고 하면 ‘민원 들어오지 않게 해달라’고 주의를 주는 게 전부다. 시위 전 시청 등에 신고하는 것처럼 촬영도 적법하게 신고하고 진행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Q_하는 일이 생각보다 정말 많다.
“군대로 따지만 주임원사, 현장에서 엄마 같은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항상 조용히 어딘가에서 뒷짐 지고 지켜보지만 마음은 항상 조마조마하다. 현장에 누가 되지 않도록 안 보이는 데서 정리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다른 현장 가보면 로케이션 매니저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다. 혼자 발 동동 구르는 친구가 로케이션 매니저다.
현장에서의 돌발 상황도 로케이션 매니저가 정리하는 경우가 많다. ‘누가 여기서 촬영하라고 했냐’면서 항의를 하는 시민도 그렇고, 취객이 난입하는 경우도 있다. 심할 때는 촬영을 접기도 한다. 그래서 시민과 촬영 스태프가 마찰을 빚었다는 뉴스를 보면 많이 안타깝다. 양측 입장을 다 이해하기 때문에. 가운데서 조율하는 것도 우리 일이다. 물론 우리도 제작진이다 보니 스태프에게 더 마음이 기우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강력한 민원인의 등장은 촬영에 큰 복병이다. 설득이 안 되는 민원인이 등장하면 연출자에게 사실을 얘기하고 다른 대안책을 제시하기도 한다. 민원인 때문에 촬영을 접었던 경우도 물론 있었다.”
Q_멘탈이 강해야 할 것 같다.
“난 유리 멘탈이다. 그래서 멘탈을 잡으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구석에서 대본을 보기도 하고, 가족에게 괜히 전화도 하면서 멘탈을 다잡으려 해본다.
야외에서는 스태프 모두가 예민한 상태이다 보니 우리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일을 한다. 몇몇 친구들은 공황장애를 겪기도 했다. 조울증을 앓기도 했고.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 웃다가 화내는 사람도 있고 화내다가 웃는 사람도 있고. 우리가 거기에 휘둘릴 때도 있다. 그럼에도 후배들에게 자주 얘기한다. ‘내가 편해야, 내 주변이 편해야 일할 수 있다’라고.”
Q_’촬영 허가’ 제도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하는데…
“야외 촬영 현장에서는 민원이 들어오지 않을까 늘 걱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관부서, 특히 도로 등 촬영에 대한 당국의 적법한 허가 제도가 절실하다. ‘어벤져스2′ 촬영 때 반포대교와 대로 촬영 허가가 났다고 했을 때 업계에서 정말 이슈였다. 서울을 홍보한다는 명분이 확실하기에 서울시와 영상위가 추진해 가능했던 일이다. 로케이션 매니저 입장에서는 공공장소 촬영 허가를 내는 절차가 확실하게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늘 있다. ’모범택시2’ 촬영을 많이 한 부산의 경우 ‘영화의 도시’이기에 그나마 촬영에 관대한 지역이라 현지 영상위에서 협조를 많이 해줬다.”
Q_다른 이야기를 해보겠다. 가장 좋았던 장소는 어디인가?
“거제도라는 섬 자체를 좋아한다. 거제 남쪽의 자연, 바다, 몽돌,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그림이 나오더라. 거제와 인연이 된 건 2017년 ‘병원선’이었다. 한 달 동안 서해, 동해, 남해 바닷가를 헌팅하며 극중 등장하는 병원선의 정박지를 찾아다녔다. 운 좋게 병원선도 섭외했다. 거제의 어떤 언덕에서 항구를 내려다 봤는데 유람선이 유유히 들어오더라. 그 유람선을 병원선으로 꾸미면 될 것 같아서 그 배 해운회사 대표님에게 배를 빌려 달라고 해서 병원선으로 꾸몄다.
촬영할 때 고생을 엄청 많이 했다. 원래 올로케가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올로케가 됐다. 거제에서 500평 짜리 세트장을 준비해 주셨다. 정말 감사했다. 그림 욕심을 내기에 너무 좋은 곳이다. 사실 제작사에서는 전 스태프가 거제로 내려가야 했기 때문에 결정이 힘들었지만 연출자가 거제의 풍경을 보고 결정했다. 거제시에서 행정 지원도 정말 많이 받았다. 여러모로 거제는 가장 고맙고, 아끼는 장소다.”
Q_가장 기억에 남은, 내가 찾은 장소가 나온 ‘씬’이 있다면?
“‘시크릿 부티크’라는 드라마에서 제니장(김선아 분)의 하수인들이 절벽 아래로 가방을 집어던지는 장면이 있다. 이걸 익산 채석장에서 찍었다. 절벽에서 무언가를 던지는 씬을 뻔하게 가고 싶지 않았다. 채석 과정에서 인공적으로 생긴 호수가 비취색인데 굉장히 몽환적이었다. 촬영 당일 아침 안개까지 껴서 분위기가 대단했다. 방송 나가고 SBS 조연출들이 그곳 어디냐고 정말 많이 물어봤다. 이럴 때 참 뿌듯하다. 한 장면을 찍으러 익산까지 내려가려면 제작비가 훨씬 많이 든다. 보통 하루 지방 로케이션에 2~3천만 원 정도가 드는데 나의 안목을 믿고 연출자가 추진을 한 것이다. 서울이나 근교에서만 촬영하면 뻔한 연속극이 되니까.”
Q_당황스러운 돌발 상황도 많을 것 같다.
“최근 일이다. ‘모범택시2’가 베트남 로케이션 촬영이 예정돼 있었는데 출국 이틀 만에 다 돌아왔다. 코로나 환자가 나와서. 베트남 촬영분을 다 국내에서 소화해야 했기에 우리가 급하게 장소를 찾았다. 하롱베이에서 촬영할 분량을 국내에서 찍어야 했다. 거제 바다가 잔잔해서 이곳에서 촬영한 뒤 CG로 섬을 합성하자 했다.
그렇게 3개월 정도를 지방에서 로케이션을 돌며 촬영하는 일정이 잡혔다. 그런데 거제 촬영이 예정된 당일 태풍이 닥쳤다. 보기에는 바다가 잔잔했는데 해경에서 촬영을 하지 말라고 하더라. 촬영이 다 준비된 상태였는데. 그런데 실제로 날씨가 엄청 안 좋아졌다. 그날 촬영 접고 다들 낮술 마시러 갔다. ‘이런 날도 있구나’ 하면서. 태풍 기간에 다른 지방 촬영을 소화하고 다시 거제에서 찍었는데 결과물은 만족스러웠다.
박설이 기자 manse@tvreport.co.kr/사진=SBS, M.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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