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박설이 기자] 포맷을 훔쳐 만드는 중국의 ‘짝퉁 프로그램’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방송에 나오는 겉모습만 대충 베끼는 예전과 달리, 이제 구성을 넘어 무대 디자인, 게임 룰 등 세세한 설정까지 판박이다.
중국 대형 방송사인 장쑤위성TV는 SBS에서 파일럿으로 방영된 ‘심폐소생송’과 같은 포맷의 프로그램 ‘명곡이었구나(原是金曲)-단오 명곡을 건지다(端午金曲)’ 방영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제작사인 코엔미디어로부터 정식으로 판권을 구입하지 않고 제작을 강행했다. 명백한 도둑질이다.
최근 문제가 된 표절작은 또 있다. SBS ‘판타스틱 듀오’다. 중국 후난위성TV에서 최근 방영을 시작한 ‘아상화니창’은 ‘판타스틱 듀오’와 비슷하다못해 거의 똑같다. SBS와 정식 판권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 이 역시 포맷 도용이다. 두 프로그램의 공통점은 모두 명절 파일럿으로 방영됐다는 점이다. 두 프로그램 모두 중국 방송사와 판권 판매 논의를 진행한 점도 같다.
중국은 토크쇼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예능이 시즌제이다보니 늘 새로운 포맷을 필요로 한다. 새로움을 향한 경쟁이 치열하다. 중국 방송가에는 방송국에 한국 방송 모니터링 담당자가 따로 있을 정도로 한국 예능계 ‘신상’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각 방송사가 명절에 ‘샘플’로 선보이는 파일럿 프로그램은 곧 판권 구입, 혹은 표절의 타깃이 된다는 의미다. 한국에서도 방영이 된 적이 없는 신선도도 높다.
한국에서 일정 기간 방송이 된 예능의 경우 한류 팬들을 통해 중국에서도 ‘한국 프로그램’이라는 인식이 있다. 만일 중국에서 표절이 의심되는 프로그램이 나와도 ‘한국산’이라는 오리지널리티를 내세울 수 있지만 파일럿은 인지도가 없으니 이조차 어렵다.
후난위성TV ‘아상화니창’의 제작자인 왕친 총감독은 ‘판타스틱 듀오’와의 표절 논란에 대해 “스타와 일반인이 함께 노래하는 건 앞으로의 추세일 것이다. 한국에서만 하는 게 아니라 미국도 지난해 스타와 일반인이 듀엣을 하는 애플리케이션과 TV의 결합 프로그램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트렌드를 따라 한국과 중국에서 각자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라기에는 ‘판타스틱 듀오’와 디테일한 설정이 지나치게 흡사하다.
많은 PD와 VJ들이 중국 예능 시장에 뛰어들었다. 아예 중국으로 적을 옮긴 이들도 늘어나 인력 유출에 대한 우려도 깊다. 과거 방송에 보이는 것만 베낄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이제 기술력을 가진 인력을 퀄리티까지 똑같이 재현할 수 있는 상황이다. 판권을 사고 안 사고는 방송 제작자의 양심 문제다. 중국 방송가도 베끼기 논란이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코엔미디어, 그리고 SBS는 ‘판타스틱 듀오’ ‘심폐소생송’에 대한 권리 침해를 좌시하지 않는다며 강경 대응 계획을 알렸다. 우리 방송 종사자들이 머리를 모아 만들어낸 창작 콘텐츠를 보호할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박설이 기자 manse@tvreport.co.kr / 사진=SBS ‘판타스틱 듀오’, 후난TV ‘아상화니창’, 장쑤TV ‘단오금곡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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