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김지현 기자] “진짜가 아닌 가짜에 집중한 제가 부끄럽습니다”
배우 유아인의 수상소감은 시상식 보다 흥미롭다. 수십개의 트로피들이 지닌 의미를 함축한듯한 그의 솔직, 담백한 소감은 큰 울림을 준다. 상을 둘러싼 겹겹의 껍데기를 벗겨내고, 예술을 사랑한 이들의 열정과 땀만 고스란히 남긴다. 1등, 자존심, 경쟁 그따위가 무슨 소용이랴. 진심을 보이는 것이 최선이다.
그래서 유아인의 수상은 특별하다. 그의 소감에는 카메라 앞에서 내가 아닌 다른 이의 인생을 살아가는 배우들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또렷하게 담겨있다. 현장에서 부딪히는 배우로서의 무력감 혹은 기쁨, 스타가 됐을 때 따르는 다양한 무게감에 대한 고민이 엿보인다. 물론 그의 소감을 불편해하는 이들도 있다. 환하게 웃거나 펑펑 눈물을 쏟으며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름은 나쁜 것이 아니다. 유아인의 진솔한 수상소감은 철저한 계산이 깔린 시상식에 진심을 불어 넣는다. 그의 솔직함이 트로피를 둘러싼 수많은 ‘가짜’와 ‘잡음’들을 무색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트로피를 쥔 채 생각에 빠지고, 익숙하지 않은 표정을 짓는 게 그리 불편한 일인가. 시상식은 경쟁이 아닌 축제의 장이다. 유아인은 그걸 아는 배우다. 그래서 꼽아봤다. 수상소감 베스트 3를.
# 2015 청룡영화제 – 남우주연상 (사도)
“무대에 어울리는 성격이 아니라 긴장했다. 오늘도 청심환 먹고 왔다. 제가 받은 상이라는 생각이 잘 안 든다. 이번에 많은 사랑을 보내주신 덕분에 이 자리에 서있다고 생각한다. 난 항상 부끄럽다. 행복하고 자랑스러운 순간보다 부끄럽고 민망하고 나서기 싫은 순간들이 더 많다. 항상 거울을 보고 다그치며 성장하는 인간, 그런 배우가 되도록 하겠다. 제가 마음속에 떠올리는 수많은 분들, 모두 제가 감사하고 사랑하는 분들이다. 감사하다”
# 2015 SBS연기대상 – 최우수연기상 (육룡이 나르샤)
“50부작 장편 드라마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었다. 마냥 행복하지는 않았지만 기꺼이 많이 배우면서 임하고 있다. 사실 오늘 함께 이 자리를 빛내주고 계신 변요한, 신세경, 윤균상, 박혁권 선배님까지 뜨거운 열정을 가진 젊은 친구들과 함께하는 행복감이 굉장히 크다. 저 친구들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싶어 이 자리에 섰다. 이 상패 안에 참 많은 스토리가 있고 많은 생각들이 오가고, 많은 야심이 뭉쳐있고, 힘 겨루기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일은 카메라가 돌아가는 순간 가장 순수하게, 가장 유연하게 연기하는 거다. 막 영악하고, 여우 같고, 괴물 같아지는 순간이 많지만 오로지 더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한 고민하면서 (자신을) 끊임없이 다그치고, 또 다그치고 다그치면서 좋은 배우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도록 하겠다. 지금 이 시간이 정말 행복하다. 시청자 여러분, 스태프 여러분께 감사 드린다”
# 2016 백상예술대상 – 최우수연기상 (육룡이 나르샤)
“오늘 1부부터 백상예술대상을 지켜보면서 옆에 송송 커플 앉혀두고 함께 관람했는데, 민망하다. 이런 상을 받기가. 내가 수상소감을 하면 크게 논란이 되는 것 나도 알고 있다. 근데 재밌잖아요? ‘육룡이 나르샤’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게 많고, 많은 고민이 스쳤는데 그 고민이 참 부끄러운 고민이었다. ’50부작, 피곤한데 할 수 있을까?’, ’50부작? 스타들은 안 하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고 솔직히. 사람들이 그런 말을 많이 한다. 진짜 작품에 대한 얘기 말고 작품을 둘러싸고 있는 가짜들에 대한 얘기들, 그런 것에 집중하고 싶지 않았고, 그런 생각을 한 내가 부끄러웠다. ‘육룡이 나르샤’는 자랑스러운 작품이었다. 최종원 손배님 이하 선, 후배 연기자 분들과 함께 하면서 10년간 연기를 했는데 내가 이만큼 한 작품을 하면서 나 스스로 많은 변화와 성장을 할 수 있구나, 그리고 그걸 목격할 수 있구나, 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사실 너무 죽고 싶었거든요? 그래도 대본 받아서 대사를 읊을 때마다 정말 행복했다. 내가 정말 이래서 배우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이 작가님은 이렇게 위대한 대사를 나에게 주실 수 있지, 어떻게 이런 순간에 나를 몰아넣을 수 있지? 지옥 같기도 했고, 그랬다. 배우라는 게 끔찍해서 다 때려 치우고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연기하는 순간, 촬영장의 공기 안에 들어가는 순간, 카메라가 돌아가는 순간, 그 순간에 저 자신을, 또 다른 저를 목격하면서 황홀한 기분이 든다. 배우라서 행복하다. 배우로 사랑해주시는 관객분들, 시청자분들께 감사하다”
이처럼 유아인은 언제나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꺼내 보여주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수상소감 보다 훨씬 더 진심 어리지 아니한가.
김지현 기자 mooa@tvreport.co.kr /사진=유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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