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 해운대(부산)=김민지 기자]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박찬욱 감독이 여러 명의 관객들과 자신의 대표작 ‘올드보이’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5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열린 ‘올드보이’ 스페셜 토크에 참석한 박 감독은 “한국영화 100주년의 해이기도 하고, 오늘 이 자리에 많은 분들이 오셔서 다른 때와 다른 역사적인 사명감이 느껴지는 밤이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내 작품 중에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을 두고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는 건 오랜만이라 감회가 새롭다”고 관객들 앞에 선 소감을 밝혔다.
올해 개봉 16주년을 맞은 ‘올드보이’는 ‘복수는 나의 것’, ‘친절한 금자씨’와 더불어 ‘복수 3부작’으로 불린다. 이에 대해 박 감독이 “3부작은 홧김에 한 말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털어놔 관객들의 궁금증을 높였다.
박 감독은 “내가 ‘올드보이’를 만들겠다고 하니까 기자분들이 ‘복수는 나의 것’을 만든 바로 다음에 또 다른 복수극을 만드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숨겨진 말은 ‘복수는 나의 것’이 망했는데 또 복수극을 만드는 배짱이 어디서 나오냐는 거였다. 홧김에 ‘복수극은 열 편도 만들 수 있다. 실제로 3부작을 준비 중이다’고 말한 것에서 시작됐다”고 덧붙여 웃음을 자아냈다.
박 감독은 “그렇게 해놓은 말이 부담이 돼서 3번째 영화를 만들긴 해야겠다 싶었다. 복수극이라는 것 자체에 대한 성찰을 담은 영화를 만들어서 종지부를 찍으면 좋겠다 싶더라. 그렇게 ‘친절한 금자씨’가 나왔다”며 비하인드도 공개했다.
그러면서 “내가 주로 남성 위주의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내 영화의 팬들은 90%가 남성이다. 외국에선 장도리를 들고 와서 사인을 부탁하는 분들도 있었다. 조금 무섭더라”며 “동시에 내 영화 세계를 돌이켜보는 계기가 됐다. 골고루 균형 잡힌 관객층을 갖고 싶었다. 그 생각 덕분에 주인공이 여자이면서 우아함이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 됐다”고 ‘친절한 금자씨’ 탄생 배경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박찬욱 사단’으로 불리는 이들 중 한 명인 류성희 미술감독과 작업하게 된 계기도 들을 수 있었다.
“‘살인의 추억’ 형사실 세트장을 갔을 때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는 박 감독은 “사실성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구석구석 둘러봐도 완벽에 가까웠다. 신문도 다 그날 날짜 신문이었고 서랍을 열어보면 형사들이 쓰는 물건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걸 보고 당연히 같이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객석에서도 여러 질문이 나왔다. 한 관객은 “여성 감독이 여성 캐릭터를, 남성 감독이 남성 캐릭터를 잘 그려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 이에 대한 감독님의 생각이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에 박 감독은 “여성이어야 좋은 여성 캐릭터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내가 재벌이 아니어도 재벌 캐릭터를 만들 수 있지 않냐”며 “그런 부분에서 상상력이 나올 수 있다. 그들을 잘 관찰하고 내 입장에서 생각하면 가능한 일이다. 물론 한계가 있겠지만 그 한계조차 새로운 관점이 될 수 있다”고 답했다.
이어 다른 관객이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나온 장면이 있냐”고 물었고, 박 감독은 “최민식 씨가 유지태 씨 앞에서 무릎을 꿇고 노래도 부르고 애걸복걸하는 장면이 있다. 거기서 나온 대사들은 ‘알아서 해보라’고 해서 나온 거다. 그중에서도 최민식 씨가 ‘내가 너의 개가 될게’ 하면서 엉덩이를 흔드는 장면을 참 좋아한다”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최민식, 강혜정, 유지태와 다시 작업할 수 있다면 어떤 영화를 찍고 싶냐”는 말에는 “강혜정 씨가 주연을 맡고 최민식 씨와 유지태 씨가 조연을 맡으면 재밌을 것 같다”는 대답을 내놓았다.
“‘올드보이’가 열린 결말인데, 개인적으로 바라는 대수(최민식 분)와 미도(강혜정 분)의 미래가 있냐”는 질문도 나왔다.
이에 박 감독은 “기억을 지우고 딸과 연인으로 사는 걸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아무래도 대수가 기억을 지우는 건 실패했을 거고, 극중 최면술사가 ‘자신 있는 일은 아니다’고 말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마지막에 나오는 대수의 미소도 실패할 거라는 걸 아는 사람의 미소였다”며 “낭만주의적인 비극의 결말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끝으로 박 감독은 “현재 각본을 쓰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러 작품을 써두고 다음 영화가 완성될 무렵이면 바로 다른 영화의 프리 프로덕션 단계로 직행할 수 있길 바란다. 극장용 작품, TV용 작품, 한국 작품, 외국 작품 등 여러가지를 동시에 준비 중이다”라며 바쁜 근황을 알렸다.
해운대(부산)=김민지 기자 kimyous16@tvreport.co.kr / 사진=’올드보이’ 포스터, ‘올드보이’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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