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김민지 기자] 솔직히 말하면,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좋아하지 않았다. 학생 때부터 지속해온 경쟁을 브라운관에서까지 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무엇보다 누군가의 간절함을 방송 소재로 사용하고, 이를 함부로 판단한다고 느낀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러나 최근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우승자가 아닌 다른 참가자들까지 빛을 보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무대를 향한 열망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그룹 활동이 뜻대로 되지 않았던 아이돌들에겐 더욱 그렇다. 최근 뜨거운 인기를 끌었던 TV조선 ‘미스터트롯’에도 아이돌부에 지원해 새롭게 도전장을 내민 이들이 있었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끌었던 참가자는 그룹 로미오의 황윤성. 100인 예심 무대에서 진해성의 ‘사랑 반 눈물 반’을 불러 ‘올하트’를 받아냈고, 장윤정의 “지금껏 본 무대 중에 1등이다”는 칭찬까지 들었다.
물론 황윤성이 보여준 깔끔한 가창력, 남다른 흥과 끼가 ‘올하트’를 이루는 데 크게 작용했지만, 신나는 무대에서 간절함이 크게 느껴졌다는 점에 더 손을 들어주고 싶다. ‘올하트’를 받은 후 울먹이던 그의 표정을 본다면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을 터. 최근 서울 강남구 TV리포트 사옥에서 만난 황윤성은 ‘사랑 반 눈물 반’ 무대를 보여준 당시를 떠올리며 “처음 인정받은 기분이었다”고 털어놨다.
“무대 할 때 마스터분들 표정이랑 하트 숫자가 가깝게 보이거든요. 그래서 정말 떨리고 긴장이 됐어요. 다행히 정말 좋아해주셨고, ‘올하트’ 나왔을 땐 그동안 고생했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더라고요. 처음으로 인정받는 기분이었어요. 여태까지 자신감 없이, 자존감 낮게 활동한 부분이 있었거든요.”
황윤성은 지난 2015년 로미오의 메인보컬로 처음 가요계에 발을 들였다. 그러나 팀 활동은 생각만큼 잘 풀리지 않았고 지난 2017년 앨범 발표 이후 공백기가 길어진 상황. 무대에 서지 못 하는 날이 길어져 방황하기도 했다. 입대를 결심했던 찰나, 같은 팀 멤버의 제안으로 ‘미스터트롯’에 지원하게 됐다. ‘미스터트롯’ 참가 소식을 알리자 주변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응원을 해주는 이들도 있었고, “네가 거기서 왜 나오냐”는 당혹스러움이 묻어나는 질문도 나왔다.
“처음엔 부모님께는 얘기 안 하려고 했어요. 엄마랑 고기를 구워 먹다가 ‘미스터트롯’ 나간다고 말하니까 엄마가 엄청 웃으시더라고요. ‘네가 그걸 어떻게 하냐. 잘할 수 있겠냐’고요. 전에 했던 서바이벌 프로그램들 결과가 좋지 않아서, 다시 상처를 받을까봐 걱정이 된다고 하셨죠. 지금은 정말 좋아해주세요. 난리나죠.(웃음) 제가 청주에 살았는데 거기 있는 엄마 사무실에 제 플랜카드도 걸렸대요. 멤버들도 응원 많이 해줬어요. 첫방 보면서 다같이 울기도 했고요. 정말 고마웠죠. 조금 웃길 수도 있는데 가족 준다고 사인 해달라고 해요. 하하. 팬분들도 처음엔 많이 놀랐던 것 같은데 지금은 다들 ‘잘 나갔다’고 해주세요.”
앞서 MBC ‘위대한 탄생’과 JTBC ‘믹스나인’으로 이미 경험해봤던 서바이벌 프로그램. 최종 출연을 하진 않았지만 Mnet ‘프로듀스 X 101’에도 지원했었다고. 좋은 결과를 얻지 못 했던 터라 서바이벌 프로그램 재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멘탈’을 관리하는 데엔 도움이 됐다. 가장 큰 고민은 가창법을 아이돌 스타일에서 트로트로 바꿔야 한다는 점이었다.
“유튜브에서 트로트 영상을 정말 많이 찾아봤어요. 선곡 리스트를 적고, 아는 노래부터 모르는 노래까지 다 들어봤죠. 저랑 어울릴 것 같은 노래를 골라서 연습했는데, ‘사랑 반 눈물 반’은 3개월 동안 준비했어요. 도입부부터 느낌이 확 왔던 노래예요. 다른 노래를 듣는데도 계속 그 노래가 생각이 나서 예심 곡으로 결정했어요. 그걸 부른 건 정말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알고 보니 황윤성이 창법을 바꾼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오디션 당시엔 소속사 관계자로부터 “‘뽕기(트로트의 기운)’가 있다”는 평을 들었다고. 알 켈리의 ‘아이 빌리브 아이 캔 플라이(I Believe I Can Fly)’를 불렀는데도 말이다. 아이돌 그룹 데뷔를 위해 ‘뽕기’를 빼는 연습을 부단히 했는데, ‘미스터트롯’에 참가하게 되면서 다시 ‘뽕기’를 찾아야 했다.
“아이돌 음악에서 트로트로 바꾸는 게 더 어려웠던 것 같아요. 아무리 트로트의 기운이 있다고 해도 정말 잘하시는 분들이 많았고 더 깊게 들어가야 해서 어렵고 복잡했죠. 중간에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고, 매일 새벽까지 연습하니까 지치기도 했어요.”
창법과 음악 스타일을 바꾸는 데 온갖 노력을 다한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최종 순위 11위를 차지하며 인지도를 확실히 높였고, 스스로 만족할 만한 무대도 만들었다. 다만 몇 단계만 더 올라가면 결승전에 진출할 수 있는 순위기에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을 터.
“‘자옥아’ 무대를 가장 잘했던 것 같아요. 안정적으로 불렀던 것 같고, 안무가 격했는데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해요. 정말 만족스러운 무대였어요. 최종 순위가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인데, 처음 도전한 트로트에서 11위를 한 건 정말 기적이고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아쉬움은 있지만 후회는 없어요. 정말 감사할 뿐이에요.”
아이돌부의 ‘토요일은 밤이 좋아’와 임영웅, 강태관, 류지광과 연합한 ‘뽕다발’의 무대들도 호평받았다. 퍼포먼스가 필요한 부분이 많았기에 아이돌 활동 경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었다고. 황윤성은 이를 자신만의 강점으로 꼽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트로트계에서 아이돌 느낌을 가진 가수는 아직 없었다고 생각해요. 그런 부분이 제 강점이 아닐까요? 퍼포먼스를 더 연습하고, 트로트의 구수한 맛을 더 살리면 신선하게 봐주시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트로트는 흥이 나요. 구슬픈 노래는 또 구슬프고요.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정말 확실하고 직설적인 게 매력이에요. “
열심히 활동하다가 잘 풀리지 않아 통하는 부분이 많았던 아이돌부, 준결승 진출을 함께한 ‘뽕다발’ 팀원들, ‘쥐띠즈’ 이찬원과 옥진욱까지. ‘미스터트롯’을 통해 만든 소중한 인연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었다.
“(천)명훈 형은 처음 봤을 때 ‘와, 연예인이다’ 하면서 되게 신기했어요.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기회는 온다’는 인생적인 조언을 많이 해주셨죠. 뽕다발 형들도 되게 잘 챙겨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임)영웅 형이 우승한 건 제 일처럼 기뻤어요. 연락했더니 ‘고맙다’고 답이 왔어요. 찬원이랑 진욱이는 처음엔 서로 말도 못 놨어요. 진욱이랑 데스매치 시작하고 나서 만나는 시간이 많아졌고, 서로 동갑인 걸 알게 돼서 ‘친구인데 말 놓자’ 했는데 진욱이가 안 놓더라고요.(웃음) 어느 순간 서로 말 놓고, 찬원이도 동갑인 걸 알게 돼서 셋이 친해지게 됐어요. 찬원이가 먼저 ‘경자년 쥐띠 해’ 이런 식으로 단톡방을 만들었죠. ‘미스터트롯’ 안무 선생님도 동갑이라 넷이 자주 만나서 맥주도 마시고 수다도 떨어요.”
좋은 사람들이 많았던 만큼, ‘미스터트롯’ 결승전도 팬의 자세로, TOP 7 모두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봤다고.
“정말 7명 모두를 응원했어요. 결승전에 제가 올라갔으면 꼴찌를 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들 정말 잘하더라고요. 다들 1등이라고 생각해서, 순위는 크게 의미가 없다고 느꼈어요. 팬의 마음으로 무대 하나 하나 ‘우와, 우와’ 하면서 본 기억이 있습니다.”
‘미스터트롯’을 통해 새롭게 제2막을 열게 된 황윤성. 그간 노래를 마음껏 부를 수 있는 무대가 간절했기에 앞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트로트를 제대로 시작할 거예요. 앨범도 준비하고, 여러 무대도 많이 다니고, 콘서트도 하고요. 요즘엔 박현빈 선배님이 정말 멋있으시더라고요. 선배님처럼 신나고 재밌는 노래를 할 수 있는 가수가 되고 싶어요. 방송 활동도 하고 싶죠. 제가 자연을 좋아해서 ‘정글의 법칙’에 나가보고 싶어요. ‘뽕따러 가세’, ‘놀면 뭐하니?’, ‘복면가왕’도 좋죠. 많이 부족하고 서툰 저였는데 열심히 하는 모습, 간절한 모습을 알아주시고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저의 여러 모습들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김민지 기자 kimyous16@tvreport.co.kr / 사진=김재창 기자 freddie@tv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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