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 부산=김수정 기자] 따뜻한 밥 한 끼 나누고 싶은 사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아도 애끓는 마음으로 보듬고 싶은 사람. 우리는 이들을 가족이라 부른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작으로 선정된 영화 ‘뷰티풀 데이즈’는 가족과 엄마, 이별과 재회에 물음표를 던지는 작품이다. 영화는 조선족 가족을 버리고 한국으로 도망간 탈북자 엄마(이나영), 엄마를 미워하던 아들(장동윤)의 16년 만의 재회를 그린다.
중국 조선족 대학생인 아들 젠첸(장동윤)은 아빠(오광록)와 자신을 버리고 한국으로 떠난 엄마를 찾아 나선다. 술집 마담으로 일하며 낯선 남자와 사는 엄마의 모습을 목도한 뒤 그리움은 실망으로 바뀐다. 엄마는 아들의 분노에도 따뜻한 밥을 차리고, 찌개 한 숟가락을 떠 먹인다.
젠첸은 16년 만에 만나 실망만 안긴 엄마가 짐 속에 몰래 넣어둔 공책을 발견한다. 탈북 여성으로 겪은 성착취, 폭력, 가족의 해체, 마약, 살인. 엄마가 버텨온 16년은 충격 그 자체다. 영화는 1997년부터 2017년까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엄마가 견뎌온 삶을 담담히 그려낸다.
‘하울링’ 이후 6년 만에 복귀한 이나영은 굴곡진 인물의 삶을 차분히 표현했다. 가뜩이나 적은 대사를 서울 표준어, 연변 사투리, 중국어를 오가며 소화했다. 핏기 없는 얼굴부터 술집 마담으로 변해 담배를 피우는 모습까지, 데뷔 이래 가장 파격적인 변신이다. 종종 ‘엄마’가 아닌 ‘이나영’이 보이는 순간도 있으나 이전보다 연기폭이 한 뼘 넓어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장동윤은 ‘뷰티풀 데이즈’에서 거둔 의외의 수확이다. 드라마 ‘솔로몬의 위증’, ‘학교 2017’, ‘시를 잊은 그대에게’의 장동윤은 완전히 벗어던졌다. 전성기 시절 이제훈을 보는 듯, 독기 성성한 눈빛과 애달픈 감정을 두루 표현하며 영화의 한축을 지켜냈다. 엄마를 향한 그리움, 원망, 서러움, 동정심을 눈빛 하나로 섬세히 그려냈다.
작품마다 짧은 분량에도 돋보이는 존재감을 드러내던 서현우는 ‘뷰티풀 데이즈’에서도 제 몫을 다하며 영화에 사실감을 더했다.
척박한 삶을 그린 영화지만 영상미는 화려하다. 다만 과잉 사용된 슬로 모션은 종종 몰입을 방해한다. 영화 전체 흐름, 내용에 적합한 연출이었는지는 의문이다.
‘뷰티풀 데이즈’로 가족의 의미를 묻고 싶다던 윤재호 감독은 영화의 말미 따뜻한 시선으로 인물들을 품는다. 밥상 앞에 옹기종기 모여 한 끼 식사를 함께 하는 이들의 모습이 한참을 가슴속에 맴돈다.
단편 ‘히치하이커’로 파리한국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언급상을, 다큐멘터리 ‘마담B’로 모스크바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작품상을 수상한 윤재호 감독의 장편 연출작이다. 국내 개봉은 11월이다.
부산=김수정 기자 swandive@tvreport.co.kr 사진=영화 ‘뷰티풀 데이즈’ 포스터 및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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