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이우인 기자] 대중적인 인기와 명성을 얻은 배우가 무대에 초심으로 다시 오르기는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영화·드라마에 비해 낮은 개런티도 그렇지만, 개인적인 스케줄을 자제하고 무대를 위한 연습에 올인해야 한다. 무대에 오르면 그럴싸한 편집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오로지 연기, 실력으로 승부하는 자리가 무대다.
그런 점에서 배우 황정민의 선택은 무모하지만, 멋지다. 1994년 극단 학전 제작 뮤지컬 ‘지하철 1호선’으로 데뷔한 황정민은 무대 연기가 익숙하지만 대중에겐 영화배우란 인식이 더 센 배우다. ‘신세계’ ‘국제시장’ ‘베테랑’ ‘검사외전’ ‘곡성’ ‘군함도’ 등 최신작의 성적만 봐도 황정민이 충무로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황정민의 차기작이 되려는 시나리오가 가득할 테고, 배우로서 여유를 누려도 될 법한 위치. 그러나 황정민은 ‘웃음의 대학'(2008) 이후 10년 만에 연극을 선택했다. 고전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각색한 ‘리차드 3세’에서 그는 콤플렉스를 지녔지만, 뛰어난 언변과 권모술수, 유머감각, 탁월한 리더십으로 이를 뛰어넘는 리차드 3세 역할을 맡았다.
20일 오후 서울 밀레니엄 힐튼 3층 아트리움홀에서 열린 ‘리차드 3세’ 제작발표회. 연극과 관련된 많은 배우가 참석했지만, 스포트라이트는 단연 황정민에 쏠렸다. 황정민이 연극 출연을 결정한 이유, 더욱이 원 캐스트를 받아들인 이유가 궁금했다.
황정민은 무대로 데뷔한 배우임을 강조하며 “이제 선배가 됐고, 좋은 작품을 해서 지금 연극을 좋아하고 예술을 하려고 하는 친구들에게 조금이나마 공부가 되는 작품이 뭘까, 생각할 때 ‘리차드 3세’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리차드 3세는 겉모습은 꼽추이지만, 욕망을 이루기 위한 광기를 표출하는 캐릭터다. 웬만한 내공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연기다. 이런 난감한 캐릭터를, 오랜만에 연극을 하는 황정민은 원 캐스트를 고집했다.
“선배 배우들이 더블 캐스팅에 자존심 상해하던 모습을 봐왔다. 체력 안배를 하며 매일 무대를 소화하는 것도 배우의 롤이라고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연기를 배웠고, 예전으로 돌아가서 연기하고 싶단 생각을 했다. 기대와 부담이 반반이지만, 겁 없이 하고 있다.”
황정민의 원 캐스트 고집으로 인해 ‘리차드 3세’의 캐스팅은 역할마다 한 명의 배우가 연기하는, 요즘엔 보기 드문 연극이 됐다. 정웅인은 “스케줄이 많이 꼬였다. 우리 모두 힘들다”면서도 “원 캐스트 바람은 사실 모든 배우에게 있다. 작품에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기쁨이다”라고 말했다.
황정민은 셰익스피어의 고전 연극을 고전의 방식인 원 캐스트로 선다. 무려 한 달여 동안 매일 자신을 관객들 앞에 쏟아내야 한다. 원 캐스트를 따르며 배우들의 체력적인 문제 등 만일의 일에 대비하지 않았다는 서재형 연출은 “다음 회차를 고려하지 않고 매일 최선을 다하는 배우를 바랄 것 같다”고 극한의 연기를 주문한다.
그럼에도 “정말 정말 연기를 잘하고 싶다. 관객들로부터 ‘황정민 영화 그만하고 연극만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잘 해내고 싶은 바람이 있다. 잘 해낼 것”이라며 이 순간에도 각오를 다지는 황정민. 그의 연기를 향한 진실된 마음이 ‘리차드 3세’를 통해 드러나길 기대케 한다.
‘리차드 3세’는 2월 6일부터 3월 4일까지 예술의 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된다.
이우인 기자 jarrje@tvreport.co.kr/ 사진=문수지 기자, 샘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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