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김예나 기자] 언니들 사이에서 수줍은 미소를 짓던 막내였다. 타지 생활이 힘들다고 울면서 그룹을 떠나기도 했다. 하지만 꿈을 접은 건 아니었나 보다. 혼자서도 이렇게 척척 해내는 걸 보면.
선미는 2007년 그룹 원더걸스 막내로 데뷔했다. 예쁜 얼굴로 발탁된 듯, 노래 파트가 많이 배당받은 멤버는 아녔다. 그럼에도 주목은 늘 받았다. 그룹에서 탈퇴한다고 했을 때도 그 이유에 각종 추측이 제기될 정도로 아쉬운 목소리가 컸다.
그 후 선미가 연습생으로 돌아가 배우 전향을 계획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여전히 JYP엔터테인먼트 소속이었던 선미가 동국대학교 연극학부에 입학하면서 더 가능성을 높였다. 하지만 선미는 2013년 솔로가수로 컴백했다. 연기보다 결국 노래와 춤 연습에 주력했던 모양이다.
이 때만해도 과연 선미가 보여줄 모습에 큰 기대가 따라 붙지 않았다. 원더걸스 당시 선미는 메인보컬도, 메인댄서도 아니었으니. 그저 예쁜 외모의 막내였던 선미는 첫 솔로곡 ‘24시간이 모자라’를 내놓았다.
마치 주변의 기우를 예상했다는 듯 선미는 처음부터 과감했다. 남자에게 눈을 뜬 여자의 고백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특히 맨발 퍼포먼스는 선미에게 섹시미가 입혀지는 결정적 아이템이 됐다. 반응을 얻은 선미는 2014년 ‘보름달’로 제 이미지를 굳혔다. 역시나 애로틱한 여성미를 어필했다.
선미는 팬덤 이상의 대중적 코드에 맞아 떨어졌다. 그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선미는 2015년 원더걸스로 합류했다. 멤버 변화가 많은 원더걸스에 활력이 필요했겠지. 솔로 활동으로 에너지를 얻은 선미가 그 역할을 해냈다. 선미의 자작곡이 타이틀곡으로 선정되기도.
2017년 2월 원더걸스가 해체할 때까지 선미는 제 몫을 해냈다. 그룹의 일원이지만, 저혼자 패셔니스타의 캐릭터를 만들어갔다. 선미는 순식간에 1020대 여성들의 워너비 스타로 성장했다.
선미는 또 한 번 파격을 시도했다. JYP엔터테인먼트를 떠나, 아이돌 접점이 없는 회사 메이크어스 엔터테인먼트로 옮겼다. 이적 내막을 모르는 이들은 갸우뚱했다. 이를 계기로 선미는 음악에도 변화를 줬다. ‘JYP 포장’을 벗고 난생처음 ‘YG 색’을 입었다.
2017년 8월 발표된 ‘가시나’는 열풍을 기록했다. 음원차트 1위, 음악프로그램 1위를 차지했다. 선미는 솔로 여가수의 확실한 입지를 다졌다. 그리고 2018년 1월 18일 ‘주인공’으로 선미는 또 다시 음원차트를 재패했다. 발매직후 1위를 찍은 ‘주인공’은 멜론을 필두로 7개 차트 정상에 올라있다.
선미는 원더걸스 이름값에 기대지 않았다. 회사의 후광을 입은 케이스도 아니다. 대신 선미는 본인이 어떤 장점과 구축할 이미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선미는 솔로로 영역을 넓힌 후 순수와 섹시 경계를 묘하게 넘나든다. 자신이 사랑할 때 저돌적이고, 표현에 적극적인 27살 여자라고 설명했다. 그런 성향을 음악에, 무대에, 비주얼에 녹여냈다.
“글래머러스한 몸매가 아니라 고민이 많다”는 선미. 부족한 볼륨은 라인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역동적인 안무보다는 분위기나 느낌 발산에 치중하고 있다. 욕심 많은 선미는 목표도, 계획도 확실했다.
미국 활동이 힘들다고 눈물을 흘리던 원더걸스 막내는 이제 없다. ‘아이코닉 선미’가 되고 싶은, 영리하게 잘 자란 선미가 있다.
김예나 기자 yeah@tvreport.co.kr/사진=TV리포트 DB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