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박설이 기자] 새로운 게 늘 좋은 건 아니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있듯이 말이다. 우리가 고전이라고 부르는 영화나 드라마들은 특히 그렇다. 작품 자체의 우수함에 당시 대중의 정서나 사회적 환경이 더해져 ‘명작’을 만들고, 그렇게 수십 년 전 대중이 사랑한 작품이라면 리메이크에 신중 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 아무리 유역비라도… 망쳐버린 ‘천녀유혼’
유역비가 내한한 적이 있다. 영화 홍보를 위한 방문이었다. 그 영화가 바로 왕조현, 장국영 주연의 1987년작 ‘천녀유혼'(1987)의 리메이크작이다. 할리우드에 ‘사랑과 영혼’이 있다면, 아시아에는 ‘천녀유혼’이었다. 판타지 러브 스토리의 고전이다.
이 영화가 리메이크된다고 했을 때 원작 팬들의 반발이 거셌다. 원작의 분위기를 대신할 배우는 없다고 생각했다. 겁 많은 영채신이 귀신인 섭소천을 만나 그녀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이야기, 장국영과 왕조현만 추억에 남겨두고 싶었다.
하지만 2011년, ‘천녀유혼’은 유역비를 내세워 리메이크됐다. 당시 막 떠오르는 청춘스타였던 유역비, 외모만 보면 청순가련한 섭소천에 딱일 것 같지만 신비감과 매혹이 부족했다. 그리고 재해석의 과정이었는지, 사족 같은 스토리를 덧붙여 영화의 핵심인 귀신과 사람의 러브스토리 힘이 빠졌고, 감정선이 허술해지자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실패한 리메이크가 됐다.
# 평점 5.5…”망작이다” 혹평 받은 ‘영웅본삭2018’
중국의 평점 사이트 더우반에 따르면 지난 1월 중국 전역에서 개봉한 ‘영웅본색2018’의 평점은 10점 만점에 5.5점에 그쳤다. 흥행도 참패했다. 1억 위안에도 한참 못 미치는 약 6300만 위안을 벌었다. 팬덤을 보유한 청춘스타 왕개, 마천우, 왕대륙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역부족이었다.
평가를 살펴봤다. “기대 안 했는데 눈물 흘렸다” “딩성 감독의 연출이 좋았다”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왕개의 눈빛이 기억에 남는다”는 호평, 그리고 “왜 리메이크했는지 모르겠다” “어색하고 엉망인 망작이다” “오우삼이 보고 싶다” “영웅이 아니라 게이 같다” “원작 다 망쳤다” “팬들 보라고 만든 영화다” 등 혹평이 공존한다.
한 관객은 “주윤발과 장국영을 더 보고 싶게 만든 최악의 리메이크다. 추억은 추억으로”라고 꼬집기도 했다.
# 바다를 건너니, 리메이크도 좋았다
리메이크가 고전을 꼭 망치는 것만은 아니었다. 원작의 이름값을 이용해 흥행에 재미를 보려다 실패한 앞선 두 작품과는 달리, ‘무간도'(2002)의 리메이크작 ‘디파티드'(2006)는 같은 이야기를 들고 아예 다른 나라에서 재탄생했다. 마틴 스콜세지라는 거장의 손으로.
조직의 스파이가 된 경찰, 경찰의 스파이가 된 조직원의 숨 막히는 첩보전을 그린 ‘무간도’는 21세기 최고의 홍콩 누아르로 인정받는 명작이다. 유덕화와 양조위라는 배우의 역할도 컸다. 할리우드 버전에서는 맷 데이먼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맡았다.
원작 팬이 많은 영화이고, 그 팬들이 매의 눈으로 ‘디파티드’를 지켜봤다. 스타일이 달랐다. 진영인(양조위)과 유건명(유덕화)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긴장감으로 몰아친 원작과는 달랐다. 마틴 스콜세지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코스티건의 심리에 맞춰졌다. 원작과는 완전히 다른 해석이다. 아카데미 4개 부문을 휩쓸고 흥행에서도 재미를 봤으니 자타공인 성공한 리메이크다.
박설이 기자 manse@tvreport.co.kr / 사진=영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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