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김지현 기자] ‘여배우를 위한 시나리오가 없어요’
한국 여배우들의 공통된 고민이다. 남자 캐릭터가 중심을 이루는 시나리오는 봇물을 이루지만, 여배우들이 설 수 있는 자리는 없다. 특히 정상에 오른 여배우일 경우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스크린부터 안방까지 사정은 마찬가지다. 여성 캐릭터가 중심인 이야기는 시장에서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정말 여성 캐릭터를 내세운 이야기는 ‘노잼’인 것일까. 결국 편견이었다. 여기 새로운 시도로 한계를 넘은 이가 있다. JTBC ‘품위 있는 그녀’의 백미경 작가다.
백미경 작가는 2014년 SBS 드라마 ‘강구이야기’로 데뷔했다.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한 작품이다. 이후 그는 드라마 작가에게는 황무지나 다름없는 JTBC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결과는? 대성공이다. 시작은 2015년 선보인 ‘사랑하는 은동아’다. 이 작품은 입소문을 타며 매니아들을 양산해냈다. 비록 시청률은 높지 않았지만 ‘JTBC 드라마도 볼만하다’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은동아’의 수혜자는 단연 여주인공 김사랑이다. 여배우보다 글래머러스한 이미지가 더 강했던 김사랑은 사고로 기억이 상실된 대필작가 서정은 역으로 데뷔 후 처음으로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인정 받았다. 정통 멜로극인 이 드라마에서 그는 주진모와 함께 절절한 연기를 하며 멜로의 정석을 보여줬다.
백미경 작가가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2017년 ‘힘쎈여자 도봉순’을 통해서다. JTBC와의 궁합이 완벽히 증명된 작품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주목을 받은 건 여배우 박보영이다. tvN ‘오 나의 귀신님’ 이후 차기작에 신중을 기하던 박보영은 당시만 해도 크게 주목 받지 못했던 백미경 작가를 선택해 시선을 집중시켰다. 호기심에는 우려도 섞여 있었다. 힘이 장사인 여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라는 점, JTBC가 드라마에서는 취약하다는 점 등이었다.
백미경 작가는 박보영에 의한, 박보영을 위한 시나리오를 선물했다. 여배우의 매력과 장점을 정확히 간파해 시나리오에 녹여냈다. 배우는 물 만난 물고기가 된 것 처럼 매력이 만개했고, 박보영은 2연타 홈런을 치는데 성공했다.
백미경 작가와 여배우의 호흡은 ‘품위있는 그녀’로 정점을 찍었다. 성격이 전혀 다른 두 여자, 김희선과 김선아를 내세운 이 작품은 여성을 수동적인 존재로 그리는 기존의 방식을 넘어 새로운 캐릭터를 창출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돈과 권력을 향해 끝없이 질주하는 박복자(김선아)와 그 안에 있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우아진(김희선)은 언뜻 충돌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조화를 이룬다. 두 여배우가 누구 하나 가려질 것 없이 빛나고 있는 이유는 이들의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정확하게 캐치하고 활용하는 백미경 작가의 치밀한 안목 덕이다. 박복자, 우아진은 남성에게 기대지 않는다. 비록 누군가는 뒤틀린 욕망을 가진 캐릭터지만, 자신의 삶을 진취적으로 이끌어 가는 인물이다.
남성의 기대 살아가는 기존의 여성 캐릭터를 보는 건 남녀 시청자 모두 불편하다. 백미경 작가의 새로운 시도가 여성 캐릭터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
김지현 기자 mooa@tvreport.co.kr /사진=DB,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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