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김지현 기자] “저들은 그대가 즉위하던 날 눈물을 흘리며 천세를 외치던 백성이었소. 한데 보시오. 이제 그들이 당신을 조롱하고 있소이다. 슬프지 않습니까. 그대가 놓쳐버린 기회가 뼈아프지 않습니까”
홍길동은 매 시대마다 새롭게 해석되며 다시 태어난다. 축지법을 쓰는 기인으로 묘사되지만 ‘동해 번쩍 서해 번쩍 홍길동’이라는 유명한 허균의 그 말은 홍길동이라는 존재가 어느 시대에도 통할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었을 것이고, 적중했다. 누군가에게 홍길동은 민중을 이끄는 영웅이고 차별에 저항한 의인이며, 부당한 권력에 대항한 혁명가다. 홍길동은 여러 이름으로 쓰인다.
16일 종영된 MBC 월화드라마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역적’)의 홍길동은 우리 모두의 얼굴을 닮았다. 연산군은 그들의 얼굴을 닮았다. 현실 정치를 오롯이 담아낸 ‘역적’은 연산군의 몰락을 통해 현실 정치를 풍자하며 막을 내렸다.
마지막 회는 다양한 명대사들이 탄생했다. 어지러운 현 정국을 연상케하는 대사들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이날 왕좌에서 쫓겨난 연산(김지석)은 자신을 손가락질하는 백성들을 보며 허무함을 느끼고, 멀리서 자신을 바라보는 홍길동(윤균상)에게 마음껏 기뻐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홍길동은 기쁘지 않았다. 참담한 현실에 슬픔을 느꼈다.
그는 모든 걸 잃은 연산을 찾아 “폭력으로 백성들을 길들이겠다고 했나. 두려움이 가진 힘을 보라고 했나. 하나 폭력과 두려움으로는 제 곁에 있는 사람 하나 설득하지 못해. 왜인 줄 아는가. 폭력은 겁쟁이들이 쓰는 것이거든. 누가 겁쟁이를 믿고 따르겠는가”라고 말했다. 연산군은 “나는, 내 정치는 성공할 수 있었다”며 물러나지 않았다. 연산은 끝까지 왕이 백성을 위해 존재한다는 걸 알지 못했다. 두 사람의 치열한 대사는 현실의 정치를 거울로 비추는 듯했다.
풍자 대목은 또 있었다. 권력에 기생해 또 다른 권력을 누리려는 자들이었다. 송도환(안내상)은 연산이 힘을 잃자 대항마인 평성군을 찾아가 종용한다. 새 임금을 세운 뒤 자신의 제자들에게 주요직을 맡기고, 임금 뒤에서 임금 만한 권력을 누려보라고 제안한 것. 조선판 비선실세가 따로 없다.
연산이 왕좌에서 내려왔지만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권력에 군림하며 백성을 약탈하는 자가 있었으며, 권력에 취해 초심을 잃는 자도 있었다.
‘역적’은 연산군의 몰락을 ‘불’에 비유했다. 백성에 의해 불이 일어났고, 그 불이 임금까지 덮쳤다는 것이다. 범국민적 촛불시위가 일었던 최근의 사태들을 떠올리게 한다. 홍길동은 이 모든 것을 ‘백성의 승리’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끝난 것이 아니며, 새 권력을 노리는 자를 향해 “끝까지 지켜볼 것”이라고 경고했다.
부패한 권력을 상징하는 연산군과 혁명과 민심을 상징하는 홍길동. ‘역적’은 둘의 대결을 통해 현 시국을 담았고,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가 무엇인지 보여줬다.
허균의 원작에서 홍길동은 변하지 않는 조선에 회의를 느끼고 이상의 나라, 율도국을 세운다. ‘역적’은 그것이 회피가 아니라 세상 안 어딘가에 존재하는 희망으로 해석한다. 우리는 모두 홍길동이고, 가슴에 희망의 불씨를 품고 있다.
김지현 기자 mooa@tvreport.co.kr /사진=MBC ‘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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