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영화 ‘정직한 후보’ 리뷰
[TV리포트=김수정 기자] ‘웃겨봐야 얼마나 웃기겠어’라는 마음으로 극장을 찾았다간 큰 코 다친다.
영화 ‘정직한 후보’는 ‘극한직업’의 흥행 이후 줄잇는 코미디 영화 가운데 가장 제대로 된 웃음을 안기는 작품이다. ‘거짓말을 못 하게 된 3선 국회의원’이라는 기발한 설정을 영리하게 이해한 연출자, 이를 확실하게 연기로 전달한 배우들이 어우러져 그야말로 대환장 코미디를 탄생시켰다.
3선 국회의원 주상숙(라미란 분)은 선거를 앞둔 어느 날 하루아침에 거짓말을 못 하게 된다. 민심을 홀릴 그럴싸한 거짓말과 화술, 처세가 무기인 정치인이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되다니. 입만 열면 쏟아지는 묵직한 팩트 폭격과 폭탄 고백. 괄약근에 힘을 조일 수 없는 것처럼, 장기에서 말이 쏟아져 나온다는 주상숙의 ‘진실의 주둥이’가 104분간 관객을 들었다 놓는다.
Q. 거짓말을 못 하게 된 국회의원 설정이 그렇게나 웃겨?
거짓말을 안 하는 게 아닌, 못 한다는 게 포인트다.
자신도 자신의 팩트폭격에 어쩔 줄 몰라하며 당황하는 라미란의 표정이 포복절도 웃음을 터트린다. 선거 전 중요한 시사 프로그램에 남편과 동반 출연해 “우리가 XX친구도 아니고 우정만 쌓고 있다”, “대통령 해먹을 것”이라고 내뱉은 뒤 울상을 짓는 라미란을 보고 웃지 않기란 쉽지 않다.
선거유세 중 “서민은 나의 일꾼”이라고 한다거나, 시어머니(김용림 분)에게 “불청객이네”라고 능청스럽게 말한 뒤 입을 틀어막는 모습에서 객석은 웃음바다가 된다. 주상숙이 말을 못 하게 된 이후 등장하는 그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웃음 지뢰밭이다.
Q. 라미란이야 워낙 잘하는 배우고, 조연진도 화려하던데.
‘정직한 후보’가 더욱 웃긴 것은 주상숙 주변인의 반응 때문이다.
열정 넘치는 보좌관(김무열 분), 손가락 욕(?)이 특기인 할머니(나문희 분), 백수 남편(윤경호 분), 영혼은 미국인인 아들(장동주 분), 경쟁 후보(조한철 분, 조수향 분), 당대표(손종학 분) 등이 주상숙의 무차별 진실의 주둥이에 당황스러워하거나, 괴로워하거나, 속 시원해하는 제 각각의 모습이 이 영화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이를 능청스럽게 표현한 배우들의 몫도 컸다. 주로 선 굵은 연기를 보여왔던 김무열은 전작과 전혀 다른 결의 연기로 눈길을 끈다. 귀엽고 웃기지만 결코 과하지 않은 연기가 앞으로 그의 필모그래피 확장을 기대하게 한다.
나문희, 윤경호, 조한철도 말할 것도 없다. 스치는 장면마저도 살려내는 내공을 펼친다. 부러 웃기려 애쓰지 않아서 더 웃기다. 여기에, 자칫 주변인 기능적으로 소모될 수 있는 캐릭터임에도 장유정 감독의 재치 있는 연출력이 더해져 본 적 없는 인물들로 생동감 넘치게 살아났다.
Q. 정치적 메시지는 없어?
받아들이는 관객에 따라 다르겠지만, 정치적 메시지를 강요하는 영화는 결코 아니다. 대신, 산뜻한 해학이 그 자리를 채운다. 정치인 아들 군면제, 정치인 성추행 사건, 사학재단 비리, 외국인 노동자 차별 등이 유쾌한 터치로 풍자된다.
극 중 주상숙의 당 시그니처 색깔은 빨간색과 파란색을 섞은 보라색이다. 진보든, 보수든 정치인이 거짓말을 못 한다는 것만으로도 웃기다는 건 분명 그 자체로 하나의 메시지인 셈이다.
어깨에 힘들어간 풍자는 종종 느끼하게 마련. ‘정직한 후보’는 엔딩까지 유쾌한 태도를 잃지 않는다. 주상숙의 대선행을 그린 속편이 보고 싶을 만큼, 모처럼 기분 좋은 코미디 영화다.
김수정 기자 swandive@tvreport.co.kr /사진=영화 ‘정직한 후보’ 포스터 및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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