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김지현 기자] 왜 학교였을까. Mnet 예능 프로그램 ‘아이돌 학교’를 볼수록 강하게 드는 의문이다. 실력보다는 인성과 열정이 더 중요하다는 학교. 2500명의 아이들은 오로지 ‘데뷔’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입학했다. 누군가는 평범한 일반인이며, 누군가는 대형 기획사에 소속된 연습생이다. 제작진은 그들의 밝힌 기획 의도대로 수 천명의 성장 가능성을 모두 발굴할 수 있을까.
‘아이돌 학교’를 향한 관심이 뜨겁다. 1회 시청률이 1.5%를 기록하며 순조롭게 출발했다. (닐슨, 유료 플랫폼) 이는 전 국민적 인기를 모은 ‘프로듀스 101’(‘프듀’) 시즌2의 첫 회 시청률 보다 높은 성적표다. 관심만큼 논란도 많았다.
걸그룹 육성 전문기관을 모토로 하는 ‘아이돌 학교’의 입학 조건은 외모다. “예쁜 신입생을 찾습니다”가 이 학교의 슬로건. 인성과 열정, 성장을 강조하지만 실제 입학 조건은 ‘예쁜 외모’다. 외모 지상주의를 조장한다는 비난이 일었지만 제작진에게 이상을 강요할 수 없는 노릇이다. 예쁘고 잘생긴 외모의 소유자들이 아이돌로 데뷔할 가능성이 높은 게 현실이다. 문제는 이 논란을 부추기는 제작진의 태도에 있다. 교가부터 노골적이다. 제목이 ‘예쁘니까’다.
수 천명의 아이들이 “뭘 해도 괜찮아 난 예쁘니까”를 떼창하는 예고편에서 시청자들이 느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오디션 프로그램이 유독 관심을 받는 이유는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부르는 청년층들이 무기력함을 잊고 대리만족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디션은 출연자의 절박한 꿈이 동기가 된다. 스스로를 ‘삼포세대’라고 부르며 절망에 빠진 2~30대 시청자들은 치열한 전쟁터에 놓인 출연자의 모습에서 자신을 본다. 다른 지원자에 비해 다소 평범해 보였던 서인국, 백청강, 한동근, 장문복이 지지를 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시청자들은 ‘픽 미(pick me)’와 ‘나야 나’를 부르는 소년, 소녀들에게서 절박함을 읽었다. 유료 문자 투표에 돈을 아끼지 않고, 매주 금요일 새벽 늦게까지 본방 사수를 자처하며 투표를 하는 사명감을 가진 건 자신을 향한, 이 불안한 사회를 향한 스스로의 위로였던 것이다. ‘아이돌 학교’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뭘 해도 괜찮아. 난 예쁘니까”를 부르는 아이들에게서 발견되는 건 자기애와 자신감이 아니다. 열등감을 기반으로 하는 외모 지상주의다.
이미 충분히 예쁘고 날씬한 학생들은 37kg 체중의 친구를 부러워한다. 서로 허리 사이즈와 팔뚝을 비교하기도 한다. 제작진은 이 장면을 편집 없이 고스란히 노출했다. 물론 외모 관리는 중요하다. 데뷔를 꿈꾸는 연습생들에게 외모, 그중에서도 체중은 가장 큰 고민거리다. 그러나 교복을 입은 학생이, 한창 성장기에 있는 10대 소녀들이 초콜릿 과자를 감춰야 하는 장면은 불편했다. 가능성을 모토로 하는 학교에서 왜 학생들의 개성을 허락하지 않는 군대 문화가 엿보이는 것일까. 결국 이 모든 불편함은 학교를 배경으로 한 것에서 출발한다.
‘아이돌 학교’는 모든 면에서 ‘프로듀스 101’과 비슷하다. 국민 프로듀서가 육성회원으로 바뀌었을 뿐 모든 포맷이 똑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차별점이 있다면 학교라는 배경이다. 세트장이 아닌 학교가 장소가 되면서 지원자들은 연습생이 아닌 학생이라는 특수한 신분이 됐다. ‘아이돌 학교’는 학교를 정체성에 두면서 그 문화는 철저히 군사주의적이다. 숙소는 핑크빛으로 도배됐지만 내무반을 연상시킨다. 소녀들의 수다 장면도 편히 볼 수 없다. 자꾸 등수가 메겨진다.
‘네가 떨어져야 내가 붙는’ 상대 평가지만 안무 대열 위치가 불리하더라도 불만을 말해선 안된다. 인성도 평가 기준이기 때문이다. 이 학교는 예쁘고 날씬하면서 실력과 인성까지 갖춰야 하는 기묘한 곳이다. 칼 군무를 추지 못하는 학생은 퇴소(퇴학)를 당해야 한다.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교장(이순재)의 말이 무색하게, 교가 뮤직비디오를 촬영할 수 있는 기회는 단 세 번 뿐이다. 대열을 흩트린 학생에게 낙인을 찍는 자극적인 연출 방식은 기획 의도와 정면 대치된다.
이 프로그램은 현존하는 학교 문화의 부정적인 면을 답습하고 있다. 학교 시스템을 차용했다면 제작진은 아이돌을 육성하는 이상적인 방식을 고민하고 제시했어야 한다. 10대 소년 소녀들을 연습실과 숙소에 가두고 살아남는 자만 데뷔시키는 기존의 천편일률적인 육성 방법이 아닌 새로운 커리큘럼을 모색했어야 한다. 교장과 선생들 역시 학생들의 개성을 알아보는 혜안을 갖고 있어야 했다. 제작진에게 철학적인 고민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학교의 순기능과 이상향이 아닌 부정적인 문화만 차용, 도입한 안일한 방식이 아쉽다.
‘아이돌 학교’의 칼군무가 ‘프듀’의 칼군무와 달리 자극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현존하는 학교의 불편한 악습들 군사, 획일주의적 문화가 연상되는 탓이다. 제작진은 학교를 단순히 세트장 수준으로 활용하면서 ‘프듀’와의 차별에 실패했으며, 논란만 양산하고 있다.
김지현 기자 mooa@tvreport.co.kr /사진=tvN ‘아이돌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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