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김연주 기자] 영화에 담긴 n개의 화두 가운데 함께 나누고 싶은 재미를 선별한 리뷰입니다. 사심을 담아 고른 한 편의 영화 속 단 하나의 재미, 유일무비입니다.
마주해야 완성되는 관계가 있다. 좋은 것이든, 불편한 것이든. 누군가는 새드엔딩이라 할 수 있겠지만, 관계의 완성도를 두고 보면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는 해피엔딩이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첫사랑 ‘나영'(그레타 리)과 ‘해성'(유태오)이 24년 만에 뉴욕에서 다시 만나 끊어질 듯 이어져온 인연의 방점을 찍는 이야기다. 한국계 캐나다인 셀린 송 감독의 데뷔작으로 그레타 리, 유태오가 호흡을 맞춘다. 현재 전 세계 72관왕, 212개 부문 노미네이트라는 독보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으며, 신인 감독의 작품으로는 이례적으로 제9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각본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쾌거를 이뤘다.
영화를 관통하는 정서는 ‘인연’이다. 짝꿍이 되고, 머지않아 이민으로 인해 멀어지고, 12년 만에 서로를 찾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며, 그로부터 12년이 지나 비로소 다시 만나게 되는 인연. 반대로 되짚어 보면 두 주인공은 짝꿍으로 연을 맺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었고, 12년 만에 연락이 닿았어도 만나지 못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서로를 마주하게 됐을 땐 ‘나영’에게 이미 남편이 있다. 이어질 수 없는 인연이었던 것이다. 명쾌하게 떨어지지 않는 두 사람의 관계가 ‘인연’이라는 단어와 만나 설명이 된다.
두 사람은 자신의 감정과 상대의 감정을 담담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기억 한 편에 같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지만, 너무도 다른 환경에서 자랐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 순수한 사랑을 했던 소년과 소녀는 이제 없다는 것을 점차 깨달아간다. 이를 표현하는 방식이 참 세련됐다. 두 주인공은 마음을 섣불리 발화하지 않고 오롯이 감정을 느낀다. ‘패스트 라이브즈’의 화법이다. 감정과 갈등이 폭발하는 시대에 오히려 감정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가슴 깊은 곳에 울림을 선사한다. 다시 만남을 기약할 수 없는 헤어짐 앞에서 머뭇거리는 짧은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 그들이 느끼는 감정이 관객들에게 도달하는 클라이맥스다.
셀린 송 감독의 연출이 힘을 발휘한다. ‘첫사랑을 다시 만난다’는 어쩌면 진부한 설정에 섬세함과 정교함을 불어넣었다. 그렇기에 ‘패스트 라이브즈’는 그저 그런 사랑 영화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여러 갈래의 감정과 관계를 잘 다룬 인간적인 영화로 읽힌다. 디테일도 빼놓을 수 없다. 이민자가 바라보는 한국 문화, 한국인이 바라보는 이민자의 삶, 인연이라는 연결고리까지. 화자가 교차되면서 천천히 감정이 폭발한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오는 3월 6일 국내 개봉 예정이다.
김연주 기자 yeonjuk@tvreport.co.kr / 사진=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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