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김연주 기자] 팬데믹 이후 주춤했던 한국 영화에 쌍천만 작품이 터져 쾌재를 불렀고, 거장들 사이에서 “유레카”를 외칠 새로운 감독들의 영화가 환호성을 자아냈다. 그에 반해 반갑지 못한 뉴스도 있었다. 외화 애니메이션의 강세로 혹평을 피하지 못했고 대중에게 기쁨과 감동을 안긴 배우를 떠나보내기도 했다.
■외화에 완패했다…위기의 상반기
영화 ‘범죄도시3’를 제외하곤 그렇다 할 성과를 내놓지 못했던 올해 상반기. 올해 첫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아바타: 물의 길’을 잡겠다는 포부와 함께 영화 ‘유령’, ‘교섭’이 극장가에 출격했지만 뜻하지 못한 변수를 만났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흥행 강자로 떠오른 것이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흥행 역주행으로 기록적인 성과를 거둔 ‘스즈메의 문단속’이 박스오피스 정상을 두고 치열한 접전을 벌이게 됐다.
두 애니메이션의 파급력은 상당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스즈메의 문단속’은 국내에서 500만 돌파라는 기록적인 성적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저력을 과시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n차 관람을 유발하는 작품으로 장기 흥행의 탄력을 받았다. 지난 1월 개봉 이후 3개월간 박스오피스 상단에 머무르며 관객들을 모았고, 오는 1월 개봉 1주년을 맞이해 재상영을 확정했다.
한국 영화는 고개를 숙였다. 영화 ‘카운트’, ‘웅남이’, ‘대외비’, ‘드림’, ‘킬링 로맨스’ 등 명배우를 앞세운 작품들이 관객과 만났지만, 혹평 속 흥행부진을 면치 못한 채 극장을 떠났다. 5월 말 혜성처럼 등장한 ‘범죄도시3’가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가운데 첫 천만 축포를 터뜨리면서 잃어버린 자존심을 되찾았지만, 한국 영화의 침체라는 꼬리표를 떼진 못했다.
■ 엄태화·유재선·김성식, 박찬욱·봉준호 키즈들의 반란
류승완, 김성훈, 김용화, 김지운, 강제규 감독이 신작으로 돌아왔다. 여름 휴가철과 가을 추석 연휴를 겨냥해 각기 다른 개성의 작품으로 관객을 만났다. 하지만 거장들이 활약할 거라 예상됐던 것과 달리 괴물 같은 신인 감독들이 등장해 박스오피스를 장악했다.
지난여름 개봉한 한국 영화 대작 4편 가운데 마지막 주자로 나선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엄태화 감독은 작품성을 인정받아 올해 국내 영화제를 휩쓰는 것은 물론, 해외 영화제까지 초청되는 영예를 안았다. 최종 후보에 오르진 못했으나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심사위원의 만장일치로 제96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국제장편영화 부문 한국영화 출품작으로 선정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엄태화 감독은 ‘박찬욱 키즈’로 유명하다. 영화 ‘쓰리, 몬스터’, ‘친절한 금자씨’ 연출부 출신으로 박찬욱 감독의 손꼽히는 애제자로 알려졌다. 2013년 영화 ‘잉투기’로 첫 장편 데뷔작을 공개한 엄태화 감독은 ‘가려진 시간’ 이후 7년 만에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선보이게 된다. 재난 이후의 디스토피아를 생동감 있게 구현해낸 것은 물론, 다양한 인간군상을 담아 호평을 이끌어냈다.
‘봉준호 키즈’ 유재선 감독은 지난 9월 첫 장편 데뷔작 ‘잠’으로 관객과 만났다. ‘잠’은 국내 개봉에 앞서 2023년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 제56회 시체스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제48회 토론토 국제영화제에 연이어 초청돼 이목을 끌었다. 봉준호 감독은 ‘잠’에 대해 “최근 10년간 본 영화 중 가장 유니크한 공포 영화이자 스마트한 데뷔 영화”라고 극찬하며 일선에서 유재선 감독을 응원했다. 관객 또한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 9월 베일을 벗은 ‘잠’은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며, 손익분기점 80만 명을 넘어 100만 관객을 동원하는 성과를 이뤘다.
첫 장편 데뷔작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로 추석 연휴 극장가를 찾은 김성식 감독. 김지운, 강제규 등 거장들과 나란히 작품을 공개한 김 감독이 3파전의 최후 승자가 됐다. 누적 관객 수는 적었으나,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이 추석 연휴 내내 박스오피스 1위를 지켰다. 김성식 감독 또한 영화 ‘기생충’, ‘헤어질 결심’의 조감독으로 봉준호와 박찬욱의 제자다.
■ 1000만 영화 2편 탄생…’범죄도시3′ 밀고 ‘서울의 봄’ 당기고
‘서울의 봄’이 ‘범죄도시3’에 이어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개봉 33일 만에 천만 관객을 모은 ‘서울의 봄’은 적수 없는 흥행으로 잃어버린 한국 영화의 봄을 다시 찾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화를 향한 관심은 글로벌로 확산하고 있다. 북미에서 순차적으로 개봉한 ‘서울의 봄’은 지난 1일부터 12월 28일까지 4주간 ‘범죄도시3’를 뛰어넘고 2023년 북미 개봉 한국 영화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개봉한 ‘범죄도시2’ 이후 1년 만에 한국 영화가 세운 기록으로, ‘서울의 봄’을 향한 해외 관객들의 관심을 실감케 한다.
앞서 올해 상반기 ‘범죄도시3’가 지난해 ‘범죄도시2’에 이어 천만 관객을 넘어서 ‘쌍천만’ 타이틀을 안은 바 있다. 코로나19 이후 유일한 천만 영화였던 ‘범죄도시2’의 명성을 이어받아 혹평세례를 면하지 못했던 한국 영화에 위로가 됐다. 팬데믹 이후 영화 시장을 좀처럼 예측하기 힘들다는 판단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의 봄’이 흥행 바통을 이어받아 활력을 불어 넣고 있다.
■ ‘칸의 남자’ 故 이선균, 하늘의 별 되다
배우 이선균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48세. 이선균의 갑작스러운 비보에 연예계는 물론 대중까지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영화 ‘킬링 로맨스’, ‘잠’ 등 올해만 두 편의 영화로 관객을 만났던 그의 사망 소식은 큰 충격이었다. 특히 지난 5월 ‘잠’,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까지 2편의 작품이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되면서 ‘칸의 남자’라는 수식어를 얻은 영광스러운 해에 전해진 안타까운 소식이라 대중이 느끼는 슬픔은 배가됐다.
지난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와룡공원 인근에 정차된 차량에서 배우 이선균이 숨진 채 발견됐다. 앞서 이선균은 10월부터 마약 투약 혐의 등으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었다. 세 번째 경찰 출석이었던 지난 23일 취재진 앞에 섰던 그의 모습은 마지막이 됐다. 생전 이선균은 마약 투약 혐의에 대해 줄곧 억울함을 호소했다. 마지막 경찰 조사 당시엔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9년 연예계에 데뷔한 이선균은 드라마 ‘하얀거탑’, ‘커피프린스 1호점’, ‘달콤한 나의 도시’, ‘파스타’, ‘나의 아저씨’, ‘검사내전’, 영화 ‘옥희의 영화’, ‘쩨쩨한 로맨스’, ‘화차’, ‘내 아내의 모든 것’, ‘끝까지 간다’ 등을 거쳐 ‘기생충’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김연주 기자 yeonjuk@tvreport.co.kr / 사진=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롯데엔터테인먼트,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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