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김연주 기자] 영화에 담긴 n개의 화두 가운데 함께 나누고 싶은 재미를 선별한 리뷰입니다. 사심을 담아 고른 한 편의 영화 속 단 하나의 재미, 유일무비입니다. *이 기사 본문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다수의 욕망과 한 여성의 주체성이 충돌한다. 탄탄한 스토리에 숨겨진 명작을 찾는 재미까지 더했다. 휘몰아치는 115분, 영화 ‘립세의 사계’의 이야기다.
영화 ‘립세의 사계’는 1800년대 말 폴란드 립세 마을의 사계절을 배경으로 ‘야그나’와 마을 사람들의 격정적인 욕망과 피할 수 없는 운명을 그린 유화 애니메이션이다. 폴란드 국민들이 사랑한 작가 브와디스와프 레이몬트가 19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 ‘농민’을 원작으로, 사계절의 흐름에 맞춰 총 4부작으로 구성됐다. 여기에 전작 ‘러빙 빈센트’ 감독의 차기작으로 제작 단계 때부터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지난해 10월 폴란드에서 개봉해 2023년 폴란드 개봉작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립세의 사계’는 2023년 토론토국제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돼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여기에 오는 2024년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부문 폴란드 출품작으로 선정돼 수상을 노리고 있는 유력 후보작으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영화는 립세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 ‘야그나’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빼어난 외모에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시대를 거스르는 주체성까지. 야그나로 말할 것 같으면 하얀 도화지와 같다. 그런 야그나를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의 시선엔 동경과 질투, 탐욕과 열등감이 얽혀있다.
야그나는 마을 사람들과 어머니의 뜻에 따라 가장 부유한 농민 ‘보리나’와 부부의 연을 맺는다. 돈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 부모는 야그나에게 결혼을 강요한다. 야그나는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항변하지만, 법처럼 여겨지는 마을의 결혼 체계를 거부하진 못한다.
야그나는 남편 보리나의 아들 ‘안테크’를 사랑했다. 안테크는 아내와 자녀가 있음에도 야그나에게 강한 끌림을 느낀다. 안테크는 마을의 모든 남성이 야그나를 성적 대상으로 희롱하고 뜬소문을 퍼뜨릴 때마다 격분한다. 야그나가 보지 않는 곳에서도 그녀를 아낀다. 야그나는 자신을 탐욕의 대상이 아닌, 사랑으로 안아주는 유일한 남성인 안테크를 믿는다.
립세 사람들의 시기질투는 한층 깊어진다. 하루 아침에 마을에서 가장 재산이 많은 부인이 된 야그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각종 루머를 퍼뜨린다. 무성한 소문 가운데 사실은 단 한가지도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소문을 믿는다. 야그나는 개의치 않는다. 한 줄의 해명도 하지 않는다. 야그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마음이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을 안테크에 대한 사랑, 가슴 한편에 품고 있는 순수한 마음을 지키는 데 집중한다.
더 큰 파국을 맞이하게 되지만, 파국을 겪음으로써 야그나는 자유를 찾는다.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었던 안테크 또한 여느 남성들과 진배없다는 걸 알게된 순간에도 야그나는 좌절하지 않는다. 오히려 단단해진다. 극 말미에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야그나의 선명한 눈빛에서 그녀가 비로소 완전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각기 다른 욕망과 탐욕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사람들을 그린 ‘립세의 사계’. 제목에서 드러나듯 사계절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켜켜이 쌓인다. 실사만큼 생생한 인물의 표정, 몰입도를 배가하는 아름다운 배경이 유화로 표현돼 시선을 사로잡는다.
여기에 밀레의 ‘이삭 줍는 사람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헤우몬스키의 ‘인디언 섬머’를 비롯한 전설적 화가 30인의 명작을 스크린에 구현했으며, 강렬한 작화와 역동적인 음악 그리고 전작보다 유려해진 유화 애니메이팅으로 보는 재미를 극대화했다.
‘립세의 사계’는 오는 1월 10일 개봉 예정이다.
김연주 기자 yeonjuk@tvreport.co.kr / 사진= ㈜디스테이션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