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김수정 기자] ‘터널’, 한국 재난영화 신기원을 열었다. 웃기고, 슬프고, 스펙터클하다.
3일 오후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점에서 열린 영화 ‘터널'(김성훈 감독, 어나더썬데이 제작) 언론시사회에는 김성훈 감독과 배우 하정우, 오달수가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터널’은 무너진 터널 안에 고립된 한 남자와 그의 구조를 둘러싸고 변해가는 터널 밖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이선균, 조진웅 주연의 영화 ‘끝까지 간다’로 제67회 칸영화제 감독 주간 초청, 대종상영화제,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등 국내외 영화제를 휩쓴 김성훈 감독의 차기작이다.
김성훈 감독은 전작 ‘끝까지 간다’와 마찬가지로 이번 ‘터널’에서도 능수능란한 장르 비틀기 신공을 과시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서도 블랙 코미디가 터져나온다. ‘끝까지 간다’에서 수렁에 빠진 이선균이 짜증낼 때마다 웃음이 나왔던 것처럼, 위기 상황에 온힘을 다해 짜증내는 하정우의 모습이 아이러니한 재미를 유발한다. 김성훈 감독 특유의 유머 감각과 하정우가 지닌 유쾌한 매력이 어우러졌기에 유머의 타율도 높을 수 있었다.
터널에 갇힌 자동차 세일즈맨이자 평범한 가장인 정수를 연기한 하정우는 ‘터널’로 원맨 재난쇼, 먹방의 신기원을 열었다. 감자튀김, 케이크, 개사료 등 재난물에서도 절로 입맛을 다시게 하는 먹방을 선보인다. 특히 하정우는 개사료 먹방에 대해 “강아지와 호흡이 괜찮을까 싶었는데 기적적으로 찍을 수 있었다. 제대로 훈련 받은 두 마리의 개와 촬영했다”고 전했다.
분량 대부분이 어두운 클로즈업샷임에도 피로도가 적었던 건 하정우의 다채로운 표정 연기의 공이 컸다. 터널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발한 사투의 과정도 재미를 안긴다. 재난물로서의 스펙터클도 기대 이상이다.
터널 밖 사람들의 이야기도 중요한 한 축을 이룬다. 정수의 아내 세현을 연기한 배두나는 맨얼굴로 등장, 실감나는 감정 연기로 눈물샘을 자극한다. 정수를 포기하지 않는 구조 본부 대장 대경을 연기한 오달수는 유쾌하면서도 진중한 매력으로 영화 전반에 긍정적인 기운을 불어넣었다.
하정우는 극중 터널 안에서 직접 배우들과 만나지 않고 호흡을 맞춘 것에 대해 “감독님께서 가운데서 상대 배우의 마음과 연기를 잘 전달해줬다. 안 맞는 사람과 있으면 아무리 여행을 가고 함께 있어도 통하지 않는다. 잘 맞는 사람들은 문자 한 통만으로도 마음이 전해진다. 달수 형, 두나 씨는 운이 좋게도 후자였다”고 전했다.
김성훈 감독은 현실에서 실제 있을 법한 재난 상황을 통해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방송이 중요해요? 생명이 중요해요?”라는 당연한 질문에도 선뜻 답하지 못하는 기형적 한국사회를 낱낱이 드러낸다. 기존 재난영화에서는 언급되지 않은 디테일이 눈길을 끈다. 이를테면 피해자 가족의 숙박비의 청구 과정이라거나, 재난 메뉴얼에 언급된 붕괴의 정의, 언론과 정부의 반응 등 재난 상황을 둘러싼 사회 곳곳에 현미경을 들이밀었다.
감독은 전작과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끝까지 간다’는 시종일관 주인공이 돌아다니며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장애물을 극복하는 커다란 동선을 갖고 있는 영화다. ‘터널’은 한정된 공간에서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직면하는 영화다. 이 지점이 내 나름대로의 전작과 연관성이라면 연관성이다”라고 설명했다.
또, 이미 죽었을지도 모를 한 사람을 위해 천문학적 비용과 구조대원들의 목숨까지 내놓고 구조해야 할지 대립하는 사회의 반응은 씁쓸함을 안긴다. 재난과 함께 개개인의 일상이 무너졌던 삼풍백화점, 세월호 참사가 직접적으로 떠오른다. “나 아직 살아있는데”라는 극중 하정우 대사의 잔상이 짙다.
‘터널’은 제69회 스위스 로카르노 국제영화제, 제49회 스페인 시체스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공식 초청됐다. 8월 10일 개봉한다.
김수정 기자 swandive@tvreport.co.kr 사진=김재창 기자 freddie@tv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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