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김수정 기자] ‘겨울왕국’의 안나는 한국인 손 끝에서 탄생했다. 디즈니 최초의 한국인 여성 슈퍼바이저 이현민이 그 주인공이다.
이현민 슈퍼바이저는 2007년 재능 계발 프로그램에 합격하면서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 입사했다. 이후 애니메이션 ‘공주와 개구리’, ‘곰돌이 푸’, ‘주먹왕 랄프’, ‘겨울왕국’, ‘주토피아’, ‘모아나’ 애니메이터로 참여했다.
어린시절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푹 빠져 지내던 그는 전 세계 신드롬을 일으킨 ‘겨울왕국’ 시리즈 주역이 됐다. 안나의 눈빛, 미소, 작은 손짓 하나까지 만들어낸 그는 “애니메이터의 손이 안 보일수록 캐릭터 그 자체로 사랑받게 된다”고 말했다.
엘사와 안나를 보며 고등학교 시절 돌아가신 어머니가 떠올라 한참 울기도 했다는 그는 “꿈의 직장 디즈니에 입사하는 것을 어머니께선 보지 못 했다. 어머니는 끝까지 제 꿈을 키워주신 분”이라고 밝혔다.
‘겨울왕국2’ 개봉과 함께 내한한 그는 26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호텔에서 국내 취재진과 만나 영화와 디즈니에 대한 다양한 얘길 털어놨다.
■ 다음은 이현민 슈퍼바이저와 일문일답
-어린시절 다양한 나라에서 지냈더라.
아버지가 해외건설 쪽에 계셔서 여기저기 발령날 때마다 따라다녔다. 4살 때 홍콩에서 4년 살았고, 이후 말레이시아에도 잠깐 살았다. 그때마다 가장 중요했던 건 가족이었다. 남편도 한국사람이라 한국에 1~2년에 한 번은 오려고 한다.
-언제부터 애니메이터를 꿈꿨나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항상 만화만 보고 그림을 그렸다. 애니메이션의 일부가 되고 싶었다. 고등학교 땐 이과였고, 대학도 천문학과로 진학했다. 한학기 다니다가 자퇴했고, 수능과 함께 미국 대학도 준비했었는데, 미국 웨슬리언 대학교에 입학해 미술을 전공했다. 디즈니에는 인턴십을 통해 입사하게 됐다.
-고등학교 시절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애니메이터의 길을 지원해주셨다고. 제니퍼 리 감독도 이 사연을 알고 있던데.
고등학교 때 어머니가 위암 판정을 받으셨다. 난 미국 대학교 안 가고 곁에 있겠다고 했지만 어머니께서 끝까지 제 꿈을 밀어주셨다. 제가 수능 보는 것, 한국 대학교에 붙는 것까지 다 보시고 그해 12월에 돌아가셨다. 제가 애니메이션을 전공하고 디즈니에 입사한 것을 못 보신 거다.
제니퍼 리 감독이 ‘겨울왕국2’ 후반부 ‘쇼 유얼 셀프'(Show yourself) 시퀀스를 굉장히 고심을 많이 했다. 내부 시사회 때 스튜디오 직원들이 모두 눈물바다가 됐다. 그때 나도 엄마의 얘길했는데, 감독님께서 감사하게도 그 얘길 기억해주셨더라.
-그 장면이 더 남다르게 느껴졌겠다.
엘사와 안나가 자신의 역할이 뭔지 완벽하게 각성하는 순간 부모님이 안 계시잖나. 꼭 내 얘기 같았다.
-슈퍼바이저는 정확히 어떤 업무를 하는 건가.
디즈니 스튜디오에는 8~90명의 애니메이터가 있다. 슈퍼바이저는 총 6명인데, 각자 담당하는 캐릭터가 다르다. 맡은 캐릭터의 성격을 어떻게 동작, 손짓, 연기로 드러내는지 심층적으로 연구하는 일을 한다. 여러 애니메이터가 작업한 결과에 통일성을 부여한다.
-안나 캐릭터에 주안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씩씩하고 왈가닥이고 겁없이 직진하는 캐릭터다. 2편에서는 사랑하는 남자, 올라프, 스벤과 같은 친구도 생겼기에 안나에게 잃을 게 많아졌다. 밝은 성격을 유지하면서도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내면의 힘을 각성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안나와 엘사의 차이점이 있다면
엘사는 움직임이 적고 심사숙고하는 캐릭터다. 안나는 뭐든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웃어도 크게 웃고, 손짓 발짓도 크다.
-디즈니 스튜디오만의 특징은 뭔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꿈의 직장이 아닌가. 때문에 자부심과 책임감, 부담감이 동시에 있다. 야근하고 피곤할 때에도 디즈니에 대한 애정이 엄청난 동기부여가 된다. 디즈니는 잠깐 재밌는 것보다, 몇 십년 후에 봐도 재밌는 작품을 만드는 게 목표다. 내가 지금은 힘들어도 이 작품을 몇 세대에 걸쳐 좋아해줄 것을 생각하며 최대한 힘을 다해 만든다.
-한국에서 ‘겨울왕국’이 신드롬을 일으켰다. 참여한 사람으로서 뿌듯할 것 같은데.
관객들은 안나, 엘사, 올라프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고 친구, 가족처럼 애정을 갖고 바라봐준다. 애니메이터는 일을 잘하면 잘할 수록 우리의 존재가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저희의 손이 보이지 않고 캐릭터가 자기 자신의 존재만으로 살아가고 사랑받을 때 애니메이터로서 성공했단 생각이 든다.
김수정 기자 swandive@tvreport.co.kr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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