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김수정 기자] 서울대, 미스코리아, 미스유니버스. 배우 이하늬에게 따라붙었던 수식어들이다. 데뷔 이후 줄곧 엄친딸 이미지가 짙었던 이하늬이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그에 대한 평가가 사뭇 달라졌다.
영화와 드라마, 가야금 독주회 등 장르와 무대를 가리지 않고 꾸준히 노력한 결과다. 영화 ‘극한직업’의 1600만 흥행과 SBS 드라마 ‘열혈사제’ 성공 이후에는 대중적 인지도도 함께 올랐다.
영화 ‘블랙머니’는 그의 연기력과 흥행력에 대한 기대치가 한껏 뜨겁게 달아오를 때 세상에 내보이는 작품이다.
‘블랙머니’는 양민혁 검사(조진웅 분)가 사건의 내막을 파헤치다 금융 비리 실체와 마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얘기를 그렸다. 론스타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을 소재로 한다.
이하늬는 극 중 대한은행 측의 법률대리인 김나리 변호사를 연기했다. 냉철한 이성과 판단력, 자신만의 확고한 소신을 지닌 인물. 전작과 180도 다른 카리스마와 당찬 매력으로 스크린을 꽉 채운다.
■ 다음은 이하늬와 일문일답
-영화 ‘극한직업’, 드라마 ‘열혈사제’의 성공 이후 첫 작품이다.
영화가 흥행하고 드라마가 잘 됐다고 해서 내 인생이 갑자기 바뀐 건 아니다. 삼시세끼 먹고, 좋아하는 요가하며 지내는 건 똑같다. 물론 배우로서 흥행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블랙머니’는 세상에 나온 것만으로도 절반 이상은 했다고 본다. 세금 내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억울하더라. 당시에 이 사건(론스타 외환은행 매각 사건)을 왜 모르고 있었나 싶더라. 그렇게 어린 나이도 아니었는데.
-영화의 어디까지가 사실인가
하나하나 따져야 할 부분이 많은데 일단 큰 줄기인 70조짜리 은행이 1조7000억 원에 넘어갔다는 것은 사실이다. 내부적으로 정보가 조작된 것도 사실이다. 김나리 변호사나 양민혁 검사 같은 사람이 실제 있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영화상 만들어진 인물들이다.
-정지영 감독과 첫 만남은 어땠나
부산국제영화제의 한 뒤풀이 자리에서 뵀다. 감독님은 내가 썩 내키지 않았는데, 누군가가 추천을 해주신 것 같더라. 난 캐스팅하시려는 건 모르고 감독님을 뵀는데, 한 5분 정도 나를 뚫어져라 보시더라. 난 살아있는 전설을 만났다는 생각에 영문도 모르고 너무 떨렸다. 막상 함께 작업을 해보니 무섭긴커녕 정말 소년 같으신 분이다. 청년 정지영이라고 부른다. 70대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소통도 잘 되고 편하게 대해주신다.
-정지영 감독이 ‘블랙머니’에 대해 어떤 얘길 해주던가
한번은 감독님께 ‘왜 이렇게까지 이 얘길 만들려고 하세요?’라고 물어봤더니 ‘내가 이걸 영화로 안 만들면 잠이 안 와’라고 답하셨다. 그것만한 대답이 또 있을까 싶더라.
-따로 취재하거나 공부하기도 했나?
사실은 굉장히 심플한 사건이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한도 끝도 없는데, 70조짜리 은행이 1조7000억 원에 외국자본으로 넘어갔고, 그마저도 한국정부 때문에 늦어져 손해를 봤다며 소송 건 사건이다. 내년 재판이 열리는데 국가와 기업이 싸울 경우 국가가 패할 가능성이 99프로라고 하더라. 5조를 국민세금으로 물어야 하는 상황이다.
-외삼촌(문희상 국회의장)이 국회 있을 때 국정감사에서 론스타 관련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외삼촌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나
그랬나? 난 몰랐다.(웃음) 조심스러운 얘기지만, 가족관계이지 일적이나 직업적으로 연결된 건 전혀 없었다.
-영어대사가 많았다. 굉장히 유창하게 소화하던데.
생전 처음 보는 단어, 경제 용어들이 많았다. 짜장면, 짬뽕이라는 단어처럼 입에 자연스럽게 붙이려고 많이 노력했다.
-상업적 재미와는 별개로 사회적 메시지도 강한 영화였다. 단식 장면에서는 세월호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배우로서 부담감은 없었나
배우가 두려움을 갖기 시작하면 어떤 역할을 맡을 수 있을까. 나는 배우이고, 캐릭터에 집중하는 게 일이다. 최대한 혼신의 힘을 다해 재밌게 연기하는 게 나의 일이다.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이슈는 대중의 몫이지 나의 몫이 아니다.
-태어나서 한 가장 큰 일탈이 연예인 데뷔한 것이란 얘길 했었는데. 데뷔초때 지금의 삶을 예상했었나
전혀. 20년 넘게 현악기를 전공했는데, 가야금은 내가 가진 에너지보다 더 예민하다. 그 에너지를 맞추기 위해 나까지 예민해진 것도 있거든. 나는 타악기에 맞는 편이다.(웃음) 국악은 기본적으로 소리를 배우고, 한국무용도 좋아했기에 복합예술형태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던 중 연기를 알게 됐는데 내 에너지를 표출할 수 있는 적당한 장르를 만나 행복하다. 현악기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을 완전히 꺼내보일 수 있게 됐다.
-가야금 독주회도 꾸준히 하고 있다. 참 바쁘게 사는 것 같다.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다.(웃음) 쉬면서도 머리에 여러 프로젝트가 떠오르면 일어나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다. 요새는 그 에너지를 좀 덜고 완전히 제로 상태로 만들려고 노력 중이다. 발리에서 요가 트레이닝도 받고, 얼마 전엔 직접 요가 강의까지 했다.
-완벽한 몸매의 대명사다. 대중의 시선이 부담스럽진 않나.
아무리 매일 운동해도 여자니까 주기도 있고, 몸이 붓기도 하고 변수가 있잖나. 그런 날에도 대중 앞에 서야 하는 직업이니 부담되긴 하지. 예전엔 늘 대중 앞에 서야 하는 게 스트레스인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스트레스 대신 매일 성실하게 운동하려고 한다. 기본적인 원칙에 집중하면 안 좋은 이슈를 줄일 수 있더라.
-요즘도 채식식단을 유지하고 있나.
채식을 지향하지만 지금은 안 한다. 건강상의 이슈가 있어서 하다가 중단했다. 요가 트레이닝할 때 오랜만에 완벽한 채식을 했는데 안 되던 자세가 되더라. 환경상, 건강상 채식의 장점이 참 많다.
-얼마 전엔 SNS 글 때문에 뜻하지 않게 윤계상과 결별설이 불거졌는데.
잘 만나고 있다. 5년째 키우던 강아지의 털 색깔이 변하는 것을 보며 시간이 가는 게 아깝다는 생각을 해서 쓴 글이었다. 그 글이 이렇게 많은 분에게 심려를 끼칠 줄이야. SNS에 어디까지 마음을 나눠야 하나 고민이 많다. 이제 감성글 자제해야겠다.
-SNS 해프닝도 그렇고, 연예인이기에 겪는 이런저런 일들이 힘들진 않나.
나는 공인이고 싶지 않다. 아티스트로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 배우들은 어떤 지점에서는 세상을 잘 아는 똑똑이들보다 허점이 있다. 그게 매력이기도 한데, 세상에 다 깎여 마모되면 뭐가 남을까 고민이 크다.
-다음 작품은 정해졌나
아직은 계약직이기 때문에 딱 정해졌다고 말하긴 애매하다. 결혼식장 들어가기 전까진 모른다는 말처럼, 작품도 마찬가지다. 설사 촬영장까지 들어갔다고 해도 개봉이 안 되거나 엎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명확하게 말씀드리긴 어렵다.
-‘블랙머니’는 어떤 영화인가
예전엔 나와 내 가족만 행복한 것이 가능했는데, 이젠 나혼자만 행복한 건 있을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한 것 같다. 어떤 대책이 있을까 함께 지혜롭게 공유할 때가 온 것 같다. ‘블랙머니’는 우리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일어나고 있는지 명확하게 봐야 한다고 말하는 영화다.
김수정 기자 swandive@tvreport.co.kr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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