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김수정 기자] 이메일 아이디로 개성을 뽐내던 시절이 있다. 친구보다 더 돋보이게, 있어 보이게, 그럴싸하게. 말하자면 지금의 인스타그램, 카카오톡과 같은 기능을 했던 것이 바로 이메일 아이디였다.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주인공 미수(김고은 분)도 이메일 작명으로 성격을 드러낸다.
1994년 10월 1일 운명 같은 첫 만남을 가진 미수와 현우(정해인 분)는 1997년 재회한다. 스마트폰도, SNS도 없으니 소식을 주고받을 길은 이메일이 전부였던 그 시절. 미수(김고은 분)는 군입대를 앞둔 현우(정해인 분)에게 이메일 계정을 만들어준다.
아이디는 ‘dubu1001’. 현우의 별명인 두부(dubu)와 현우의 생일이자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날인 10월 1일을 붙여 만들었다. 직관적이고 귀여운 작명이다.
미수의 아이디는 ‘misoo74’다. 재밌는 점은, 미수는 1975년생이라는 것. 미수는 첫 만남에서 자신도 1975년생이라고 소개하는 현우에게 “난 빠른 1975년생이야. 내 친구들은 다 1974년생이야”라고 새침하게 말한다. 한 문장으로 위계질서를 정리했다.
2009년도 폐지됐지만 한국에만 존재하는 ‘빠른 년생 문화’를 대사 한 줄로 표현한 장면이자, 현우에게 묘한 거리감을 두는 미수의 성격이 드러나 웃음이 터진 장면이다.
정지우 감독은 최근 TV리포트와 인터뷰에서 “미수 아이디도 이런 성격을 고려해 만들었다. ‘misoo75’가 아닌 ‘misoo74’다. 본인은 1974년생이라는 미수의 강력한 의지가 드러난 아이디”라고 설명했다.
미수의 성격이 드러난 대목은 이메일뿐만이 아니다. 2000년대의 미수의 네이트온 대화명은 프랑스어다. 왠지 모르게 문화적 소양이 깊어 보이는 느낌을 자아낸다.
정 감독은 “말투, 대화명 모두 당시 네이트온 채팅 캡처본을 구글링해 만들어낸 것들이다. 실제 쓰였던 이모티콘이나 어미를 최대한 많이 모아, 그 가운데 추려내 사용했다”고 밝혔다.
‘유열의 음악앨범’은 노골적으로 시대의 풍광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 당시의 공기를 영화 곳곳에 자연스럽게 녹였다. 지금은 온라인상에서 종적을 감춘 ‘~했삼’이라는 말투가 영화에 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정 감독은 “1994년, 1997년, 2005년은 우리에겐 과거지만 미수와 현우에겐 현재 아닌가. 대놓고 시대극이라는 느낌보다, 시대가 품고 있던 여러 요소를 영화에 담고자 했다”라고 연출 주안점을 둔 부분을 밝혔다.
김수정 기자 swandive@tvreport.co.kr /사진=CGV아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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