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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강지호 기자] 지독하고, 집요하고, 고약하다. 그래서 나홍진이 좋고, 나홍진 감독의 영화가 좋다.
날카로운 긴장감이 맴돌다가도 불쑥 튀어나오는 블랙 코미디 같은 유머가 웃음을 자아낸다. 나홍진 감독과의 대화는 어딘가 그의 영화를 닮아 있었다.
자신의 작품부터, 그 속의 배우들, 스크린 너머의 관객까지 몰아붙이는 감독, 나홍진과 만났다.
나홍진 감독은 지난 7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기자들과 오는 15일 개봉하는 영화 ‘HOPE(호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호프’는 비무장지대 인근 호포항 출장소장 범석(황정민)이 마을 청년들로부터 호랑이 출현 소식을 전해 듣고, 온 마을이 혼란에 빠진 가운데 믿기 어려운 존재와 마주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황정민, 조인성, 정호연을 비롯해 테일러 러셀, 카메론 브리튼, 알리시아 비칸데르, 마이클 패스벤더 등 국내외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호프’는 칸 경쟁 부문 초청과 함께 일찌감치 화제를 모았다.
개봉을 앞둔 시점에도 나홍진 감독의 작업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인터뷰 전날까지 사운드와 일부 장면을 다시 손봤다고 밝혔다.
나 감독은 “어제도 전반적인 사운드 믹싱의 균형을 다시 잡았다. 0.1데시벨을 내릴지 올릴지를 두고 믹싱 기사님과 계속 이야기했다”며 “몇몇 컷도 수정하고 있고, 미국에서 비주얼 작업도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퇴근길에 다시 수정을 요청했다가 작업진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 같다는 농담도 덧붙였다. 그는 “기분 좋게 끝났다가 차를 타고 가면서 다시 올려달라고 했다. 내가 말을 안 들으니 많이 삐진 것 같다”고 웃었다.
개봉 직전까지 작품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관객의 몰입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서였다.
나 감독은 “이 영화를 위해 몇백 명의 배우와 스태프가 죽을힘을 다했다”며 “한 번 더 보시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여러 가지가 새롭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지난 2016년 개봉한 ‘곡성’ 이후 약 10년 만에 장편 영화로 돌아온 그는 이번 작품에서 이전보다 더욱 넓은 관점으로 비극과 희망을 바라보고자 했다.
나 감독은 “‘곡성’이 초자연적이고 토속 신앙적인 관점에서 이야기를 바라봤다면, 이번에는 더욱 간결하고 과감하게 성경 속 신의 관점으로 가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특정한 사건이나 소재에 끌리는 편이 아니다. 비슷한 소재와 주제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볼 것인지에 관심이 있다”며 “이번에는 세상의 모든 비극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지, 그 안에서 어떤 희망을 찾아낼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고 밝혔다.
그가 작품에서 말하는 희망은 막연한 낙관과는 다르다. 영화 속 인물들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희망하지만 그 바람은 번번이 무너진다.
나 감독은 “아이를 부활시키는 가장 큰 요인은 그 아이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확신과 믿음, 희망이라고 생각했다”며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된 사건에서 새로운 목적과 희망이 만들어지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호프’에서 희망은 끊임없이 좌절된다. 나 감독은 “영화에서는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 계속 무너진다”며 “‘호프’라는 제목에도 그런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화의 배경이 된 과거의 호포항 역시 단순히 통신이 끊긴 고립된 마을을 만들기 위한 장치만은 아니었다.
나 감독은 “가장 누추하고 작은 곳에서 비롯된 커다란 희망이 있는 동시에, 아주 사소하게 시작돼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커지는 이야기가 있다”며 “그 양가적인 개념을 담아내기에 가장 적절한 공간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시대적 배경을 과거로 설정한 이유도 있었다. 그는 “요즘에는 그런 동네가 많이 사라지고 개방됐기 때문에 과거로 가야 그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며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있으면 이야기를 설명하기 복잡해지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무엇보다 나 감독이 ‘호프’를 통해 이루고 싶었던 목표는 관객이 극장 안에서 온몸으로 영화를 체험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작품을 준비할 당시 극장 산업의 변화를 체감하며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다는 행위 자체를 다시 고민했다.
나 감독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영화 산업이 큰 문제를 맞을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을 느꼈다”며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개념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봐야겠다고 느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관객분들이 극장에서 직접 체험하고 느끼고 흥분하며 쾌감을 얻는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며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체험을 전달할 수 있을지에 가장 집중했다”고 말했다.
긴 러닝타임 역시 몰입을 해치지 않는다면 오히려 더욱 풍성한 경험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나 감독은 “러닝타임을 줄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도 받았지만, 그 시간 동안 쾌감과 몰입을 느껴 길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더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관객을 끝까지 몰아붙이는 영화적 체험을 강조했다.
관객이 작품 바깥을 의식할 틈을 주지 않는 것이 그의 전략이었다.
나 감독은 “관객이 영화를 의식하는 순간 만드는 사람이 불리해진다고 생각했다. 의식하지 못하도록 계속 몰아쳐야 했다”며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고 밀어붙이겠다는 각오로 영화를 설계했다”고 밝혔다.

그는 영화라는 매체를 관객과 창작자 사이의 치열한 게임에 비유하기도 했다.
나 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불을 끄고 자신이 만든 화면만 보게 하고 소리만 듣게 할 수 있으니 유리한 입장처럼 보인다”며 “하지만 두 시간 동안 영화가 갖춰야 할 수많은 요소를 완성도 있게 담아내야 한다는 조건이 붙으면 오히려 관객이 유리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관객이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계속 밀어붙여야 했다. 내게는 뒤가 없는 상황에서 작품이 가진 힘을 극대화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강렬한 속도감과 액션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관객을 쉴 틈 없이 몰아붙이기 위해서는 촬영 방식부터 달라져야 했다.
나 감독은 “단순히 카메라를 돌린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카메라가 어떻게 움직이고 피사체를 따라가며 밀어붙일지를 두고 촬영감독님과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고 밝혔다.
답은 시도 속에서 나왔다. 나 감독은 “준비 과정 중반쯤 해답을 찾았고, 촬영에 들어가서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시도들을 시작했다”며 “카메라를 이전에는 넣어보지 않았던 곳에 설치하고, 달아보지 않았던 곳에 달았다. 익숙한 방식으로 촬영한 장면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촬영진은 움직이는 카메라를 따라가기 위해 좁은 차량에 함께 올라타야 했다. 나 감독은 촬영감독과 오퍼레이터, 연출부, 녹음 기사 등이 한 차에 몸을 구겨 넣고 촬영했던 순간을 유쾌하게 떠올렸다.
그는 “차 안에 탄 사람들의 나이를 합치면 거의 300살쯤 됐다”며 “그분들이 좁은 차에 끼어 앉아 더 가라고 하고 서로 잔소리와 농담을 주고받았다. 정말 재미있었다”고 웃었다.
새로운 기술과 촬영 방식을 구현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배우와 제작진 모두 공부와 시행착오를 반복해야 했다.
나 감독은 “배우와 스태프 입장에서는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공부도 많이 해야 했고, 시행착오도 겪어야 했다. 시간도 오래 걸렸고 그만큼 더 많은 노력을 쏟아야 했다”고 말했다.
‘호프’는 관객이 인간과 외계 생명체의 충돌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질문을 던진다. 영화는 사건의 원인을 보여준 뒤에도 인간의 시점을 유지하며 관객이 어느 편에 서는지를 시험한다.
나 감독은 “처음에는 관객도 극 중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모른 채 범석을 따라간다. 이후 사건의 원인과 희생된 존재를 알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반적인 영화라면 그때부터 외계인의 관점으로 옮겨갈 수 있지만, 나는 인간에게 시점을 그대로 뒀다”며 “정보를 모두 알게 된 뒤에도 관객이 자신도 모르게 인간의 편을 들게 되는 상황을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액션에 빠지는 사이 사건의 시작과 희생자를 잊어버리는 관객의 태도까지 작품의 일부로 끌어들이고자 한 것이다.
나 감독은 “영화가 액션물처럼 몰아치면 관객은 그 안으로 빠져든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한 존재에게서 시작됐다는 사실을 이미 보여줬다”며 “그것을 망각한 채 액션에만 몰입할 수 있는지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에 익숙한 기존 관객뿐 아니라 새로운 세대에게도 극장 액션의 재미를 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나 감독은 “우리가 알고 있던 영화의 개념과 완전히 다른 세대가 형성될 만큼 시간이 흘렀다”며 “그분들에게 이런 액션의 재미와 가치, 이런 장르의 영화도 있다는 것을 꼭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전했다.
약 10년에 걸쳐 완성한 작품이지만 나홍진 감독의 수정 욕구는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이제는 영화를 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영화를 보면 자꾸 수정하게 된다”며 “학교에 다닐 때도 계속 찾아가서 고쳤다. 내가 나타나면 ‘홍진이 온다. 도망가라, 숨어라’고 하고, 영진위 때도 전화받지 않는 분들도 있었다”고 농담했다.
‘도망가라, 숨어라’라는 말이 익숙할 만큼 집요하고 지독하게 작품을 파고드는 나홍진 감독. 개봉 직전까지 소리와 화면을 손보며 ‘호프’를 놓지 못하는 그가 바라는 것은 결국 하나다. 관객이 극장에 들어선 순간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자신이 만든 세계에 완전히 사로잡히는 것이다.
나 감독은 “관객분들이 극장에 들어와 몰입하고 흥분하고 체험한 뒤 나가는 영화가 되기를 바랐다”며 “그것을 위해 배우와 스태프 모두가 죽을힘을 다했다”고 강조했다.
영화 ‘호프’는 오는 15일 개봉한다.
강지호 기자 /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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