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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식이 발가벗긴 허문오의 욕망, ‘맨 끝줄 소년’ 너머의 45년 [RE:인터뷰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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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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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강지호 기자] 눈앞에서 극이 펼쳐지는 것 같다. 

한 사람의 얼굴에 이토록 많은 생이 담길 수 있을까. 바다처럼 깊은 눈으로 응시하고, 유쾌한 관록으로 말을 뱉는다. 대한민국의 대배우란 어떤 것인지 온몸으로 체감하게 하는 배우 최민식을 만났다.

최민식은 지난 2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난달 26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맨 끝줄 소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넷플릭스 시리즈 ‘맨 끝줄 소년’은 실패한 작가이자 국문학과 교수 허문오(최민식)가 강의실 맨 끝줄 소년 이강(최현욱)의 천재성을 발견하고 그의 글에 집착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서스펜스 드라마다.

이날 최민식은 작품을 선택한 이유로 인물들의 굴절된 욕망을 꼽았다. 저마다 결핍을 품은 사람들이 서로를 파괴하고, 그 과정에서 감춰졌던 본성을 드러내는 이야기에 매력을 느꼈다는 설명이다.

그는 “작품 자체가 가진 힘이 있었다. 진실이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더라도 인간의 불편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며 “욕망덩어리 같은 사람들이 굴절된 욕망 때문에 얼마나 부서지는지를 보여준다. 허문오뿐 아니라 그를 무너뜨린 이강 역시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설명했다.

허문오는 단순히 열등감과 질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물이다. 작가를 동경하고 친구에게 열등감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창작자로서의 갈망을 품고 있다.

최민식은 “부정적인 요소가 많은 인물이지만 아주 악한 사람은 아니다. 창작자로서 내실을 다지고 본질에 접근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바라봤다.

인물의 복잡한 면모를 살리기 위해 블랙코미디적인 요소도 더했다. 그는 열패감에 매몰된 모습만으로 6부작을 이끌기보다 허문오의 우스꽝스럽고 모순적인 순간을 함께 보여줬다.

“예술가적인 면도 다분한 사람이다. 그렇다고 열패감만 가지고 6부작을 끌고 가면 답답할 수 있기 때문에 블랙코미디적인 변화를 주자는 이야기도 했다”고 밝힌 최민식은 “상황을 보면서 실소가 터져 나올 수 있는 부분들을 만들려고 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허문오는 자신의 결핍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이강의 위험성을 감지하면서도 그의 글을 향한 욕망을 포기하지 못하고 스스로 파국을 향해 걸어간다.

최민식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강을 예배당 종 치듯 내쫓았을 것”이라며 “그런데 허문오는 이강의 글을 읽고 싶으니까 그러지 못한다. 그만큼 취약한 인간”이라고 짚었다.

‘맨 끝줄 소년’에서는 이러한 인물들의 갈등이 물리적인 충돌보다 말과 글을 통해 폭발한다.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창작물이 상대를 파괴하는 도구로 변하는 과정 역시 작품의 중요한 지점이었다.

최민식은 “글이라는 폭력의 수단이 등장한다. 물리적인 폭력이 아니라 말과 글을 통한 폭력이 혼재돼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생각할 지점이 굉장히 많은 작품이었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허문오를 연기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인물을 포장하지 않는 것이었다. 교수이자 작가라는 사회적 지위 뒤에 숨겨진 결핍과 모순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자 했다.

그는 “허문오를 봤을 때 완전히 발가벗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육점에 고기 한 덩어리를 걸어놓은 것처럼 인간의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특히 최민식은 지식의 깊이와 한 사람의 인격이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최민식은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허문오는 일반적인 상식에는 반하는 인물이다. 지식인이고 작가지만 많이 배웠다는 사실과 인격체의 완성은 별개의 문제”라며 “배운 사람들이 세상을 이끌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인격까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런 모습을 현실에서도 많이 봐왔다”고 짚었다.

이러한 허문오의 복잡한 내면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최민식은 인위적으로 극의 긴장감을 만들어내려 하지 않았다. 6부작 전체가 마지막을 향해 치밀하게 쌓여가는 만큼 대본의 흐름을 정확하게 따라가는 데 집중했다.

그는 “6회까지 한 번에 봐야 더 흥미로운 작품이다. 결국 6회를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라며 “의도적으로 시청자를 끌고 가야 한다는 강박은 없었다. 대본 자체가 힘을 가지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작이라는 기본 텍스트부터 나무랄 곳이 없었다. 한국적으로 각색하는 과정에서 허문오의 서사가 더해졌고 김수훈, 안은주, 이강과의 관계도 더욱 구체적으로 만들어졌다”며 “이번만큼은 정말 대본에 충실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수많은 장면과 대사 가운데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자신의 대사가 아닌 허준호가 연기한 김수훈의 한마디였다.

최민식은 “허문오가 워낙 지질한 인간이라 그런지 제 대사보다 준호의 대사가 오래 남았다”며 “‘쓸 이야기가 없으면 안 쓰는 게 낫지 않나. 그렇게 살아도 괜찮잖아’라는 말이었다”고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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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 말이 정말 섬뜩했다. 작가님을 다시 봤다. ‘장명우 작가, 무서운 사람이구나’ 싶었다”며 “그 대사가 시사하는 바가 굉장히 크다고 생각한다”고 감탄했다.

진지한 이야기만 오간 것은 아니었다. 작품 속 화제를 모은 전력 질주 장면에 얽힌 비하인드도 공개했다. 대구 계명대학교에서 진행된 촬영 당시 무더위 속에서 전력으로 달려야 했던 최민식은 당시를 떠올리며 “죽는 줄 알았다”고 웃었다.

그는 “대구에서 촬영했는데 정말 더웠다. ‘NG를 내면 안 된다. 세 테이크를 넘어가면 촬영을 못 한다’는 생각으로 죽어라 뛰었다”며 “다행히 두 테이크 만에 끝냈다. 왕년에 뜀박질을 좀 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렇다면 수개월 동안 허문오로 살아온 최민식은 이 지질한 인물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미움보다 연민이 커졌다.

허문오의 모순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관계는 아내 안현숙(진경)과의 결혼 생활이었다. 첫사랑을 향한 미련과 질투에서는 벗어나지 못하면서 정작 곁에 있는 아내에게는 무책임했던 그는, 관계가 끝날 위기에 놓이자 뒤늦게 매달린다.

최민식은 “사랑했을 것이다. 부부 관계라는 게 말처럼 단순하지 않다. 아니면 이혼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 있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라며 허문오와 안현숙의 관계를 바라봤다.

그는 “옛사랑에는 집착과 질투 때문에 연연하면서 현재의 사랑은 방기하고 무책임하게 대한다. 그러다가 막상 관계가 깨지려고 하니까 안달복달한다”며 “연기하면서도 ‘너는 진짜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옆에 허문오가 있다면 소주 한잔하면서 ‘너 왜 그러냐’고 물어보고 싶다”고 웃었다.

답답함을 넘어선 감정은 애틋함이었다. 많은 이들이 혐오하고 손가락질할 만한 인물이지만, 몇 개월 동안 그의 삶을 살아낸 최민식에게 허문오는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는 존재가 됐다.

최민식은 “몇 개월 동안 그 친구로 살다 보니 굉장히 안쓰러웠다. 심성이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은 아닌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는 모르겠다”며 “나중에는 안아주고 싶다는 마음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허문오를 파국으로 몰아간 것은 오랜 시간 쌓여온 결핍이었다. 교수이자 작가라는 사회적 지위와 도덕은 이강의 글을 마주한 순간 무너진다. 타인의 삶을 엿보는 호기심에서 시작된 균열은 복수심과 질투까지 끌어내며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아이러니하게도 45년 동안 배우의 길을 걸어온 최민식 역시 여전히 강한 갈증을 품고 있었다. 허문오가 좋은 글을 향한 욕구를 놓지 못했다면, 최민식은 더 좋은 작품과 새로운 인물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인간에 대해서도 그렇고, 더 좋은 이야기를 가지고 다양한 작품을 표현해 보고 싶어 죽겠다”고 말했다.

작품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현실도 체감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새로운 이야기와 캐릭터를 향한 열망은 여전했다.

최민식이 생각하는 좋은 작품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좋은 이야기란 결국 사람에 대한 탐구가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며 “오락적인 작품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영화에는 여러 기능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인간을 파헤치는 이야기를 좀 더 다양하게 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그 연장선에서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장르로는 멜로를 꼽았다. 특히 젊은 남녀의 사랑이 아닌, 세월을 살아낸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을 깊이 있게 표현해 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최민식은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언급하며 “외국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중년의 사랑을 다룬 작품들이 굉장히 감동적이다”라고 말했다.

단순히 불륜이라는 도덕적 잣대로 관계를 판단하기보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본질과 그 앞에서 망설이는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사랑의 감정이라는 게 과연 무엇인지 깊이 파고들어 보고 싶다”며 “그러면서도 결국 용기가 없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지 않나. 나이 든 사람들이 해석하는 사랑을 한번 표현해 보고 싶다”고 바랐다.

45년 동안 수많은 삶을 연기해 온 최민식은 여전히 사람에게서 새로운 이야기를 찾고 있었다. 이미 수많은 얼굴을 보여준 배우에게도, 아직 살아보지 못한 인간의 삶은 무궁무진했다.

최민식이 발가벗긴 허문오의 욕망은 넷플릭스 시리즈 ‘맨 끝줄 소년’에서 만나볼 수 있다.

강지호 기자 / 사진=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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