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성민주 인턴기자] “맨날 사회부적응, 소외계층만 하니까 똑같아 보이지 않을까 얼마 전까진 고민했는데 그래도 제가 잘 할 수 있는 건 악역인 것 같아요.”
배우 이중옥은 지난 8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한 카페에서 기자들을 만나 이같이 말하며 악역 전문 배우로서의 삶을 얘기했다.
그는 지난 6일 종영한 OCN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에서 에덴고시원 313호에 거주하는 홍남복 역할을 맡았다. 이중옥은 늘어진 러닝셔츠에 추리닝 차림으로 신경을 자극하는 성범죄 전과자이자 살인마 홍남복을 완벽하게 표현해냈다.
“가급적 웹툰을 많이 참고했어요. 원작의 분위기를 많이 따라가려고. 그런데 이 친구가 과거에 어떤 행적들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원작에는 없는 개인적인 상상들이 많이 추가됐어요. 전자발찌를 찬다든지, 장기밀매를 한다든지.”
이중옥은 원작에는 없는 설정이 덧붙여져 만들어진 홍남복 캐릭터가 지나치게 혐오스럽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순화된 게 그 정도였어요. 개인적으로는 딱 적절한 수준에서 끝난 것 같아요. 혐오감을 표현하기는 해야 하는데 도가 지나치게 표현할까 봐 걱정이었거든요. 중국어도 해야 하고, 여성편력도 표현해야 하고. ‘이것까지 해야 하나’ 싶은 부분이 있었지만, 결국엔 가지고 가는 게 맞았던 것 같아요.”
에덴고시원 식구들, 일명 ‘고벤져스’는 원작 웹툰과의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하며 시선을 모았다. 이중옥은 이에 대해 연기로 인정받는 건 좋긴 좋은데, 기분은 나쁘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높은 싱크로율 얘기하면 다들 기분 나빠해요. (웃음) 좋긴 좋은데, 극 중에 정상적인 사람이 없으니까. 제가 정말 닮았나 생각하면 기분이 나쁘죠. 각자 있을 때는 잘 모르겠는데 같이 있을 때는 ‘이 사람이 만화에서 나왔구나’ 싶어요. ‘고벤져스’라고 우리끼리 얘기하는데, 모여있으니까 더 무서운 것 같아요.”
그는 홍남복의 불쾌함을 훌륭하게 표현해낸 대가로 웃지 못할 메시지도 받았다고 밝혔다.
“댓글이랑 개인적으로 날아오는 메시지로 ‘X나 싫다’라는 반응이 오더라고요. 처음엔 좀 당황하고 기분도 안 좋았지만, 연기는 성공했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다 칭찬인 것 같아요. (웃음)”
‘타인은 지옥이다’는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고시원 세트에서 촬영했다. 이중옥 역시 야한 사진이 잔뜩 붙어있는 비좁은 홍남복의 방이 힘겨웠다고 말했다. 또 배역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촬영 후 약간의 우울감도 겪었다고 밝혔다.
“고시원 세트장은 실제로 스산해요. 제 방에 들어가서 촬영하면 5분 이상 버티기가 힘들 정도로. 장시간 있기가 힘들어서 나와서 쉬어야 해요. 빤쓰, 쓰레기도 막 널브러져있고. ‘타인은 지옥이다’ 끝나고 너무 우울해지더라구요. 왜 그러지 했더니 내가 너무 몰입하고 있었구나 싶었어요. 촬영 끝나고 일주일 가량 멍하고 다운되어 있었어요. 여파가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잘 극복하고 다음 작품 찾아보고 있습니다.”
이중옥은 지난 2000년부터 연극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한 베테랑 배우다. OCN 드라마 ‘손 더 게스트’의 폐차장 주인, 영화 ‘마약왕’의 조직 폭력배, 영화 ‘극한직업’의 마약 판매책 등 강렬한 배역으로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도 그는 홍남복을 역대 악역 ‘톱’으로 꼽았다.
“연극도 거의 다 악역이었어요. 도둑, 납치, 강도. 그중에서도 홍남복이 1위예요. 너무나 인간말종이고 범죄자 쪽으로 톱이라서.(웃음) 이보다 더한 악역이 있을까 싶어요. 만약 ‘타인은 지옥이다’가 영화였다면 더 멀리 갈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웹툰에서는 욕이 난무하는데, 드라마라는 한계 때문에 더 표현할 수 없었던 건 있죠.”
그는 연달아 나쁜 역할만 맡다보니 똑같아 보이지 않을까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이때 배우 이정은의 조언이 큰 힘이 되어주었다고 했다.
“이정은 배우에게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어요. ‘비슷한 역이 많은데 배우로서 소모되지 않을까?’ 그때 충고를 너무 잘 해주셨어요. ‘나도 엄마 역할만 10년이야. 하지만 ‘기생충’도 하고, 또 아줌마로 들어가고. 배우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닐까?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라고 해주셨는데 생각해보니까 그 말이 맞더라구요. 그래서 똑같은 걸 해도 ‘뭐 어때, 내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생각을 정리했어요. 굉장히 큰 도움이 되었죠.”
이중옥에게 ‘타인은 지옥이다’를 통해 얻은 것을 물으니 그는 곧장 ‘사람’이라고 답했다. 특히 이동욱이 그의 마음을 열어주었다고 했다.
“길다면 긴 10부작이라서 어떻게 찍을까 막막했는데, 첫날 다 무너졌어요. 제가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인데, 첫날 간단한 술자리에서 이동욱이 점퍼를 챙겨주는 게 매우 감동적이었어요. 내 잠바를 기억할까 싶었는데, ‘형’이라면서 널부러져있던 제 잠바를 집어서 챙겨주더라구요. 거기서 마음을 확 열었죠. (웃음)”
이동욱을 비롯, 박종환, 이정은 등 출연진과 대부분 또래라서 생각도 비슷하고, 대화도 재밌다고. 그는 이현욱 덕분에 SNS도 시작했다고 알렸지만 아직은 초보적인 면모를 드러내 취재진을 폭소케했다.
“이현욱이 인스타그램을 만들어줬어요. 나 그런거 싫다고 해도 해보라고, 자기가 가져가서 만들었어요. 해보니까 재밌더라구요. 하나 올리면 좋아요가 100개씩 달리니까 이 맛에 하는구나 싶었어요.(웃음) 인스타에 종영소감도 올렸죠. ‘#홍남복안녕 #감사합니다’ 아, #를 안 써도 글이 올라가요?”
이제 ‘타인을 지옥이다’를 벗어나는 그의 소감은 어떨까.
“아까도 숍에서 어떤 분이 작품을 봤다며 ‘이 사람 무서운 사람’이라고 옆사람을 통해서 이야기하시더라구요. 저도 ‘저 착한 사람이에요’라고 전달해달라고 했어요. (웃음) 작품은 작품일 뿐이고, 저는 그런 사람 아니라고. 배우는 작품할 때만 열심히 하면 되는 것 같아요. 홍남복은 저랑은 다른 인물이니까. 저로 돌아왔을 때는 저로 잘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성민주 기자 meansyou@tvreport.co.kr / 사진=지킴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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