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어떻게 알고 전화 주신 거예요? 아니 너무 신기해서요!”
인터뷰 요청에 원혜성 대표는 아이같이 신기해하며 이같이 말했다. 창업기 인터뷰 중에도 원 대표는 자기가 느꼈던 감정이나 상황을 가감 없이 이야기했다.
원혜성 율립 대표는 소위 말하는 ‘코덕(코스메틱+덕후)’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화장을 하면 알레르기 반응이 있었고, 화농성 여드름까지 생겨 거무튀튀하게 피부색이 변했다. 피부과에서는 ‘화장을 하지 말라’ ‘천연 화장품을 써라’라고 조언했다.
그는 이렇게 수년을 고생하다 해외에서 천연화장품을 구매해 쓰기도 하고, 집에서 직접 화장품을 만들어 쓰기도 했다.
“해외 제품이라 우리 피부 톤에 안 맞았고요. 또 천연 립스틱은 컬러가 적다 보니 한계가 있었어요. 저도 유행하는 컬러 쓰고 싶은데…”
결국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쓸 수 있는 100% 천연 립스틱을 직접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그가 화장품 사업을 시작한 건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이었다.
율립 창업 배경이 궁금합니다.
“임신과 출산으로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16년 구글캠퍼스에서 진행한 ‘엄마를 위한 캠퍼스’라는 창업가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어요.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경기도 용인시에서 서울 강남 대치동까지 지하철로 오가며 준비했어요. 아이템은 정말 저에게 필요한 걸로 해보자는 생각으로 유해 성분 없는 100% 천연 립스틱과 립밤을 만들기로 했어요.”
원래 화장품에 관심이 많으셨나 봐요.
“알레르기 반응 때문에 직접 만들어 썼어요. 사설이긴 하지만 천연화장품 제조 자격증도 있어요. 그래서 립스틱을 만드는 것도 비교적 수월했던 것 같아요. 시어버터, 호호바씨 오일, 해바라기씨 왁스 등 천연 재료를 섞어가면서 만들어 봤어요. 1년 동안 실패도 엄청 많이 했어요. 특히 색을 내는 게 어렵더라고요.”
안정성 검증도 받아야 하죠?
“네. 납, 비소 테스트 등 안전을 위한 절차를 거쳐요. 그다음 식약처 인증을 받은 공장에서 만들어야 해요. 저는 국내 연구소와 제조업체를 찾는데 매우 오래 걸렸어요. 크루얼티프리(Cruelty-free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파트너를 찾으려 하다 보니 그랬어요. 또 공장에서는 10개, 100개 이렇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최소 1000개는 만들어야 하더라고요. 자본이 필요했어요.”
‘노트북도 아까워 PC방에서 시작’
원 대표는 창업 초기 당시 자본이 넉넉하지 않아 제품개발 이외에 드는 비용을 최대한 줄였다. 노트북을 사는 돈도 아까워 PC방에서 처음 시작했다. 하지만 한계를 느껴 21만 원짜리 중고 노트북을 하나 샀다. 이게 그가 율립에 한 첫 투자다.
립스틱 제조 비용은 어떻게 마련하셨어요?
“구글캠퍼스에서 만난 스트롱벤처스 대표님께서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하라고 조언해 주셨어요. 그래서 ‘텀블벅’이라는 사이트에 천연 립스틱을 만들려는 이유를 자세하게 적었어요. 그리고 생각했어요. 만약에 이 펀딩 실패하면 취업을 해서 돈을 바짝 모아서 다시 이 사업을 재개하겠다고요. 그런데 첫 펀딩에서 목표한 500만 원보다 훨씬 많은 1750만 원이 모였어요. 곧바로 발주를 하고 2차 펀딩도 했죠. 그런데도 비용은 계속 들어가잖아요.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기도 했어요. 당장 제품을 만들어야 하니까 망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했어요.”
불안했을 것 같아요.
“‘진짜 어떡하지…’ 이런 생각으로 있었는데 죽으란 법은 없다고 카카오메이커스 MD께서 먼저 연락을 주셨어요. 다행히 카카오메이커스에서도 립스틱을 판매할 수 있었어요. 제2금융권에서 빌린 돈은 그 해에 갚을 수 있었고요. 그 이후로 판로를 확장할까 생각도 했었는데 저 혼자 생산관리, 판매, 유통, 홍보 다 하다 보니까 가능한 일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판로를 스마트스토어로 최소화했어요. “
그렇게 많은 일을 혼자 하는 게 가능한가요?
“진짜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았죠. 구글캠퍼스에서 만난 아트상회 대표님이 무상으로 패키지 디자인을 해주셨어요. 나중에 돈 벌어서 한꺼번에 갚았고요. 립스틱을 담을 상자도 어디서 만들어야 되는지도 몰라서 공장 사장님들께 여쭈고 찾아가고 그랬죠. 택배를 쌀 때는 온 가족이 붙어서 했어요.
그래서 선택한 해외 오픈마켓이 ‘아마존’이에요. 아마존은 제품에 대한 미사여구 필요 없이 팩트만 올리면 되니까요. 혼자 일하는 저에게 딱이었죠. 당시 경기지역FTA활용지원센터에서 셀러를 모집하고 있어서 지원했는데 다행히 붙었어요. 아마존에서 제품을 팔 수 있는 교육을 받고 알려주신 대로 따라서 했죠.”
처음부터 잘 팔렸나요?
“아니요. 듣도 보도 못한 립스틱이니까요. 그즈음 미국에 사는 지인이 율립으로 조인을 했어요. 미국 고객을 대상으로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면서 판매가 조금씩 일어났어요. 그리고 리뷰가 쌓이면서 구매가 더 많이 일어났고 그러다 아마존 초이스에 선정돼서 좋은 위치에 상품이 걸리면서 잘 팔렸어요. “
고객 반응은 어떤가요?
“‘율립 립스틱을 알기 전에는 립스틱 대신 립밤을 달고 살았다’ ‘구순염 때문에 립스틱은 꿈도 못 꿨는데 율립은 가능하다’ ‘율립 쓴 이후로 집에 있는 립스틱 다 갖다 버리고 싶다’ 이런 반응이 주로 있죠. 저처럼 피부로 고생하신 분들이 많아요. 매출은 해외보다 국내 비중이 더 커요. “
‘사무실 없이 집에서 사업과 육아 병행’
지금은 구성원이 몇 명인가요?
“저까지 3명이서 일을 하고 있어요. 각자 집에서 육아도 하면서 일을 하고 있어요. 미국 CS가 걱정이었는데 미국에 있는 직원이 언어도 되고, 시차도 맞으니까 잘 해주고 있어요. 저희 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분들이 육아를 하다 회사에 복귀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요. 그런데 회사를 재택근무 형태로 운영하다 보니 이렇게 실력있는 분들을 인재로 영입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
집에서 육아도 하면서 일도 하시는 건가요?
“아이가 집에 있는 시간에는 업무가 어려워요. 최근 몇 달은 코로나19로 아이가 유치원을 못 가서 일하는 게 정말 힘들더라고요. 전화 통화나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일을 낮에 주로 하고, 창의력과 집중력이 필요한 일은 아이가 잠든 이후에 하고 있어요.”
율립 대표로서의 목표가 궁금합니다
“많이 알려진 브랜드가 되고 싶어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요. 안 써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써본 사람은 없는 율립이 되고 싶습니다. “
김가영 기자 kimga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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