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김은정 기자] ‘사명감 상속자들’의 일상이 공개됐다.
23일 오후 방송된 MBC ‘아무튼 출근!’에서는 2대째 소방관 이창준, 제과점 3세 신경철의 밥벌이 브이로그를 공개했다.
이날 6년차 소방관 이창준은 영양제와 함께 24시간 근무를 시작했다. “모든 현장이 두렵고 무섭지만 사람을 도울 수 있어서 좋다”는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은 소방관을 ‘천직’이라고 표현했다.
인명구조에 특화된 구조1팀 소속으로 특수부대 출신인 이창준은 35kg에 달하는 개인장비를 꼼꼼히 점검 후 출동 차량도 살펴봤다. 1,700가지 장비가 실린 구조공작차. 언제나 변수가 많아 똑같은 현장은 없다는 그는 “1,700가지 장비가 모두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고 자신했다.
‘이창준’이라는 이름 석자와 생년월일, 혈액형이 박힌 이름표를 카메라에 비춘 그는 “큰 화재 현장에서 들어갈 때 안전 담당관에게 넘겨준다. 철수 후 이름표가 남아있는 건 아직 나오지 못했다는 거”라고 설명했다.
신변확인 신고에 출동한 그는 옥상에서 줄을 타고 내려와 아파트 창문을 통해 진입했다. 최근 고령화, 한가족 세대 증가로 고령자 신변확인 출동은 하루 1~2건 정도 된다고.
구조와 구급의 차이를 묻자 이창준은 “구조는 위험한 상황에 놓인 시민 구출하는 것이고, 구급은 구조된 시민을 응급 처치 및 이송하는 거”라고 말했다. 출동 외 시간에는 사격, 구조 훈련 및 최근 많은 사람들이 타는 전기차, 수소차 구조 파악 등 필요한 부분을 채웠다.
“내가 짬뽕 시키면 무조건 출동 걸린다”는 ‘짬뽕 징크스’는 피해가지 못했다. 배달이 도착하자마자 출동벨이 울린 것. 아파트 화재부터 인명구조, 신변확인, 신변비관자 구조 등 연이어 현장으로 달려야 했다.
출동 후 이창준은 “구한 분들보다 못 구한 분들이 더 생각난다. 죄송하기도 하다”면서 동료들에 대해 “목숨을 나눈 사이다. 동료가 있어서 현장에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개인사물함에 깊숙한 곳에는 유서가 있었다. 그는 “유서라기보다 ‘미리쓰는 감사 인사'”라고 표현하며 “과거 어머니가 아버지가 출근하실 때 항상 아침에 깨워서 인사를 시켰다”고 이야기했다.
이창준은 “10세 때부터 소방관이 꿈이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구조 대상자, 그리고 저 두 명을 구하는 멋진 소방관이 되겠다”고 말했다.
소방관이 된다고 했을 때 아들을 걱정해 욕부터 하셨다는 부모님. 아버지 시대에 비해 소방관의 처우개선이 된 것 같은지 묻자 “아버지가 힘들어하셨던 부분은 많이 개선됐다. 국민들을 위한 소방제도도 개선이 됐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결혼을 아직 못해서 고민하는 그에게 김구라는 “상견례 프리패스상”이라고 응원이 말을 건넸다. 하지만 이창준은 “자네를 존경하지만 내 딸은 안 되네”라는 반응을 보인다며 아쉬워했다.
‘금수저’ 못지 않은 ‘빵수저’ 3세 신경철은 갑자기 자리를 비우게 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갑자기 1946년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태극당의 경영자가 됐다.
현재 전무이사로 실질적 운영과 책임을 맡고 있는 그는 ‘뉴트로’ 트렌드를 이끄는 자부심으로 76년 전통을 이어갔다. “좋은 유산을 받은 만큼 이 색깔이 100년 후에도 변하지 않게 단단하게 만들어갈 것”이라는 포부도 밝혔다.
가업을 잇기 전까지 “계속 놀았다”는 신경철은 현재 경영 10년차. ‘직장은 내 생명줄’이라는 표어를 보고 “요즘 N포 세대라고 하잖냐. 90년대 이후 출생자에게 소름 돋는 이야기일 것”이라면서 “어릴 때는 언젠가 내가 빵집 경영을 하겠지 생각했다. 잘 나가는 빵집이니까 배우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갑자기 현실과 마주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90년대 이후 점점 잊혀져가고 매출도 준 빵집. 신경철은 “부자 3대 못 간다는 말이 나한테 적용되는 것 같았다”면서 개인사업자 소득세 10위권에 들었던 빵집 정상화를 위해 애썼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초보 경영인을 유혹하는 인수합병 제안이 들어왔다고. “휘둘릴 것 같았다”는 그는 무조건 거부하며 가족들에게 도움을 청해 다시 가업을 일으켜 세웠다.
신경철은 “경영 수업을 전혀 안 받아서 보통 경영인보다 3~4년 템포가 느리다”면서도 자신 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매출 올리기에 사활을 걸었다. 시대 흐름에 발 맞춰 컬래버, 마케팅 등을 전개하고 이미지를 지키면서도 지루하지 않도록 기획했다.
46년~55년 빵공장을 지켜온 장인들. 할아버지 때부터 가게를 지켜온 이들은 위기가 닥치자 어린 대표 신경철을 지지하며 가게를 지켜온 진짜 공신이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보던 장인들이 전면에 나서라고 지지해주며 말도 바로 존댓말로 해줬다”면서 건물 리모델링과 급여 인상으로 직원들에게 보답했다.
신경철은 선대와 마찬가지로 총 2억원의 직원 급여를 일일이 분배해 봉투에 담아 현금으로 지급했다. 편지 속 이름은 직접 손으로 작성하는 정성도 기울였다. 그는 “돈을 많이 벌고 싶다”면서 브랜드에 대한 고민을 나타냈다.
김은정 기자 ekim@tvreport.co.kr / 사진=방송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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