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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이혜미 기자] 비극의 어린 왕 단종. 그는 왜 문종의 어의 ‘전순의’를 처벌하려 했을까.
18일 채널A ‘타임슬립 천일야사’에선 문종 의문사에 얽힌 미스터리가 그려졌다.
조선의 5대왕 문종은 세종의 적장자이자 문무를 겸비한 성군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으나 37세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바. 문종은 아들 단종에게 마지막 인사조차 남기지 못한 채 승하했고, 어린 단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계유정난의 비극이 이어졌다.
문종이 눈을 감고 단종은 동양 최대 의학사전인 의방유취 등 서적 등을 살피며 문종의 정확한 사인을 가려내려 했다. 문종을 죽음으로 몰아간 건 왕가의 유전병인 종기다. 단종은 어의 전순의가 은침을 사용해 종기를 짜내고 기력 회복을 위해 등창과 부스럼을 앓는 병자에게 금기인 꿩고기를 처방했음을 알고 분노했다.
이어 당시 도승지였던 강맹경에게 전순의가 선왕의 치료를 방서대로 하지 않았다는 증좌를 넘기며 죄를 물으려 했으나 강맹경을 비롯한 대신들은 전순의를 중죄에 처하지 않고 전의감 청직으로의 강등을 결정했다.
문종의 묏자리를 두고도 의문은 이어졌다. 문종 사후 단종에게 ‘선왕의 묘지를 살펴보니 겉으론 명당으로 보이나 실상은 허울뿐인 명당. 산맥이 끊기고 물길은 등을 돌려 흐르니 결코 길지가 아닙니다’라는 내용의 비밀 투서가 도착한 것이 발단. 그제야 본색을 드러낸 수양대군은 비밀 투서를 보낸 목효지를 ‘시정잡배’라 칭하며 단종의 장악력을 의심했다.
단종실록에 따르면 전순의를 처벌하라는 상소가 올라왔으나 어린 왕은 끝내 문종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지 못했다. 계유정난으로 왕좌를 찬탈한 수양대군 세조는 전순의를 공신으로 인정한 데 이어 조선 최고의 관직인 영의정으로 삼아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이혜미 기자 / 사진 = ‘타임슬립 천일야사’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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