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이우인 기자] KBS2 수목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해낸 일은 손가락으로 다 꼽기 어려울 만큼 많다. 그러나 드러낸 오점도 적지 않다. 후반부 들어서 비현실적인 이야기의 전개가 그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시청자들의 귀를 멎게 하는 김은숙 작가 특유의 대사, 눈을 멎게 만드는 배우들의 눈부신 비주얼이 이를 가까스로 보완하고 있을 뿐이다.
‘태양의 후예’는 군인과 의사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멜로드라마다. 이들에게 장애가 되는 건 군인과 의사라는 신분의 차도 아니고, 흔한 양가 부모의 반대도, 시한부 삶도 아니다. 나라를 위해 위험한 일에 매번 목숨을 거는 군인과의 사랑 그 자체가 장애다. 드라마 속에서 규정되지는 않지만 여주인공 강모연(송혜교)이 화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시청자들은 강모연의 입장이 돼서 유시진(송중기)에게 설레고, 유시진과 아슬아슬한 사랑을 나눈다. ‘태양의 후예’에 유독 여성 시청자들이 맹목적으로 빠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주인공들이 우르크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그려진 ‘태양의 후예’ 13회부터는 맹목적인 시청자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 연인인 강모연을 위해서,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서 몸을 던지는 정의로운 상남자 유시진이 불과 1주 사이에 불사신 캐릭터가 돼 버리고 말았다. 애국심이 투철한 군인은 사라지고 ‘죽어도 죽은 게 아닌’ 좀비 캐릭터로 변모했다.
죽은 줄 알았던 등장인물이 세월이 흐른 뒤에 느닷없이 등장하는 장면은 기존의 막장 드라마에서 자주 쓰이는 이야기 소재이기도 하다. 유시진은 성형을 해서 얼굴을 바꾸거나, 얼굴에 점을 찍어서 다른 사람이라고 우기거나, 신분을 세탁하지는 않았지만 막장 드라마에서 자주 보던 불사신 캐릭터와 맥락을 함께하고 있다. 게다가 굵직한 스토리 전개 없이 말 장난으로 시간을 벌다 엔딩을 1~2분 남기고서 극적인 장면을 뿌리는 것도, 생뚱맞은 PPL을 삽입하는 것도 개그 코너 ‘시청률의 제왕’에서 자주 보여준 막장 드라마의 형식을 띠고 있다.
그러나 ‘태양의 후예’는 막장 전개를 펼쳐도 시청자의 면죄부를 받는 경지에 오른 드라마라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지난 13일 방송된 15회에서 사망 비보로 1년이란 세월을 건너뛰어 살아돌아온 유시진이 설사 다시 죽었고, 이 모든 일이 꿈이었다 해도 용서받을 수 있다. 이 같은 이유로 드라마 밖으로 빠져나오기엔 그간 ‘태양의 후예’으로부터 얻은 행복감, 쏟은 열정이 그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이는 김은숙 작가의 작품이 같은 막장을 펼치더라도 막장 작가들과 다르게 대작으로 평가를 받는 이유이며, 김은숙 작가가 오랜 작품 활동을 통해 터득한 능력이다. 오늘(14일) ‘태양의 후예’ 마지막 회에서 김은숙 작가가 막장 전개도, PPL 뿌리기도 시청자들의 머릿속에서 말끔히 삭제해 주는 결말을 완성하길, 기대해 본다.
이우인 기자 jarrje@tvreport.co.kr/ 사진=TV리포트 DB(김은숙),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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