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STREET] 마지막으로 편지를 보낸 게 언제일까? 한 자 한 자 손글씨로 정성스레 적고 우표도 붙여 우체통에 넣을 때의 그 설렘을 요즘은 거의 느끼지 못한다. 모바일 메신저로 언제 어디서든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으며, SNS로 전 세계 사람들과도 간편하게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편리한 세상이다.
하지만 바쁘게 흘러가는 세상에서 쉬어가고 싶을 때도 있을 터. 간단하게 오가는 인스턴트 메시지보다 진심을 담은 소통을 나누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모두에게 공개된 SNS 공간에 글을 쓰기보다 누군가에게 진솔한 마음을 털어놓고 싶다면 펜팔 앱 Slowly를 소개한다.
‘이름 그대로 느리게 가는 메시지’
기본적으로 Slowly는 전 세계 회원들과 다양한 언어로 자유롭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펜팔 앱이다. 본인이 구사할 수 있거나 배우고 싶은 언어를 설정한 후, 매칭된 외국인과 대화를 나누며 친해진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펜팔 서비스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회원 간의 실제 거리에 따라 메시지가 전달되는 시간이 달라진다는 것이 Slowly만의 개성 있는 특징이다. 현재 회원이 위치한 국가에 따라 작성한 메시지가 전달되는 시간은 천차만별이다. 대한민국에서 대한민국으로 보낼 때는 1시간이 소요되고, 옆 나라 일본이나 중국에는 4시간이 걸린다. 유럽권 국가에는 평균 하루가 걸리며, 가장 먼 남미 대륙에서 보낸 편지는 이틀 밤을 꼬박 기다려야 받을 수 있다.
Slowly에서는 평소 사용하는 SNS처럼 대화하면 안 된다. 처음 말을 거는 것에도 많은 시간이 걸리기에 한 번에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적게 된다.한 글자 한 글자에 정성을 담아, 조금 더 신중하게 하고 싶은 말을 적게 되는 것이 Slowly의 매력. 그러면서 나의 삶 역시 되돌아볼 수 있는 것은 덤이다.
누군가 내게 답장을 보냈다는 알림을 받으면, 메시지가 도착할 때까지 어떤 내용일지 기대하는 재미까지 있다. 특히 상대방이 저 멀리 미 대륙에서 보냈다면 내용이 궁금해 손이 근질근질할 것이다.
‘익명이기에 더 진솔하고 깨끗한 대화’
익명인 아바타로 대화하는 것 역시 Slowly의 매력이다. 귀여운 그림으로 나를 표현하고, 간단한 자기소개와 관심사를 등록하면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 얼굴을 볼 수 없기에 대화할 때 상대방의 자기소개와 관심사를 더욱 꼼꼼하게 읽고, 깊게 고민한다.
익명이라고 하면 불건전한 목적으로 이용하는 사람이 있을까 봐 걱정도 된다. 실제로 이전에 사용하던 유명 펜팔 앱의 경우 이성을 찾거나 이상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회원들이 많아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Slowly에서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 일단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오래 걸리기도 하고 관심사를 기반으로 대화가 진행되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진지한 마음가짐을 갖게 된다. 그럼에도 물론 이상한 사람은 있다. 그런 사람을 발견했을 때는 가차 없이 신고 버튼을 누르자.
‘기차에서 만난 이방인 현상(The stranger on a train phenomenon)’은 낯선 사람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쉽게 털어놓게 된다는 심리학 용어이다. 기차에서의 대화가 아닌 문자 메시지이지만 Slowly를 통해 만난 지구촌 친구에게 시시콜콜한 고민을 털어놓고 일상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도 모르게 위로받게 될 것이다.
공장 자동화 분야 엔지니어로 일하는 인도네시아의 A군은 코로나19 때문에 생산량이 반 토막으로 줄어 고민이라고 했다. 미국에 사는 일본인 B양은 나에게 최근 한국 드라마를 추천해달라고 했다. 나 역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터키의 C양에게 (지금껏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요즘 관심 가는 아이돌 음악에 관해 이야기했다. 이런 게 바로 진짜 펜팔의 매력 아닐까?
‘우표 수집으로 편지 감성 더하기’
다양한 나라의 사람과 대화할수록 쌓여가는 우표 역시 모으는 재미가 있다. 나라마다 명소를 이미지화한 우표가 기본 제공되며, 메시지를 보낼 때 우표를 함께 첨부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경복궁과 N서울타워가 제공된다.
터키에 사는 친구와 대화하며 언젠가 가보고 싶었던 카파도키아 풍경의 우표를 받아 매우 기뻤다. 이외에도 여러 국가의 친구를 만드는 등 다양한 도전과제를 수행할 때마다 보상으로 우표를 받기에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하게 된다.
‘느린 감성으로 위 아 더 월드’
Slowly의 목표는 간단하다. 전 세계 사람들과 친구가 되자. 코로나19 이후로 해외여행이 어려울 것이다, 국경을 닫아야 한다는 등 암울한 전망만 쏟아지는 요즘, Slowly는 “몸은 멀리, 마음은 가까이”를 실천하는 매우 좋은 대안이다. 특유의 SLOW함 역시 처음에는 불편할지 몰라도 우리 안에 잠들어 있던 아날로그 감성을 깨워줄 것이다.
느림의 미학을 느낄 수 있으며, 이름 모를 낯선 사람으로부터 위로받을 수 있는 Slowly. 숨 가쁜 일상에서 지친 당신에게 자그마한 탈출구가 될 것이다. 이제 지구촌 친구들에게 밀린 답장을 하러 가야겠다.
최지원 동아닷컴 인턴 기자 dla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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