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STREET] 여행도 취소되고, 일에도 차질이 생기고… 코로나19때문에 상반기가 허무하게 지나갔다는 한탄이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시간을 환불 받을 수 있다면 올해 상반기를 환불 받고 싶다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몇 달, 몇 년 뒤 계획을 미리 짜 놓고 움직여야 하는 공연·전시 분야는 더더욱 타격이 컸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휴관이 길어지면서 오랜 기간 준비한 작품과 전시를 선보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생활 방역이 정착되면서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다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경복궁 바로 옆에서 관람객들을 맞이하던 국립고궁박물관도 오랜 휴관을 끝내고 7월 22일부터 사전예약관람 방식으로 재개관했습니다.
관람객을 만날 수 없었던 시간 동안 박물관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었을까요. 문화재청 산하 국립고궁박물관 곽희원·김효윤 학예연구사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사의 ‘꽉 찬 하루’’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곽희원 학예연구사(이하 곽) “국립고궁박물관 전시홍보과 학예연구사 곽희원입니다. 상설 전시와 특별전시를 기획·운영하고 있습니다.”
김효윤 학예연구사 (이하 김) “국립고궁박물관 유물과학과에서 도자기, 유리, 옥석류 보존을 담당하는 학예연구사 김효윤입니다.”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어려움이 많으시겠어요.
김 “저희는 원래 실험실에서 마스크를 써야 했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는 크게 불편하지 않습니다. 전시는 잠깐 닫았지만 준비는 계속 되고 있고 소장품 보존도 계속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보존 쪽은 크게 달라진 점은 없고, 전시홍보과에 평소보다 더 많이 협조를 해 드려야 한다는 점 정도만 달라졌습니다.”
곽 “전시홍보과는 코로나로 인해서 가장 많은 피해를 보는 과인 것 같아요. 제가 준비하는 특별전은 관람객들이 직접 오셔서 체험하는 영상이나 효과들을 염두에 두고 기획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다 보니 그런 부분들을 온라인으로 서비스해야 합니다. 언택트 콘텐츠를 많이 생산해야 해서 일이 두 배, 세 배 더 많아진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게라도 국민들에게 전시를 알리고 우리 문화재를 홍보할 수 있다면 뿌듯할 것 같습니다.”
‘“보이는 것과는 좀 다른 직업입니다”’
곽 “박물관에서 일한다고 하면 우아하게, 편하게 일할 거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편한 옷 입고 일하고 힘을 써야 할 때도 있습니다. 작업복 입고 하루 종일 유물을 날라야 하는 날도 있고요.”
김 “학예연구사는 전시 기획도 하지만 조사연구, 유물관리, 보존 등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작업들도 합니다. 저는 도자기, 유리, 옥석류 보존을 담당하고 있어요.”
국립고궁박물관은 조선왕실 문화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특별한 박물관입니다. 물 위로 보이는 부분도 충분히 크지만 물 밑에는 더 거대한 뿌리가 숨겨져 있는 빙산처럼, 고궁박물관도 관람객에게 개방되지 않은 곳에 연구실, 사무실, 유물 수장고 등 훨씬 더 큰 공간이 있습니다. 멋진 전시를 선보이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이들이 일하고 있는 셈입니다.
“관람객에게 어떤 유물을 선보이려면 저희 학예연구사들이 쌓아 올린 연구성과가 많아야 합니다. 보존처리 쪽에서 나오는 유물 조사라든지, 연원이나 제작 배경을 찾아가려면 충분한 조사가 필요한데요. 그 과정에서 몰랐던 해외 문화재를 찾거나 반출됐던 문화재를 알게 되기도 합니다. 이럴 때 굉장히 짜릿하죠.” (곽)
우리 문화재가 해외에 있다는 것이 확인되면 경매, 환수 등을 거쳐 다시 가져올 수 있습니다. 반출된 문화재도 있지만 선물이나 거래 등 정당한 형태로 외국에 나가 있는 문화재들도 많이 존재합니다.
문화재청은 문화재를 다루는 전문기관이기에 발견부터 후속조치까지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습니다. 곽 연구사는 “연구 도중 찾아낸 해외소재 문화재를 다시 가져왔을 때의 뿌듯함도 문화재청 소속 학예연구사로서의 보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던 것들을 발견하는 기쁨이 크시겠어요.
김 “네. 2018년부터 현재까지 어보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연구하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데요. 어보란 왕이나 왕비, 세자 세자빈 등이 책봉을 받았을 때나 사후에 덕을 기릴 때 의례용으로 만든 도장이에요. 왕권의 신성성과 전통을 상징하는 의미 있는 유물이지요. 우리나라에 있는 어보 331점 중 국립고궁박물관이 322점을 소장하고 있어요.
어보에 관한 인문학적 연구는 많이 진행됐지만 과학적 성분이나 재질 연구는 부족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저를 포함해 총 6명의 전문가들이 어보를 부분별로 분석하고 있어요. 지금은 분석결과를 토대로 보고서를 만드는 중이고요.
발표하기 전에 약간 스포일러를 하자면, 저는 ‘옥보’를 담당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옥보라고 해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옥’으로 만들어진 도장이 아니에요. 아무래도 과거에는 옥이라는 개념이 지금과 똑같지 않고 ‘옥색 돌’이 아니었을까 추측이 됩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전시가 있으신가요.
곽 “저는 3년차 학예연구사라서 그동안은 많이 배우는 과정이었어요. 7월에 열리는 특별전을 드디어 제 이름을 걸고 오픈하게 되었는데요. 제가 유물과학과 연구원으로 근무할 때부터 이 유물을 조사하고 발굴해내는 일을 맡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 전시홍보과 연구사가 돼서 전시를 공개하는 역할까지 맡게 되었죠. 전시를 준비하는 도중에 아까 말씀드렸던, 해외에 있는 문화재도 찾게 됐습니다. 그런 여러가지 성과도 포함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가 될 것 같습니다.”
곽 연구사가 참여한 특별전은 조선왕실에서 사용했던 서양식 도자기를 주제로 한 전시로, 7월 29일부터 10월 4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열립니다.
개항 이후 다른 나라들과 소통하면서 근대국가로 발전하고자 한 조선 왕실의 노력은 왕실에서 사용했던 서양식 도자기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고궁박물관이 3년에 걸쳐 준비한 이번 특별전은 우리나라 근대 도자의 보물고라고 알려졌던 고궁박물관의 소장품들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보람이 많은 직업인 것 같습니다. 국립박물관 학예연구사가 되려면 어떤 자격을 갖춰야 하나요?
곽 “국립 기관은 문화재청과 국립중앙박물관 두 개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요. 현재 기준으로는 관련 전공 석사학위를 가지고 있거나 관련 분야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사람에 한해서 지원자격이 주어져 있습니다. 지원한 다음에는 서술 시험을 보고 합격이 결정되는데요. 경쟁률은 상당히 높습니다.”
학예연구사라는 직업의 매력을 꼽자면?
곽 “저는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한국도자사를 전공 했거든요. 그 전공지식을 가지고 이번에 도자기 특별전을 준비했습니다. 바로 이런 점이 학예연구사라는 직업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내가 공부했던 전공지식을 온 국민에게 알릴 수 있다는 점이요. 그런 부분에서 소명 의식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문화재를 잘 보존하고 알려서 후대에 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김 “제가 분석하고 조사했던 결과물들이 책자로 나왔을 때, 그리고 상태가 아주 좋지 않았던 유물들이 제 손을 거쳐서 상태가 좋아진 다음 전시되는 것을 볼 때 굉장히 뿌듯함을 느낍니다.
한 가지 힘든 점이라면 앉아서 오래 일해야 하다 보니 직업병이 생겼어요. 아직 치료받고 있는데… 일자목이 됐거든요. 곽희원 선생님도 조금 더 일하다 보면 일자목이 될 텐데(웃음). 그래도 짬짬이 기지개도 켜고 건강 관리하면서 일하다 보면 뿌듯함을 느낄 일들이 더 많이 생기지 않을까 합니다.”
박물관을 움직이는 사람들, 학예연구사. 소장품을 관리하고 연구하며 관람객들이 즐겁게 즐길 수 있는 전시를 만드는 모든 과정에 학예연구사의 손길이 닿아 있는 셈입니다. 김 연구사는 “전시를 볼 때 ‘이 유물은 어디가 보존처리가 되었구나, 어떤 재료로 복원했을까’ 확인하면서 관람하면 더 재미있게 보실 수 있다”는 팁을 남겼습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온라인 사전예약제(시간당 입장 인원 제한)로 운영하고 있으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도 많은 이들이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무료 관람 시행 중입니다. 주말엔 마스크 야무지게 끼고 시원한 고궁박물관 구경 가 보는 건 어떨까요.
에디터 LEE celset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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