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STREET] 한국은 한 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가 다섯 편이 쏟아질 정도로 영화 강국이지만 올해는 달랐다. 코로나 여파가 영화계를 덮치며 관객들은 발길을 끊었고 예정돼있던 영화들은 줄줄이 개봉이 밀렸다.
영화관에 가본 지가 언제인지도 기억이 안날 즈음, 드디어 새로운 영화들이 개봉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 시국에 가도 괜찮을까 하면서도 안전 수칙만 지키면 된다는 생각에 마스크를 쓰고 극장에 방문했다.
최근 가장 핫한 영화를 꼽으라면 단연 ‘반도’다. 1100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대흥행한 ‘부산행’의 후속작으로 배우 강동원이 출연한다는 소식만으로 들썩였다. ‘부산행’을 재밌게 보기도 했고, 예고편이 상당히 잘 만들어져서 큰 기대감을 갖고 ‘반도’를 관람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대 이하’였다. 넘치는 스릴과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을 기대하고 봤지만 중간중간 김새게 하는 요소들이 집중을 깨트렸다. ‘반도’를 보니 한 달 전 개봉한 또 다른 K-좀비 영화 ‘살아있다’가 생각났다. 역시 ‘기대 이하’의 평가를 받았던 영화다. 두 영화는 왜 ‘기대 이하’ 였을까.
‘반도) 화려한 액션도 잊게 하는 K-신파
’
[전대미문의 재난 그 후 4년
폐허의 땅으로 다시 들어간다!]
부산행 그 후 4년 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재난에서 가까스로 탈출해 홍콩에서 난민처럼 지내던 정석(강동원)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받는다. 한국으로 가서 현금이 들어있는 트럭을 가지고 오면 절반의 돈을 준다는 것.
제한 시간 내에 트럭을 확보해 반도를 빠져나가려던 정석 일행은 631부대와 마주하며 트럭을 빼앗긴다. 절체절명의 순간, 민정(이정현) 가족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한 정석은 이들과 함께 반도를 탈출하기로 하는데…
‘반도’는 분명 좀비 영화지만 부산행 보다 좀비의 임팩트는 약했다. 오히려 좀비는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도구로 활용될 뿐, 지옥 속에서 본능만 남은 631부대가 가장 공포스러웠다. 좀비와 사람을 한 데 몰아넣고 쫓기는 모습을 ‘숨바꼭질’이라 하며 놀이 삼을 정도로 인간성을 상실한 631부대. 그들의 행적은 극중 긴장감을 고조시키기에 충분했다. 절망 속에서 인간이 얼마만큼 잔인해질 수 있는지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소름 끼쳤다.
그런데 스토리의 핵심인 631부대와 민정의 가족에 대한 설명이 너무 부족하다. 민정의 가족이 631부대에서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노인과 여자아이 2명, 엄마로 구성된 가족이 대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도 없다. 서 대위와 민정이 마주쳤을 때 악연을 묘사하는 분위기가 조성됐지만 이 또한 설명은 없다. 설명이 부족해서인지 캐릭터의 매력도 느낄 수 없었다. 서사가 없는 캐릭터는 평면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장 뇌리에 남는 캐릭터는 희망이 없는 서울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술만 마시며 하루를 버티는 서 대위 역의 구교환이다. 절망적인 상황에 심신이 나약해져 유약해보이면서도 결정적으로 핀이 나가면 가장 무서울 것만 같은 캐릭터. 입체적인 성격이 악역인데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주인공 일행의 희망을 절망으로 만들었지만 결국 초라하게 퇴장하는 것까지 악역의 역할도 충실히 해냈다. 그러나 서 대위 역시 어떠한 설명도 없었기 때문에 더 극대화될 수 있는 매력이 줄어든 느낌이었다.
‘반도’에서 가장 볼만했던 것은 화려한 카 체이싱 장면. 폐허가 된 도시를 달리며 좀비들에 대적하는 장면은 쾌감을 줬다. 위기의 순간에서 운전 기술을 사용해 빠져나가는 주인공들을 보다 보면 손에 땀을 쥐게 된다. ‘카트라이더’를 영화로 보는 것 같다는 후기가 이해 가는 순간이었다. 이 장면은 4D로 봤다면 더욱 몰입감 넘치게 봤을 것 같다.
스토리가 부족하긴 했지만 화려한 액션과 카 체이싱 장면이 나오니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영화가 끝으로 치닫으면서 이 호평을 깨부수는 신파가 등장한다. 한국 영화의 특성상, 신파가 당연히 나올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조금 심했다. 희망적으로 마무리하려는 건 알겠지만 글쎄, 이렇게 질질 끌 필요가 있을까? 급박한 상황에서 쏟아내는 감정들이 애달프기보단 어색하게 느껴졌다. 이제 적당히 끌었다 하면 또 나오고 또 나오고. 눈물이 아니라 하품이 나왔다.
‘살아있다) 개연성은 어디 갔죠? 불친절한 영화’
[꼭 살아남아야 한다!]
원인불명의 증세로 좀비로 변해버린 사람들. 영문 모른 채 잠에서 깬 준우(유아인)는 아무도 없는 집에 고립됐다. 데이터, 문자 등 모든 것이 끊긴 상황에서 최소한의 식량으로 버티게 된다.
연락이 두절됐던 가족들이 보낸 메시지를 받은 준우. 좀비로 변하는 음성이 담긴 메시지에 절망한 준우는 자살을 결심한다. 하지만 그 순간 건너편 아파트에서 누군가 신호를 보낸다. 또 다른 생존자 유빈(박신혜)다. 준우는 유빈과 함께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찾아 나선다.
‘살아있다’는 전체적으로 불친절한 영화다. 일단 처음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게 되는 경위부터 배경 설명이 부족하다. 하지만 뭐, 코로나19도 원인을 아직 모르는데 그럴 수 있지. 빠른 전개를 위한 생략으로 이해하고 넘어갔다. 그러나 그 뒤에도 불친절하고 개연성 없는 전개가 계속됐다.
이웃이 좀비가 되고, 문을 부수려 하는 등 초반 전개는 흥미진진했다. 데이터, 와이파이, 문자 등 모든 통신이 끊긴 고립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준우의 모습은 현실에서 재난이 일어난다면 충분히 일어날 법해 공감 갔다. 옆집 이웃이 좀비가 돼 공격하려는 장면은 손에 땀을 쥐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영화가 전개될수록 튀어나오는 어설픈 설정들이 몰입을 방해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이해가 안 가는 건 유빈 역(박신혜)이다. 요일 별로 물을 나눠 마실 정도로 철저하게 생존을 위해 살던 사람이 갑자기 화분에 물은 왜 주는 것인가. ‘식물도 생명입니다’ 캠페인도 아니고 말이다. 유빈이 뛰어드는 좀비들을 헤치고 나아가는 장면에서는 손에 땀을 쥐어야 하는데 웃음만 나왔다. 일반인이 저렇게 좀비들과 싸울 수 있다고? 서사 없는 캐릭터가 주인공 버프만으로 싸우는 장면은 도무지 몰입할 수 없었다.
구출되는 장면에서 헬기가 아래서 위로 등장하는 것 역시 너무 어설펐다. 헬기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을까. 극적인 연출을 위해서였다고는 하지만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소리에 예민한 좀비들은 특성이 갑자기 바뀌기라도 했는지 헬기 소리에 민감하지도 않고 주인공이 구출되기를 바라는지 달려들지도 않는다.
‘기대만큼 아쉬웠던 K-좀비 영화들
’
‘기대이하’ 평을 남긴 두 영화. K 좀비라는 공통점 외에는 모든 것이 달랐다. ‘살아있다’가 복도식 아파트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이끌어냈다면, ‘반도’는 폐허가 된 서울을 무대로 넓게 사용했다.
공포의 대상도 다르다. ‘살아있다’에서 좀비가 확실한 공포이며 도망쳐야 하는 대상이었다면 ‘반도’에서 ‘좀비’는 더 이상 공포가 아니라 맞서 싸울 대상이며 오히려 공포의 대상은 인간성을 상실한 인간이었다.
아,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영화가 남긴 교훈이 크게 와닿지 않았다는 것이다. ‘살아있다’가 나에게 남긴 교훈은 ‘유선 이어폰을 집에 항상 구비하자’ 정도다. 통신망이 망가졌을 때 유일하게 재난방송을 들을 수 있는 라디오의 안테나가 되는 것이 유선 이어폰이라니, 좋은 정보다.
‘반도’를 보고 남은 것은 국제화 시대엔 영어가 필수라는 것. 구조 신호가 왔는데 영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다 소용없는 것이 아닌가. 나의 위치가 어딘지 말할 수 있는 정도로는 영어 실력을 길러야겠다는 교훈이다.
K-좀비 영화가 시장에 계속 등장하는 것은 반갑다. 그러나 두 영화를 보고 난 감상은 ‘아쉬움’이 컸다. 그래도 좀비 영화인만큼 긴장감도 넘치고 화려한 액션들도 있으니 킬링타임용으로 추천한다.
에디터 LYNN sinnala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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