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STREET] 몇 년 전 나 자신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친구를 만났다. 심심한데 뭘 하고 놀아야 좋을지 감이 오지 않을 때마다 재미있는 볼거리를 추천해 주던 바로 그 친구, 유튜브. 교제가 길어질수록 그는 더더욱 정밀하게 내 취향을 파악했고 때로는 나조차 미처 깨닫지 못 했던 내 취향을 알아서 발굴해 주기까지 했다. 튜브에 몸을 끼우듯 편안하게 드러누워 화면에 눈을 고정한 채 알고리즘 물결에 몸을 맡기기만 하면 그걸로 내 할 일은 끝이었다.
매일 밤 눈이 퀭해지도록 유 씨가 보여주는 세상에 빠져들었다. 분명 자정이 넘도록 수많은 영상을 봤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내가 어젯밤에 뭘 봤는지 가물가물했다. 스트레스를 씻어 버리려다 꼭 필요한 무언가까지 같이 씻겨 내려간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제 잘 시간이야
그러던 때 팀장 YOON이 보내준 ‘BGA’라는 사이트 링크를 보고 눈이 반짝 뜨였다. BGA는 백그라운드 아트웍스 (Background Artworks)의 준말로, 하루에 하나씩 미술품을 구독하는 서비스다. 물론 그림이나 조각 실물을 보내주는 것은 아니고 고화질로 찍은 작품 사진과 함께 작품에 어울리는 짤막한 에세이를 덧붙여 앱으로 배달해 준다.
한 달 구독료 1만 2000원을 내고 ‘데일리 플랜’을 신청하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밤 11시에 작품 한 점과 그에 딸린 에세이가 배달 온다.감상할 수 있는 작품은 오래된 것부터 새 것, 먼 나라 것부터 우리나라 것까지 다양하다. 매달 4편씩 온라인 전시(컴필레이션)도 열리는데, 데일리 플랜을 구독중이라면 이 전시들도 구경할 수 있다.
솔직히 ‘진짜 전시도 아니고 폰으로 사진만 보는 건데 매달 1만 2000원?’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커피 3잔 값이지만 이럴 때는 옹졸해진다) 마침 가입 당시 프로모션 기간이었는지 코드(BGA)를 입력하면 처음 한 달 간 무료로 맛보기 구독이 가능했다(10월 27일 현재도 프로모션 코드 적용이 된다). 그렇게 냉큼 구독을 시작했고, 늦은 밤 11시에 푸시 알람과 함께 찾아오는 미술품 친구들은 ‘이제 유튜브 끄고 잘 시간이야’라는 신호가 되어 주었다.
고상하지만 말을 좀 어렵게 하는 친구
미술품 구독 앱 답게 세련된 레이아웃과 깔끔한 폰트, 큼지막하게 확대해도 화질저하 없이 디테일까지 잘 보이는 고화질 사진까지 참 마음에 들었다. 고전과 현대미술을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충실하게 문화생활을 하고 있다는 만족감까지 준다. 작품에 감상평을 남겨 나만의 감상 노트를 만드는 기능도 지원한다. 감상노트를 꾸준히 쓰면 BGA 공식 에세이 필자로 지원할 수도 있다. 필자로 승인되면 수익 정산까지 받을 수 있다고.
이만하면 정말 잘 사귄 친구인 셈인데, 아쉬운 점이 하나 있었으니… BGA친구는 말을 조금 어렵게 한다. 작품 사진과 함께 배달되는 에세이가 공감보다는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날이 많았다는 의미다. 비전공자 입장에서는 ‘이게 무슨 소리지’ 싶을 정도로 현학적이고 추상적인 어휘들이 많이 등장했다. 현대미술 작품이 소개되는 날에는 더더욱 그랬다.
영화평론가들의 글에서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처럼 미술작품 평론만의 문법이 있는 걸까. 사회상이나 화가의 생애 등 인문학적 배경지식 전달에 초점을 둔 해설문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BGA 에세이 스타일이 더 낯설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이 ‘스타일’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에세이에서 감동을 얻을 수 있는지 없는지가 결정될 것 같다.
한줄평 / 하루를 세련되게 마무리하기에 적합한 미술구독 서비스
이런 분들에게 추천 / 현대미술 애호가, 감성 에세이를 좋아하는 사람, 다양한 미술작품을 접하고 싶은 사람, 매일 밤 잠들기 전 5분간의 여유를 갖고 싶은 사람
이런 분들은 비추천 / 구체적이고 간결한 글을 좋아하는 사람, 추상화나 현대미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
에디터 LEE celset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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