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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어울리는 클래식 추천 1편 (주: 비발디 사계 없음)

팩토리 1 기자 조회수  

[29STREET]

세상 많은 것이 그렇듯이 봄도 갑자기 온다. 입춘이 지나자마자 공기가 달라지는 것이 피부로 느껴지고, 겨우내 듣던 플레이리스트에도 변화를 줄 때가 왔다. 여름에는 시티팝, 가을에는 재즈, 겨울에는 벽난로 ASMR을 가장 즐겨 듣는 에디터 LEE의 봄 플레이리스트는 클래식음악.

클래식이야 사시사철 들어도 언제나 좋지만, 클래식 장르 특유의 섬세하고 우아한 이미지는 이제 막 피어나는 봄에 더없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편. 수많은 클래식 명곡들 중에서도 봄에 어울리는 곡들을 뽑아봤다. 비발디 사계 중 ‘봄’은 너무나도 유명해서 식상할까 봐 뺐다(봄 사랑 벚꽃 말고, 비발디 사계 말고~).

‘차이코프스키 ‘현을 위한 세레나데’’

차이코프스키 ‘현을 위한 세레나데’

P. I. Tchaikovsky, Serenade for Strings in C Major, Op.48

한국 사람 입맛에 이탈리아 음식이 잘 맞듯이 귀에는 러시아 음악이 찰떡같이 감긴다는 게 평소 에디터 LEE의 지론이다. 러시아 음악은 웅장하면서도 어딘지 모를 비감(悲感)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한’과 ‘흥’이 같이 들어있는 우리 음악과 은근히 통하는 맛이 있다. 감성적이고 애수가 깃들어 있지만 결코 우울하지는 않다.

러시아 민요나 전통 춤곡에서 영감을 많이 받은 차이코프스키 음악도 그렇다. ‘현을 위한 세레나데’는 차이코프스키가 작곡한 다른 곡들보다 훨씬 더 화려하고 아기자기한 맛이 있지만, 마냥 밝지만은 않고 묵직한 품격도 같이 느껴진다. 화려한 봄의 문을 우아하게 열어젖히기에 딱 어울리는 곡이다.

같은 노래를 불러도 가수마다 표현법이 완전히 다른 것처럼 클래식도 지휘자·연주자에 따라 다른 해석을 즐기는 맛이 있다. 에디터 LEE가 특히 추천하는 버전은 일본의 명지휘자 오자와 세이지가 1992년 지휘한 버전. 오자와 세이지의 지휘는 화려하고 기운차면서도 빈틈없는 섬세함을 보여준다. 사방에 양기가 넘치고 만물이 생동하는 봄에 참 잘 어울린다. 듣기만 해도 코어근육이 강해지는 느낌이랄까. 작업용 BGM으로 틀어놓으려고 켰다가 10분(1악장 길이) 동안 아무것도 못 하고 음악에 빨려 들어갈 수도 있으니 주의!

‘쇼팽 ‘화려한 대왈츠’

쇼팽 ‘화려한 대왈츠’

Chopin, Waltzes, Op. 34 ‘Grande Valse brillante’

둥. 두두둥. 두두둥두두둥두두둥. 인상적인 첫 소절 부분 덕에 한 번 들으면 잊기 힘든 곡이다. 듣기에는 참 좋은데 이 곡에 맞춰 왈츠 춤을 추려면 조금 난해할 것 같기도 하다. 쇼팽이 이 곡을 작곡했던 1830년대에는 요한 스트라우스가 ‘왈츠의 황제’로 불리며 사교계 음악을 주름잡던 시기였는데, 그와 음악적 스타일이 달랐던 쇼팽은 마냥 밝기보다는 멜랑콜리함과 서정성을 강조한 곡을 쓰고자 했다고 전해진다. ‘화려한 대왈츠’는 대체로 살짝 우울한 감성을 주는 쇼팽 왈츠들 중에서 가장 밝고 화려한 편.

연주는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의 버전을 추천하고 싶다. 유튜브에 ‘화려한 대왈츠’를 치면 아마 랑랑 연주 버전이 많이 나올 텐데, 랑랑도 물론 세계 정상급 연주자이지만 자신만의 흥과 개성이 강해서(에디터 LEE는 좋아하는 편) 듣는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조성진의 라이벌로도 꼽히는 다닐 트리포노프는 2010년 쇼팽 콩쿨에서 ‘화려한 대왈츠’를 연주했다. 콩쿨 참가곡인만큼 정석적인 흐름을 보여주면서도 연주자가 진심으로 즐기면서 피아노를 치고 있다는 것이 확실히 느껴져서 듣기에 참 편안하다.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봄’’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봄’

Beethoven, Violin Sonata No. 5 in F Major, Op. 24 ‘Spring’

베토벤 하면 박력 있고 진지한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운명교향곡이나 월광소나타에서 느껴지는 비장함도 그렇고, 유명한 베토벤 초상화만 해도 그렇다. 야성적인 헤어스타일에 빳빳하게 세운 셔츠 칼라, 정열적인 빨간 스카프까지 더해져서 카리스마 200% 작곡가라는 인상을 준다. 왠지 한 마디 잘못 걸었다가 된통 혼날 것 같은, 괴팍하고 무서운 삼촌 이미지라고나 할까.

놀랍게도 진짜였다. 40세가 넘어가면서 베토벤은 점점 외모를 가꾸지 않게 됐고, 창작하다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길거리에서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관상이 참 무섭다). 청력이 갈수록 약해지는 상황에서 곡도 쓰고 귀족들 상대도 해야 했으니 웬만큼 보살이 아닌 이상 성격이 나빠질 수밖에 없었을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일명 ‘봄’은 까칠한 베토벤 삼촌의 보들보들한 내면을 보여주듯 상큼하고 시원시원한 곡이다. 베토벤 본인이 ‘봄’이라는 부제를 붙인 것은 아니고 후대 사람들이 지어 준 별명이다. 들어보면 참 잘 어울리는 별명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성숙하고 여유로우면서도 새 봄의 기대감이 한껏 느껴지는 정경화의 연주로 들어보자.

에디터 LEE celset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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