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박설이 기자]1990년대 홍콩 영화 전성기, 이 시기를 이끈 ‘4대 천왕’이라 불린 장학우, 유덕화, 여명, 곽부성은 모두 ‘겸업’ 스타였다. 가수로서 콘서트에 서면 매진을 기록했고, 영화를 찍으면 티켓파워를 과시했다.
대한민국에도 홍콩 ‘4대천왕’ 형태의 스타들이 큰 사랑 받던 때가 있다. 김민종, 임창정 등 노래와 연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이들, 그리고 일본에서 한류를 이끌었던 고(故) 박용하, 장근석 같은 스타가 일본에서 앨범을 내고 투어를 돌며 인기 가수로 활동했다. 수준급 노래 실력과 끼로 가수로의 승승장구하며 톱의 자리를 지켰던 이른바 ‘만능 엔터테이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장나라가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2023년 현재를 살아가는 가수, 특히 아이돌에게는 다양한 재능이 요구된다. 춤과 노래는 기본이고, 외국어에 연기 공부까지 필수다. 애초 팀을 꾸릴 때 향후 연기자로 활동할 비주얼 멤버를 배치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아이돌의 연기 도전은 늘 녹록지 않다. 걸핏하면 연기력 논란에 휩싸이고, 비슷한 경력의 다른 연기자와 연기력이 비슷해도 ‘아이돌 출신’이기에 잣대는 더 가혹하다.
이처럼 가수가 배우로 가기 위한 장벽을 넘기가 어려운 지금, 아이유와 같은 입지의 연예인은 유일무이하다. 신보를 내면 늘 차트 1위를 찍고, 드라마에 출연하면 시청률은 보장된다. 영화 데뷔작 ‘브로커’로는 칸 까지 갔다. 10대 때부터 차근차근 쌓아온 방송 경력으로 얻은 예능감을 바탕으로 자신의 이름을 건 음악 토크쇼 ‘아이유의 팔레트’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연기하는 아이유에게 고민은 있었다. 데뷔 때부터 줄곧 아이유로 활동해 왔지만 배우로서의 필모가 쌓일수록 ‘분리’가 필요하다고 느꼈을 터. 아이유는 배우보다는 대중에의 노출이 잦은 가수 아이유와 연기 하는 이지은으로 자신을 분리했다. 드라마 ‘프로듀사’를 끝으로 ‘배우 아이유’는 없어졌다.
그렇게 ‘배우 이지은’으로 ‘보보경심 려’ ‘나의 아저씨’ ‘호텔 델루나’ ‘페르소나’ ‘브로커’ 등 작품에 출연한 배우 이지은, 그런데 곧 개봉할 영화 ‘드림’의 제작보고회가 열린 30일 그는 공식적으로 ‘배우 이지은’의 끝을 선언했다.
아이유는 이날 취재진에게 관련 질문을 받자 “혼동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았다. 3월에 음반 낼 때는 아이유, 5월에 작품할 때는 이지은이면 기자들도 헷갈리고 팬들도 헷갈릴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다 아이유라고 부르시더라고요”라며 웃은 아이유는 “어차피 저는 한 명이라 아이유로 하기로 했다”라고 선언했다. 실제 이날 제작보고회에서도 진행자 박경림을 비롯해 모두가 그를 ‘아이유 씨’라고 불렀다.
연예인에게 이름의 가치는 중요하다. 하지만 ‘가치’라고만 느꼈던 가수 아이유의 이미지가 배우 활동에 제약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그리고 아이유는 본명으로 배우 활동을 하며 연기자로서의 가치를 쌓아갔다. 본명을 내세운 것은 어쩌면 배우로서 각 캐릭터에 인간 이지은의 내면을 많게든 적게든 투영해 진정성 있게 연기에 임하겠다는 자세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렇게 아이유는 이지은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나의 아저씨’ ‘호텔 델루나’ ‘브로커’라는 굵직한 인생작을 내놓으며 궤도에 안착했다.
더이상 ‘아이유’라는 이름이 배우 활동에 방해가 되지는 않게 된 지금, ‘드림’을 기점으로 아이유는 이제 그냥 아이유다. 마치 마돈나가 어디서든 마돈나로, 레이디 가가가 어디서든 레이디 가가로 불리는 것처럼.
박설이 기자 manse@tvreport.co.kr/사진=TV리포트 DB,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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