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김수정 기자] 정상에서 대중 곁으로, 밑바닥에서 정상으로 오른 사람. 이경규와 오달수 이야기다.
1981년 MBC 제1회 개그콘테스트로 연예계에 데뷔한 이경규는 지난 36년간 예능 대부라 불리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떨쳐왔다. 그는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전성기를 이끈 주역으로 ‘몰래 카메라’, ‘양심 냉장고’, ‘이경규가 간다’와 같은 프로그램으로 매번 새로운 시도를 주저하지 않았다.
늘 정상의 자리에서 방송가를 휘어잡던 그에게도 슬럼프는 있었다. 그것도 지독한 슬럼프였다. ‘무한도전’, ‘1박2일’과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가 예능가 주류로 자리 잡으며 호통 진행과 새로운 포맷이 주특기였던 그가 설자리가 조금씩 좁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짧은 녹화 시간 안에 최대한의 방송 분량을 뽑아내는 그의 방송 스타일은 리얼 버라이어티와는 상극이나 다름없었다. 비슷한 시기 이경규는 공황장애까지 겪어야 했다.
하지만 괜히 예능 대부가 아니었다. 이경규는 자신의 주파수를 톱의 자리에서 대중으로 옮기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영리한 전략이었다. 대중 곁으로 바짝 다가간 그는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기상 천외한 ‘눕방'(누워서 하는 방송), ‘낚방'(낚시방송)을 탄생시키며 시청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가 MBC ‘무한도전-예능총회’ 특집에서 농담 반 진담 반 던진 “눕방”이 현실화되는 광경은 그 자체로 예능의 신기원이었다.
오달수의 행보는 이경규와 닮은 듯 조금은 다르다. 1990년 극단 ‘연희단거리패’에 입단하며 연기 생활을 시작한 오달수는 십수 년간 대학로에서 연기 내공을 쌓아왔다. 2002년에는 영화 ‘해적 디스코왕 되다’를 통해 활동 범위를 대학로에서 충무로까지 확장시켰다.
‘친절한 금자씨’, ‘달콤한 인생’, ‘올드보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괴물’, ‘구타유발자들’, ‘박쥐’ 등 그가 출연한 영화는 총 60편. 이중 무려 7편이 천만 영화다. ‘7번방의 선물’을 기점으로 연기력에 대중성까지 갖추게 된 오달수는 ‘변호인’, ‘국제시장’, ‘암살’, ‘베테랑’까지 연이어 흥행시키며 국내 배우로는 최초로 누적 관객 수 1억 명 돌파라는 대기록까지 세웠다.
오달수는 “어떤 장르, 어떤 캐릭터든 늘 나만의 향기를 드러내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밝혀왔다. 그의 바람대로 희극이든 코믹이든 사극이든 스릴러든, 오달수의 연기에는 늘 그만의 향기가 묻어났다. 첫 단독주연을 맡은 영화 ‘대배우’에서도 마찬가지다.
이경규와 오달수 모두 자신의 위치에 스스로 도취돼 머물러있는 고인 물이 아니다. 30여 년간 살아온 시간도, 그들이 누렸던 유명세는 조금씩 다르지만 자신의 분야를 그 누구보다 사랑했다는 점은 제법 닮았다. 오래도록 사랑받고 버티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김수정 기자 swandive@tvreport.co.kr 사진=TV리포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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