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김수정 기자] ‘아수라’, 제대로 미쳤다. 악(惡)으로 가득찬 사회에 살을 날렸다.
21일 오후 서울 성동구 행당동 CGV왕십리에서 열린 영화 ‘아수라'(김성수 감독, 사나이픽처스 제작) 언론시사회에는 김성수 감독과 배우 정우성 황정민 주지훈 곽도원 정만식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아수라’는 지옥 같은 세상에서 오직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나쁜 놈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불교의 오래된 6도 설화 중 하나인 ‘아수라도’는 전쟁이 끊이지 않는 혼란의 세계. 이 곳에서 머무는 귀신들의 왕을 아수라라고 부르며, 아수라들이 싸우는 전쟁터를 아수라장이라고 부른다. 제목에서 유추해볼 수 있듯 서로 물리고 물리는 인물의 관계가 132분 동안 살벌하게 펼쳐진다.
‘아수라’는 등장인물 전원이 악인(惡人)이다. 말기 암 환자인 아내의 병원비를 핑계로 돈 되는 건 뭐든 하는 부패한 형사(정우성), 선과 악 사이를 외줄타기 하는 형사(주지훈), 이권과 성공을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악덕 시장(황정민), 부패 형사의 약점을 쥔 독종 검사(곽도원), 악덕 시장의 하수인 노릇 하는 검찰수사관(정만식)까지. 독하고 세다.
김성수 감독은 “시시한 악당을 주인공으로 세우고 싶었다. 인생살이가 고단하고 힘겨운 악당을 내세워 절벽 끝까지 밀어붙이고 절벽 끝에 도달해 자기 주인을 물어뜯는 광경을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작업했다. 계속 밝으면 고개를 치켜드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그렇다 보니 일반적 액션영화에서의 선악구도, 정의가 이기는 이야기가 아닌 온전히 악인만 등장하는 작품이 나왔다. 정의는 발붙일 틈도 없고 폭력의 먹이사슬로 이뤄진 악인의 생태계를 그리게 됐다”라고 작품 의도를 설명했다.
김성수 감독은 무엇이든 꿈꿨던 청춘의 시기를 지나온 발악하는 중년의 삶을 악인의 세상으로 표현했다. 부패 형사 한도경으로 대표되는 힘없고 평범한 악인들은 더 거대한 악인에게 이용 당하고, 종국엔 고통의 아수라장으로 빨려들어간다. ‘아수라’가 그리는 세계는 이렇듯 어둡고 잔혹하다.
가상의 도시 안남시 위에 펼쳐진 지옥도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악(惡)을 보여주며 강렬한 영화적 체험을 선사한다. 배우도, 감독도, 스태프도 끝까지 갔다. 음습하고 서늘한 어둠의 기운이 도사리는 이 악의 왕국은 이모개 촬영감독과 장근영 미술감독, 허명행 무술감독에 의해 실감나고 근사하게 탄생했다. 정우성을 비롯, 대역과 CG없이 온몸으로 뛰어든 액션도 인물들의 절박함을 절절하게 전달했다. 액션, 연기, 미쟝센, 잔혹성 모두 근래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문 수준이다.
김성수 감독은 “기존 관습적인 액션장면에서 벗어나 각도 등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촬영했다. 폭력세계에 물든 한 사내가 폭력에 의해 괴멸하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일반적인 멋진 싸움으로 묘사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액션의 통쾌함보다 액션의 통렬함을 그리고 싶었다”라고 기존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액션 시퀀스 연출 의도에 대해 강조했다.
‘아수라’로 김성수 감독과 정우성, 황정민, 곽도원은 자신의 대표작을 갈아치우는 데 성공했다. ‘비트’, ‘태양은 없다’, ‘무사’ 이후 네 번째 조우한 김성수 감독과 정우성은 역시 액션 누아르 궁합이 좋다. 정우성의 멋스러운 얼굴을 가장 영화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감독이 바로 김성수 감독임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정우성은 ‘비트’의 오토바이 질주신을 능가하는 수많은 명장면, 명연기를 펼쳤다. 악덕 시장(황정민)과 독종 검사(곽도원) 사이를 오가며 겪는 딜레마와 스트레스를 선굵은 연기로 드러냈다. 정우성은 “폭력을 행하는 악인이 더 큰 폭력에 발악하는 스트레스를 몸짓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감독님께서도 시나리오에 그러한 감정을 짙게 깔아놨다. 그러한 감정은 트릭이 아닌 온전힌 현장의 몸짓으로 전해지길 바랐다. 덕분에 어쩔 수 없이 부상 위험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인물의 몸부림에 대한 욕심 때문에 작은 부상이 있긴 했지만 안전을 최우선으로 했다”라고 아날로그 액션 의도를 전했다.
얼핏 자신들의 전작들의 연장선에 있는 캐릭터를 짊어진 황정민과 곽도원은 디테일하게 계산된, 동시에 본능적인 감각으로 우려를 씻어낸다. ‘곡성’에 이어 또 한 번 서로에게 살을 날리는 두 사람의 투샷은 그 자체만으로도 섬뜩한 긴장감을 안긴다.
황정민은 “‘신세계’에서 보여준 악인과 비슷하면 어떻게 하나 고민이 분명 있었다. 인물에 집중하면 또 다른 연기가 나올 것이란 기대감이 스스로도 있었다. 고민했더니 조금씩 다른 연기와 표정이 나오더라. 곽도원 씨가 검사 역을 많이 해서 부담스러워했듯 나역시 마찬가지였다. 롤모델이 없다고 하는데 찾아보면 많이 있다”고 설명했다.
‘아수라’는 9월 28일 개봉한다.
김수정 기자 swandive@tvreport.co.kr 사진=김재창 기자 freddie@tv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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