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김지현 기자] “불륜으로 모든 것을 잃은 한 여배우의 이야기입니다”
한국 영화계가 경사를 맞았다. 배우 김민희가 제67회 베를린 영화제에서 홍상수 감독의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여우주연상을 품에 안은 것.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진짜 사랑을 찾으려는 모습이었던 것 같다”라는 의미심장한 수상 소감도 남겼다. 전도연에 이어 한국 여배우가 3대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건 힘들다고 점쳐진 시기었다. 어째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영화는 불륜설에 휩싸인 홍상수 감독과 김민희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다. 공식적으로 입장을 발표한 적은 없지만 사실상 관계를 인정한 것이나 다름 없다. 그들만의 세계에 갇힌 것으로 보였던 두 사람은 김민희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함으로서, 자신들의 말대로 “예술적 가치를 입증”하는데는 성공했다.
축하해야 할 일이다. 국내에서는 아직 공개가 되지 않은 영화지만, 김민희의 연기는 논하는 것이 새삼스러울 정도로 모두가 인정하는 영화계의 재산이 됐다. 여배우의 발견이 어려운 한국 영화계에서 김민희의 존재는 분명 가치가 있다. ‘화차’부터 ‘아가씨’까지 이어진 김민희만의 독보적인 매력이 이번 영화에서 정점을 찍었을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 여배우의 오묘한 매력이 심사위원단을 사로잡았을 것이라 추측된다. 기분 좋은 일이다.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한 켠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 없다. 1999년 ‘학교2’로 데뷔한 김민희는 신선한 마스크를 가진 신예로 주목을 받았지만 연기가 따라주지 못했다. 당시 그녀의 연예 활동을 이어 준 유일한 무기는 이미지였다. 인터넷 시대를 열어 제치던 당시 사회상과 김민희의 개성은 ‘N세대’의 수요와 맞물렸고, 덕분에 다양한 CF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연기로 주목을 받는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천천히 필모를 쌓아가던 그녀는 ‘화자’로 가능성을 알리는데 성공했다.
이후 김민희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로 그녀의 시대를 열었다. 홍상수 감독과의 불미스런 소문에도 그는 모든 감독들이 원하는 뮤즈였다. 하지만 홍상수 감독과의 스캔들이 알려지고, ‘공개 연인’이나 다름 없는 커플이 되면서 김민희는 내리막 길을 걷게 됐다. 쏟아지던 시나리오가 멈췄고, 이미 광고 업계에서는 소문을 접하고 그녀와의 재계약을 거부했다. 가장 높은 곳, 정점을 찍은 시기에 하필 모든 것을 잃게 된 것이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 등장하는 여주인공과 빼닮았다. 어차피 김민희를 모델로 한 작품이지만.
김민희는 여배우 가뭄에 시다리는 한국 영화계에 단비 같은 존재였다. 베를린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으로 더욱 그 가치를 증명했다. 그러나 그녀에게 박수를 보내는 이는 드물다. ‘예술은 예술, 사생활은 사생활’이더라도, 이 상황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는 건 이번 영화가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자전 영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것을 잃은 것으로 보였던 김민희는 홍상수 감독의 세계에 들어가면서 베를린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이라는 최고의 영예를 맛봤다.
트로피를 쥐고 웃음을 짓는 김민희의 미소는 아름답기에 안타깝다. 여배우로서 제 2의 인생이 시작됐지만 한국의 여론은 차갑다 못해 얼어 붙었다. 수상을 축하하더라도, 박수를 보낼 수는 없다는 게 대다수 네티즌들의 의견이다. 명성에 걸맞는 수많은 기회들이 쏟아져야 하지만 영광은 그녀의 것이 아니다. ‘홍상수의 뮤즈’, ‘홍상수의 페르소나’로 살아가는 연기 인생도 나쁘지 않겠지만, 더 많은 기회를 누릴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녀가 가진 훌륭한 가치에도 불구하고.
배우에게 수상은 과거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미래의 가능성을 말해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민희에게 주어질 기회는 홍상수 감독의 차기작에 한정돼 있다. 그녀 스스로도 이를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높은 곳까지 도약한 시기 더 멀리, 높게 날아가지 못하는 반쪽 뿐인 비상이 안타깝고 아까울 뿐이다.
김지현 기자 mooa@tvreport.co.kr /사진=TV리포트 DB, 베를린 영화제 홈페이지 밑 트위터, 시네마 코프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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