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영화 ‘천문’ 리뷰
[TV리포트=김수정 기자] 가슴을 쥐어짜는 듯 애달프고 절절하다. 사극에서 이토록 밀도 높은 드라마를 보게 되다니. 그것도 세종과 장영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에서 말이다. 영화 ‘천문:하늘에 묻는다’ 얘기다.
‘천문:하늘에 묻는다’는 조선의 하늘과 시간, 같은 꿈을 꿨던 두 천재 세종(한석규 분)과 장영실(최민식 분)을 주인공으로 한다. 세종이 탄 안여(임금이 타는 가마)가 부러져 장영실이 문책을 받고 곤장 80대 형에 처한 뒤 역사에서 사라진 빈틈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채웠다.
이 상상력은 섬세하면서도 도발적이며, 사려 깊다. 최민식의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의 행복”이라는 말은 ‘천문’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일 테다.
허진호 감독은 실록의 행간에서 “서로를 잘 알아주는 존재”로서의 세종과 장영실을 읽은 듯하다. 이를 표현한 한석규와 최민식의 연기는 경이롭기 그지없다. 빛나고, 아름답고, 숨 막히게 떨린다.
26일 개봉을 앞둔 ‘천문’. 동료기자의 질문에 답하며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고자 한다.
Q. 최민식, 한석규 연기는 어때? 연기 잘하는 두 사람이 붙어 과잉 에너지가 되진 않았어?
전혀. 두 사람의 연기를 함께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황홀한 132분이다. 두 사람이 스크린에서 재회한 것은 영화 ‘쉬리’ 이후 20년 만이다. 투 샷을 볼 기회가 왜 이전엔 없었는지, 20년 세월이 야속하게 느껴질 정도.
실제 동국대 연영과 선후배로 막역한 사이인 최민식과 한석규의 앙상블은 최근 한국영화 가운데 단연 독보적이다. 두 사람의 필모그래피에 오래도록 기억될 여러 명장면을 남겼다.
한석규가 연기한 세종은 “영실아”라고 다정하게 부르다가도 백성보다 제 이득만을 챙기는 사대부 앞에서는 차갑고 매섭게 변한다. 명나라와 사대부의 견제 속에서 그 누구보다 외로웠을 세종의 아득한 마음이 한석규라는 날개를 달고 객석까지 전해진다.
장영실 역의 최민식은 그가 말한 대로 “만드는 사람의 재해석”이 역사물의 의미임을 당당하게 증명한다.
땅만 내려다보던 노비였던 그가 하늘 같은 임금 세종과 처음 눈을 마주칠 때의 떨림, 세종과 근정전에 함께 누워 쏟아지는 밤하늘 별들을 바라봤을 때의 벅찬 마음, 창호지에 세종을 위한 별을 그린 순간들을 섬세하게 스크린에 새긴다. ‘파이란’, ‘해피엔드’ 이후 최민식의 이토록 절절한 눈빛을 보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다.
동시에 예술가적 기질의 장영실도 보여준다. 명나라 사신에게 소변을 끼얹고, 어린아이처럼 신이 나 세종에게 인정받으려 하는 모습에선 ‘취화선’이 떠오르기도 한다. 세종을 향한 벅찬 마음과 천재적 면모를 동시에 보여준 것은 최민식이기에 가능한 연기였다.
Q. 시사회 때 우는 사람이 많았다면서?
신분을 뛰어넘어 나를 알아봐 준 존재, 나의 별을 짚어준 존재, 내 이름을 새겨주고 불러주던 존재. 세종과 영실은 서로를 위해 가슴 아픈 선택을 한다. 그 선택 앞에선 차가워질 수밖에 없다. 그래야 아픔이 조금이라도 덜할 테니.
엔딩에 객석이 눈물바다가 된 건 이 때문이다. 앞서 차곡차곡 쌓아 올린 세종과 영실의 우정이 엔딩에서 폭발할 듯 뜨겁게 관객을 울린다. 허진호 감독은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등에서 보여준 것처럼 관계의 마지막을 아름답고도 슬프게 그려낸다. 최민식과 한석규의 마지막 표정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Q. 한석규는 ‘뿌리깊은 나무’ 이후 또 세종대왕이네?
자신이 이미 한 번 연기했던 캐릭터를 뛰어넘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테다. 게다가 그 캐릭터가 온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세종대왕이라면 그 부담감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한석규는 ‘뿌리깊은 나무’의 세종과 닮은 듯 진일보했다. 남자 노비에게도 출산휴가를 줄 정도로 백성을 생각했던 어진 왕 세종은 한석규의 다정한 눈빛이 더해져 스크린에서 되살아났다. 명나라 눈치만을 보는 대신들 앞에서 ‘개XX’를 내뱉는 장면에선 카타르시스마저 안긴다.
‘8월의 크리스마스’ 이후 오랜만에 다시 만난 신구와의 케미스트리도 긴장감 넘친다. 대가와 대가가 만나니 그 자체로 살 떨리는 드라마가 된다.
Q. 이 영화 누가 봐야 재밌을까?
어른 관객에겐 진한 드라마로, 어린아이 관객에겐 흥미로운 역사 영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천문 관측기구 간의대, 세종과 장영실의 역작인 물시계 자격루 등 볼거리가 많다. 또, 세종이 한글을 창제하려는 이유와 조선만의 시간과 천문 관측 기술을 가지려는 목적이 밀도 높은 드라마 안에서 자연스럽게 그려져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재밌을 것.
또, 예상 밖의 코믹 코드도 꽤 타율이 높다. 임원희 윤제문 김원해는 감초 역할을 제대로 해냈고, 세종의 은근히 웃긴 대사들, 장영실의 능청스러움도 극에 활기를 더한다.
김수정 기자 swandive@tvreport.co.kr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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