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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이 다가온다. 그런데 아직 해야할 일은 산더미라면? 그럴 때 저는 유튜브에서 조용히 ‘노동요’를 검색합니다. 귀찮고 질리는 반복작업을 할 때 빠른 비트의 노동요를 들으면 둠칫둠칫하는 노래에 맞춰 나도 모르게 사자에게 쫓기는 초식동물의 심정으로 작업하게 되거든요. 하지만 마음 급해지는 노동요를 들으면 가끔 더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여기, 빠르지도 않고 위기감도 느껴지지 않는 신기한 노동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들을수록 이상하게 일이 잘 된단 말이죠. 저만의 노동요, ‘lo-fi’ 음악을 소개합니다.
‘lo-fi, 정체가 뭐냐’
lo-fi는 고음질을 뜻하는 high fidelity의 약자인 hi-fi의 반대 개념을 지칭합니다. LP나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듣던 시절의 열화된 질감을 생각하면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lo-fi를 듣기 거북할 정도의 저음질의 음악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인데요, lo-fi는 의도적으로 아날로그 감성을 가미하여 듣기 편안한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 따라 호불호의 차이는 있지만 카페 소음이나 파도 소리, 나뭇가지가 바람에 스치는 소리 등 일상의 백색소음은 집중을 도와주고 스트레스를 줄여줍니다. 지지직 거리는 노이즈나 LP의 미세한 소음, 빗소리 등 투박한 옛 감성을 전달하는 lo-fi 역시 백색 소음과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겠죠. 점점 더 ‘최고’를 요구하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lo-fi는 우리의 지친 귀를 편안하게 합니다.
‘일할 때 듣는 lo-fi, 소개합니다’
일반적인 상업 음악의 흐름과 다른 lo-fi는 힙합과 재즈에서 크게 발전하였습니다. 듣기 편안한 음악을 위해 래핑 없이 차분한 비트, 잔잔한 피아노 멜로디가 주로 사용됩니다. 아직은 대중적이지 않기 때문에 유튜브나 사운드클라우드 등 SNS에서 믹싱 작업을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
특히 유튜브는 접근성도 뛰어나고 긴 길이의 영상도 쉽게 업로드할 수 있어 다양한 lo-fi 모음 영상이 꾸준히 업로드 되는 편인데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8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풍 그림을 배경으로 까는 것이 전 세계 lo-fi 음악가 사이의 불문율인 듯 합니다. 제가 작업할 때 자주 듣는 lo-fi 음악을 소개합니다.
? ChilledCow의 ‘lofi hip hop radio – beats to relax/study to’
lo-fi계의 레전드, 압도적인 인지도를 자랑하는 lo-fi 실시간 스트리밍 채널입니다. 언제 들어가도 만 단위의 시청자가 전 세계 다양한 언어로 채팅을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뜻 모를 대화를 읽는 재미에 빠져 정작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 흠일 수도 있겠네요.
지난 2월 유튜브 측의 오류로 실시간 스트리밍이 잠시 꺼지기 전까지 유튜브 역사상 가장 오랜 시간(1만 3165시간) 실시간 방송을 이어온 채널이기도 합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부하는 소녀와 함께 작업하며 우리의 마감도 사수해 보아요.
? Mood Rainbow의 ‘코딩할 때 듣기 좋은 로파이 재즈 음악 (1 hour Lofi Jazz playlist).’
최근 한국 유튜브의 알고리즘을 타고 떠오르고 있는 lo-fi계의 신성. 컴퓨터와 씨름하다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키보드를 박살내는 썸네일이 프로그래머의 마음을 자극한 듯 합니다.
댓글로 이어지는 여러 프로그래머들의 고해성사를 보는 것 역시 재미있습니다. 꼭 코딩을 하지 않더라도 공부나 반복되는 작업을 할 때 질리지 않는 편안한 재즈 음악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Dizzy Inc의 ‘1 Hour Studio Ghibli Lofi Hip Hop Mix’
lo-fi의 소재는 무궁무진합니다. 직접 멜로디를 만들 수도, 기존의 음악을 리믹스할 수도 있는데요, 우리에게 친숙한 스튜디오 지브리의 사운드트랙 역시 lo-fi로 재해석하여 새로운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같은 노래여도 아티스트의 개성에 따라 새롭게 표현되는 것을 들으며 영화에서 느꼈던 감동을 다시 경험하는 건 어떨까요? 물론 해야하는 작업도 잊지 말자고요!
어떤 노동요를 듣더라도 중요한 것은 마감까지 맡은 일을 제대로 끝내는 것. 바쁜 일상 속 잔잔한 lo-fi 음악으로 마음의 안정과 업무 효율 향상까지 두 가지 토끼를 잡아볼까요?
최지원 동아닷컴 인턴 기자 dla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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